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떤 외딴 지역에 있는 집, 한 여성(제니퍼 로렌스)은 남편(하비에르 바르뎀)과 함께 살고 있다. 여성은 화재로 타버렸던 집을 홀로 수리하고, 시인인 남편은 자신의 작업에만 매진하고 있다.
그렇게 지내던 중 한 남자(에드 해리스)가 찾아온다. 그 집이 민박인 줄 알고 찾아왔다는 그는 남편이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임을 알아차린다. 하룻밤 사이에 남편과 남자는 친밀해지고, 여성은 자신의 집에 낯선 사람을 마음대로 받아들이는 남편이 못마땅하다.
다음날, 갑자기 찾아온 남자의 아내(미셸 파이퍼)가 찾아온다. 무례하고 제멋대로 구는 그녀에 이어 남자와 아내의 두 아들(돔놀 글리슨, 브라이언 글리슨)이 찾아와 남자의 유언장을 놓고 몸싸움을 벌이다 첫째가 둘째를 죽이고 만다. 두 시간 후 조문객이 잔뜩 몰려오고 남편은 그들을 집의 손님으로 받아주지만, 여성은 이에 혼란스러워한다.
집에는 점점 불청객이 늘어만 가고, 갈수록 혼란해져만 간다.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신작 <마더!>는 영화 내내 불길함을 조성한다. 자꾸만 약을 먹는 제니퍼 로렌스(극 중 인물의 이름이 지칭되지 않기에 그냥 배우 이름으로 부른다)는 이명과도 같은 소리를 들으며 어지러워하고, 집의 심장과도 같은 환영을 본다.
남편인 하비에르 바르뎀은 집에 갑작스레 찾아온 사람들에게 자신은 집안일도 하지 않으면서 지나치게 친절하고, 그들을 쉽게 믿는다. 갑자기 찾아온 남자 에드 해리스와 여자 미셸 파이퍼는 그 집이 자신들의 집인 양 그곳을 헤집고 다니고, 결국 아무도 마음대로 들어가지 못하는 하비에르의 서재에 들어가 그가 아끼는 크리스털을 깨고 만다. 에드와 미셸의 두 아들은 각자의 질투심에 몸싸움을 벌인다.
<마더!>가 지닌 상징들은 굳이 열거하기 유치할 정도로 명징하다. 은유가 아닌 직유에 가까운 상징들은 신, 에덴동산, 아담과 이브, 카인과 아벨, 소돔과 고모라, 노아의 방주, 출애굽, 예수, 동방박사, 계시록 등을 너무나도 명확하게 드러낸다.
굳이 해설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종교적인 상징들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이 영화는 인류애를 상실한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지독하게 염세적인 세계관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다. 소돔과 고모라를 연상시키는 조문객들의 행렬은 무질서하고 문란하며 신에 대한 복종과 섬김보다는 파괴를 일삼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제니퍼와 하비에르는 싱크대가 부서져 한바탕 물난리가 난 이후에나 둘만 남게 되고, 성 기능 불구처럼 그려졌던 하비에르는 그제야 제니퍼와 섹스를 나눈다. 인간이 없는 세상에서 평화롭게 뱃속의 아이를 기다리던 제니퍼는 하비에르가 그녀에게서 영감 받아 쓴 시를 완성하면서 다시 불길함에 휩싸인다.
그의 시가 출간되자 그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갑작스레 집에 들이닥치고, 전반부의 조문객들보다 더욱 끔찍한 난장판을 벌이기 때문이다. 하비에르의 시를 찬양하던 사람들은 이내 그의 모든 몸짓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를 숭배한다.
뭐든지 나누겠다는 그의 말에 따라 집의 집기를 훔치고 벽을 뜯어가기도 한다. 난장판을 통제하기 위해 출동한 경찰은 사람들의 반감만 사고, 집 안에서 폭동이 벌어지며 화염병이 날아다니기까지 한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군인들은 집 안에서 전투를 벌이고, 어느샌가 지어진 철조망 안에 갇힌 사람들은 홀로코스트를 연상시키는 이미지가 된다.
