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보면 반드시 한 번씩 마주치는 것들이 있다. 하나는 편의점, 하나는 카페, 그리고 또 하나는 바로 드럭스토어다. 화장품은 이제 단순히 그 자체의 가치보다는 미(美)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한 데 모이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과거 여성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화장품은 자연스럽게 남성에게까지 확대되었다. 이 열풍의 중심에는 드럭스토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럭스토어는 어떻게 우리 곁으로 들어왔을까? 사실 먼저 들어왔다기보단 우리가 많이 소비하기에 따라 온 게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드럭스토어에도 일종의 소비를 유도하는 장치들이 숨어 있지 않을까? 우리는 이 공간에서 어떤 선택설계에 의해 소비하는가? 지금부터 그 작은 비밀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고, 드럭스토어에서 소비를 유도하는 몇 가지 넛지를 찾아 소개한다.
1. 쇼핑바구니를 놓자: 꽉 채워야 성이 풀리는 인간의 본능
위 사진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는가? 실제 익명 어플에 질문을 한 결과 병을 본 대다수의 사람들은 페트병에 물을 채우겠다고 이야기했다. 즉 인간의 ‘채우고자 하는 욕구’가 발현된 것이다. 인간은 비어 있는 무엇인가를 봤을 때 이를 채우려고 하는 본능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
드럭스토어 입구에 들어서면 대부분 오른쪽에 작은 철제 쇼핑바구니가 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집는 이 쇼핑바구니는 쇼핑의 편의를 위해 비치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이 철제 바구니는 바구니 안을 ‘꽉’ 채워야 한다는 인식을 심도록 돕는 요소 중 하나다.
우리는 쇼핑 바구니를 무의식적으로 챙겨 들고 쇼핑한다. 이러한 경우 필요한 것만 사야 하는 상황임에도 손에 든 쇼핑 바구니를 무의식적으로 꽉 채워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드럭스토어는 쇼핑 바구니를 보통 화장품의 크기보다 크게 만들어 많은 화장품을 담을 수 있도록 만든다.
2. 화장품 테스트: 소유 효과
드럭스토어에서 체험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제품이 입술에 바르는 립 제품, 몸에 뿌리는 향수, 아이라이너 등이다. 화장품에 관심 있는 사람은 색에 굉장히 민감한 경향이 있다. 립 제품은 이러한 경향을 반영해 12가지에서 20가지의 미묘하게 다른 색상을 제공한다. 종류가 많을뿐더러 모두 견본품을 놓아둠으로써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견본품을 놓아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 하나, 색이나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골라야 하는 선택지의 수가 넓어진다. 선택지의 수가 많아질수록 고객은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다. 소비를 포기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고객이 자신의 선호 제품을 찾고 소비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 둘, 체험이라는 과정을 통해 내게 맞는 색이나 향을 찾으면 고정적으로 해당 색깔을 ‘자신의 것’으로 인식해 해당 드럭스토어 브랜드의 제품을 지속적으로 구매한다. 해당 제품에서만큼은 고정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당신에게 맞는 제품을 찾도록 하여 그것을 ‘소유’하도록 유도하는 넛지 전략이라 볼 수 있다.
3. 기능성 제품은 안쪽에: 상대적 필요성을 높여라
화장하다 보면 피부에 트러블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드럭스토어에서는 고맙게도 마스크팩을 판매한다. 그런데 대부분 드럭스토어의 안쪽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왜 그런 것일까? 이는 드럭스토어에 방문하는 소비자들의 사용자 경험(UX)을 통해 바라보면 이해가 빠르다.
보통 매장의 사용자 경험은 매장에 들어와서 계산대에서 물건을 구매하기까지의 과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드럭스토어의 계산대의 위치는 매장 안쪽이라는 것이다. 즉 사람들은 문에 들어와서부터 계산대에 가기까지 앞으로 가거나 옆으로 가게 된다. 매장의 앞에는 향수, 틴트 등 화장품의 필수적인 요소들이 존재한다. 이곳에서 쇼핑을 마치고 다음 칸으로 가면 마스크팩이나 기능성 제품 등 피부 개선을 위한 제품들이 존재한다.
대부분 사람은 화장품이 피부 건강에 좋지 않다고 인식한다. 이러한 사실을 알지만 선택의 순간에 인지하지 못하고 마스크팩이나 기능성 제품을 보면 제품 자체가 고객들에게 강렬한 느낌을 줄 수 있다. 이 제품은 반드시 필요한 제품이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화장품을 구매하면서 마스크팩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화장품을 선택하도록 유도한 뒤 화장품의 부작용을 막기 위한 제품을 진열함으로써 상대적으로 그 필요성이 커지도록 만든다. 상대적인 위치가 우리에게 제품 구매라는 선택을 유도한 셈이다.
정말 필요해서 산 것인가?
드럭스토어에서는 당신이 산 것을 신중히 체크할 필요가 있다. 화장품의 무게가 생각보다 무겁지 않기 때문에 거추장스럽다는 인식을 잘 주지 않는다. 대부분 드럭스토어에 가서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사 들고 나오는 이유는 드럭스토어가 자신들의 제품을 비치할 때 상대적으로 필요하게끔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고객 동선을 상대적으로 비교할 수 있도록 설계하여 절대적인 필요성보다는 앞서 구매하려고 하는 제품, 앞서 본 제품과 철저하게 연결시켜 구매를 하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넛지로 인해 소비자들은 더 많이 소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필요한 것만을 구매하는 과정이 쉬운 과정은 아니다. 하지만 합리적인 소비를 위해 정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인지 고려해 볼 여지는 있을 것이다. 오늘도 화장품을 구매하기 위해 매장에 들린 당신, 혹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구매한 것은 아닌가? 당신의 쇼핑 바구니를 살펴보라. 당신은 생각보다 유혹 앞에서 나약할 가능성이 높다.
원문: 고석균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