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벗어나서 직장인이 되었을 때, 내게 가장 크게 다가온 점 중 하나가 ‘관계’의 중요성이었다. 나와 팀원분들의 관계, 매니저와의 관계, 옆 팀 혹은 심지어 본사에 있는 누군가와의 관계, 그리고 클라이언트와의 관계까지. 회사의 업무는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과 얽히고설킨 관계에 기반을 두고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관계를 잘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늘 강조되었다. 스스로 열심히 공부를 해서 학점을 쌓아 나가는 학생 때와는 많이 달랐다.
나 역시 회사에 들어와서 자주 듣게 된 이야기들이 ‘자기 평판 관리’라든가 ‘Self PR’ 그리고 ‘네트워킹’의 중요성이었다. 이런 것들을 잘 해야 일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신뢰에 기반한 좋은 관계 위에서 일이 더 수월하게 진행이 되고, 넓은 네트워크를 통해서 더 많은 기회가 찾아온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당연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이런 좋은 관계를 쌓을 수 있는지에 대해선 저마다의 의견이 달랐다. 상하관계에 기반한 오랜 한국의 문화 때문인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늘 윗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거나 앞장서서 잡일을 처리해야 좋은 평을 받는다고들 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네트워크를 쌓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자주 만나고 술자리에도 필수적으로 참석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제각기 많은 사람들이 이런 부지런한 활동들을 자주 SNS 등을 통해서 공유했다.
하지만 성격상 그렇지 못한 나는 옆에서 이런 모습들을 지켜볼 때마다 항상 그들이 그저 부러웠다. 나는 지극히 내향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모임에 참석하고 술자리에 가는 것보다는 집에서 조용히 혼자 시간을 보내거나 가까운 친구들과만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훨씬 더 편했다. 운동을 하더라도 단체 스포츠보다는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을 선호했고, 어쩌다 사람이 많은 곳에 다녀왔다면 꼭 혼자 충전하는 시간도 필요했다.
물론 내향적이라고 해서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데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소규모로 대화하거나 주제가 명확히 정해진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데에는 아무 부담이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 혹은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불특정한 대화시간은 늘 갈피를 잡기가 어렵고 어색했다. 회사에서도 뭔가 실없는 이야기를 먼저 하면서 스스럼없이 먼저 다가가면 좋았었을 테지만, 내겐 업무 외적인 대화 주제를 찾는 게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그 대신에 나는 내게 좀 더 어울리는 방식으로 관계를 잘 쌓아가고 싶었다. 성격상 안 되는 일을 억지로 잘 하려고 하기보다는 내가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단숨에 빛나지는 않지만 오래 시간을 두고 믿음을 쌓을 수 있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먼저 나서서 주도적으로 말을 하기보다는 주변의 말들을 진지하게 귀담아들으려고 애썼고, 어설프게 내 생각과 감정을 재밌게 포장하기보다는 늘 솔직하고 담담하게 나의 진심을 전달하고자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오래도록 묵묵히 내가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당장에 화려하고 빛나거나 내게 뭔가 득이 되는 일이 아닐지라도 꾸준히 내 일과 사람들에게 책임감을 가지려고 애썼다. 아마 나는 당장 술자리에 같이 데려가고 싶은 재밌는 사람은 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반면에 나는 누군가 정말 필요로 할 때 제일 먼저 믿고 의지할만한 친구이자 동료, 선배이자 후배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아직 많은 경험을 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런 믿음이 유효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책임감을 가지고 아주 오래도록 학회 활동을 했었는데, 이런 내 책임감과 노력이 전해져서인지 어느 순간 나는 졸업생 모임의 회장이 되어있었다. 애써 모임을 만들고 매번 참석해서 나를 드러내려 애쓰지 않아도 어느 순간 학회 안에서 가장 많은 선후배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이 된 것이었다.
구글 재팬으로 오게 될 때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고 어떤 것들을 이뤄냈는지 애써 보여주려 하지 않아도 어떤 누군가는 관심 있게 지켜보고 가치를 인정해주었다. 지금의 매니저도 그랬던 사람들 중의 한 명이어서 어느 날 갑자기 먼저 나에게 지금의 포지션을 제안해 주었고, 덕분에 굉장히 수월하게 지금의 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묵묵히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면 필요한 네트워크는 저절로 쌓인다
우리는 지인을 통해서 한 다리만 건너면 너무나도 쉽게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적은 수이지만 내가 매번 만나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했을 때, 결국엔 그 사람들이 꼭 나를 알아봐 주었고 또 더 큰 네트워크와 기회로 내 세계를 넓혀주었다.
외향적인 사람들에 비해서 느린 것 같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끝에 누구의 관계가 더 단단하게 쌓였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나는 진심이 언젠가 통할 것이라 믿는다.
원문: Jeremy Cho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