자본가(출판사 사람-크리스틴 위그)가 그들을 처형하는 장면은 ISIS와 같은 테러조직의 처형 영상을 연상시킨다. 난장판을 뚫고 제니퍼는 하비에르의 서재에서 아이를 출산한다. 그러자 사람들은 조용히 선물만을 보낸다. 아이를 낳은 지 3일째 되는 날 하비에르는 사람들에게 아이를 보여주겠다고 데리고 나가지만, 광신적인 사람들은 아이를 죽이고 구워 뜯어먹는다. 분노한 제니퍼는 지하실 보일러에 든 기름에 불을 붙이고 자폭한다.
영화는 하비에르가 불에 타 죽어가는 제니퍼의 심장을 꺼내고, 그것의 재를 터니 선악과처럼 그려진 크리스털이 등장하며, 그 크리스털을 다시 진열하니 잿더미가 된 집이 다시 복구되고 오프닝과 유사한 장면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신은 물로써 인간을 한 번 쓸어버렸고, 불로써 다시 한번 인간을 쓸어버렸다. 영화 속에서 신으로 지칭(직접적으로 지칭되진 않지만 너무나도 명징한 상징이기에)되는 하비에르가 직접 물과 불로 인간을 쓸어버린 것은 아니지만, 그가 집안에 풀어놓은 인간들은 정해진 수순을 밟듯 온갖 혼란과 난장판을 벌이는 것을 자처한다.
인구과밀, 테러, 전쟁, 폭력진압, 광신, 문란한 관계…… <마더!>의 난장판을 보고 있자면 대런 아로노프스키 자신이 하비에르의 위치, 신의 위치에 서서 자신이 인간을 혐오하고 극도로 염세적이게 되어 버린 이유를 열거하고 있는 것만 같다.
영화 러닝타임의 절반 정도를 제니퍼 로렌스의 얼굴과 뒤통수의 클로즈업을 채운 이 영화는 제니퍼와 하비에르의 집 공간의 스케치를 보여주지 않는다. 관객은 제니퍼에게 몰입하고 그녀의 시선으로 자신의 집이 파괴되는 혼돈의 현상을 보게 된다. 하비에르가 신이고 에드와 미셸이 아담과 이브이기에 제니퍼는 당연히 집, 지구, 에덴동산, 땅, 가이아 등등의 것이다. 아로노프스키의 카메라는 제니퍼의 시선을 따라가며 집/지구/에덴과 동일시된 그녀가 착취당하는 이미지를 끊임없이 전시한다.
결국 <마더!>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의미를 남기는 작업이라기보단, 대런 아로노프스 본인이 성경을 비롯한 종교적 상징에 근거하여 자신의 지독한 염세주의를 전시하는 작업이다. 너무나도 명징하게 성경 속 상징들을 가져왔기에 영화의 많은 이야기는 지루하기 짝이 없고, 이러한 상징들을 해석한다는 행위는 유치해지기까지 한다.
제목은 또왜 <마더!>일까? 영화 속 제니퍼는 가사노동에, 손님 접대에, 임신과 출산에(이것은 제니퍼 스스로가 바라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아이는 하비에르에 손에 들려 갔으므로), 폭력에 착취당한다. ‘MotherEarth’라는 이름 하에 모성, 어머니됨을 영화의 제목으로 내세운 것은 어떠한 전복도, 전위도 아닌 얕은 상징들뿐이다.
아로노프스키는 이러한 상징의 이미지들을 대단한 전복적 이미지들이라 생각하는 듯이 스크린에 전시한다. 아로노프스키의 이미지 포르노그래피랄까? 때문에 <마더!>는 입이 험악한 종교인이 육두문자를 잔뜩 섞고 남의 얼굴에 침을 튀겨 가면서 성경을 설교해주는 것만 같다. 그가 지독한 무신론자라는 사실이 영화보다 더욱 염세적으로 보일 뿐이다.
원문: 동구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