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문재인 정부가 자신을 ‘정치사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홍 대표는 9일 “검찰과 경찰, 군(軍)이 내가 사용하는 수행비서 명의의 휴대전화를 통신 조회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사정·정보 당국이 내가 누구하고 통화하는가를 알아보려고 통신 조회를 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정치사찰이다. 겉으로는 협치하자고 하면서 이런 파렴치한 짓은 더는 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지만,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정치사찰’ 주장을 믿을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1. 감청이나 통신 내역이 아닌 ‘단순 가입자 조회’
홍준표 대표가 주장하는 ‘정치사찰’이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감청’ 또는 누구와 통화를 했는지 알 수 있는 ‘통신 내역’이 돼야 했습니다. 그러나 홍준표 수행비서의 통신자료 제공 내역은 ‘가입자 성명’ ‘주민번호’ ‘전화번호’ ‘주소’ ‘가입일’ ‘해지일’에 불과합니다. 통신자료 제공 내역만 보면 도·감청이나 누구와 통화했는지 샅샅이 파헤치는 ‘정치사찰’이라고 주장하기는 부족해보입니다.
2. 정치사찰이 아닌 ‘불법 뇌물’ 수사용
홍준표 대표 수행비서의 통신자료를 요청한 곳은 서울중앙지검 2건, 경남지방경찰청 3건, 경남양산경찰서 1건 등이 있었습니다. 이들 기관이 왜 홍 대표 수행비서의 통신자료를 요청했을까요?
현재 홍준표 대표는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지시를 받은 윤승모 전 부사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1억 원을 건네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1심 징역 1년 6월, 추징금 1억 원, 2심 무죄). 경찰과 검찰이 홍준표 대표의 수행비서의 휴대폰 가입 내역을 요청한 이유는 ‘성완종 리스트’와 연루된 인물들과 통화를 했는지 아닌지를 알기 위한 조회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3. 기무사 통해 정치사찰? 군부대 방문용일 수도
홍준표 수행 비서의 통신 조회 6건 중 4건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에 발생한 것으로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2건 중 1건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8월 7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조회는 대법원 판결을 앞둔 수사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나머지 1건은 8월 21일 육군본부에서 통신 조회가 있었습니다. 홍 대표는 기무사가 정치사찰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8월 22일 강원도 최전방 군부대 방문을 위한 조회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제로 대규모 인원이 군부대를 방문할 경우 사전에 인적사항을 받아 조회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정청래 전 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박근혜 정권 3년 동안 검찰, 경찰, 국정원, 군 수사기관 등에서 요청한 ‘통신비밀자료’ 제출만 무려 8,200만 건이 넘었습니다. 단순한 통신 가입 조회를 제외하고 영장이 필요한 통신 내역 조회도 5,000만 건이었습니다. 여기에 국정원의 감청만 1만 7,000건이나 됐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범죄자가 아닌 민간인도 수시로 통신 내역을 확인했습니다. 여기에 건강보험공단과 교육청 등을 통해 개인의 신상정보를 함부로 수집했습니다. ‘불법 정치 자금 혐의’ 수사와 ‘민간인 정치사찰’은 분명 다릅니다. 홍준표 대표의 주장은 대법원 판결을 앞둔 면피용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원문: 아이엠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