자본주의 사회에서 불평등은 필연적입니다. 구성원들은 개인의 역량에 따라서 나타나는 부의 차이를 인정합니다. 다만 그 차이가 너무 크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의 폐해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자본주의를 대체할 만한 확실한 이데올로기가 보이지 않습니다. ‘유토피아’ 측면에서 보면 과거 자본주의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공산주의가 더 나은 이데올로기였으나 지나치게 이상적이었습니다. 즉, 탐욕적인 인간 사회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였던 것입니다. 인간은 더 많이 가지려고 하고,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 권력을 누리려고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대안 자본주의’라는 말이 나왔지만, 새로운 이데올로기는 아직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기본소득’입니다. 재산이나 노동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지급하는 금액. 기본소득. 이 단어는 최근에야 나온 말이 아닙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500년 전,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서 처음 언급되었습니다. 당시는 자본주의의 초기 단계였고, 그에 따른 문제점들이 속출해서 많은 농민들이 토지를 잃고 부랑자로 전락하면서 사회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였습니다. 토마스 모어는 지배층의 무능을 비판하며 그 대안으로 기본생활 보장을 제시하였습니다.
인공지능의 시대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기본소득 논의가 활발해진 배경은 크게 3가지입니다.
- 전세계적인 저성장으로 일자리가 줄고, 저소득층이 확대되고 있다.
- 복지가 있지만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 일자리를 대체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결국 ‘최소한의 인간답게 살기 위함’을 보장하기 위해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찬성과 반대는 엄연히 존재합니다.
- 찬성: 인류 사상 노동이 처음으로 사라질 수 있고, 유토피아가 펼쳐질 것이다.
- 반대: 기본소득제는 현재 복지서비스와 중복되는 부분이 많다. 또한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기본소득제의 도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필요성은 충분해 보입니다. 지금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격차는 벌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인공지능과 로봇의 시대가 되면 이 격차는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벌어질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기술의 발전을 통해서 혜택을 보는 것은 노동자보다 자본가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일반 서민들은 지금의 기술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자본가들이 만족하지 못할 뿐이지요.
인공지능과 로봇의 시대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대표적으로는 페이스북의 창립자 저커버그 등을 들 수 있습니다)은 이 시대가 되면 인간의 일자리가 줄어들기보다는 또 다른 일자리가 생성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매우 회의적으로 봅니다. 일자리가 없어졌으면 없어졌지, 더 많이 생겨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받기 위해 창조됐고, 사물은 사용하려고 만들어졌다. 세상이 혼돈에 빠진 것은 물건이 사랑받고, 사람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 달라이 라마
지금도 인간은 사물에 비해서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데,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까요? 지금도 자본가들의 탐욕은 흘러넘치는데, 앞으로는 자제할까요?
자본가들은 앞으로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서 ‘골치 아프고 휴식을 보장해 줘야 하는’ 인간을 노동력으로 삼기보다는 ’24시간 돌려도 별 말이 없는’ 로봇과 인공지능을 더 취할 것입니다. 스마트폰이 세상에 나오면서 인간은 그들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학습능력이 전혀 없는 기계에게도 잠식당한 인간. 학습능력이 있는 인공지능과 로봇에게 과연 인간은 주인으로서 군림할 수 있을까요?
기본소득을 논의하는 나라나 지역은 참 많습니다. 명분 또한 훌륭합니다. 그러나 참 의아한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바로 인공지능과 로봇의 중심. 미국 실리콘밸리입니다. 실리콘밸리의 엘리트들은 겉으로는 기술 발전에 따른 대량 실직 사태와 빈곤층 확대를 막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 속내는 다음과 같지 않을까요.
“인공지능과 로봇의 시대가 완전히 도래하면, 노동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막아야 해!”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기본소득을 일종의 ‘완충지대’로 만드는 것입니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구분 속에서 가지지 못한 자가 폭동을 일으킬 것을 우려해 ‘중산층’이라는 개념을 만든 것처럼, 실리콘밸리의 많은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위협을 방지하고자 ‘기본소득’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21세기의 러다이트 운동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입니다.
또한 흥미로운 분석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실리콘밸리 기업들도 물건을 계속해서 팔아야 기업을 유지할 수 있는데, 지금처럼 저소득층이 늘어나면 물건을 계속 팔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기본소득을 도입하여 전체 소득이 크게 줄지 않도록 하고, 그 여력으로 자신들의 물건을 소비하도록 이끄려고 그런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과연 기본소득 도입을 통한 유토피아는 올 수 있을까요?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전이 별로 내키지 않고, 인류는 굉장히 위험한 구렁텅이로 빠질 것을 확신하는 저의 입장에서 그나마 다행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소득 도입보다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문명을 해치지 않도록 하는 강력한 제어장치와 법률이 필요하며, 자본가들의 탐욕을 견제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합니다.
유토피아? 그런 것은 오지 않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대부분의 인류를 ‘생존’ 위협으로 빠뜨릴 것이며 소득 불평등은 더 심해지고, 일부 가진 자들만 ‘유토피아’를 누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될 기본소득에 대한 도입과 실험을 흥미롭게 지켜봐야 할 이유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우리의 삶과 직결될 부분이기에.
원문: 뻔뻔한 지성들의 르네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