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투표를 위해 행정 전화로 사용한 전화 요금을 7년 만인 9월 25일 완납한다고 합니다. 2010~2011년 제주도는 ‘뉴세븐원더스 재단’이 추진하는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을 위해 제주 도내 모든 행정기관의 전화를 동원해 투표에 참여했습니다.
제주도가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을 위해 사용한 전화 요금은 총 211억 8,600만 원이었습니다. KT가 이 중 41억 6,000만 원을 감면해줘 실제 납부액은 170억 2,600만 원이었습니다. 제주도는 2011년 104억 2,700만 원을 납부하고 매년 13억 2,000만 원씩 총 161억 4,700만 원을 KT에 지급했습니다.
2017년에도 8월까지 매달 1억 1,000만 원씩 9억 8,800만 원을 납부했습니다. 9월 25일 최종 잔액 1억 800만 원을 납부하면 전화 요금은 완납이 됩니다.
아이들 동전까지도 갈취한 우근민 도지사
제주도가 완납한 전화 비용은 순수 행정 전화 요금에 불과합니다. 제주도민과 일반 시민의 전화 요금까지 합산하면 300억 원도 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제주도 전역에는 500원 동전을 투입하면 자동으로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투표를 해주는 ‘자동투표기’가 돌아다녔습니다.
자동투표기는 마을 행사, 초등학교, 공항, 버스터미널, 오일장 등을 돌면서 도민들과 학생들의 돈을 갈취하다시피 했습니다. ‘세계 7대 자연경관’ 투표를 하기 위한 전화 요금이 부족하다는 소식에 도민들의 기부가 이어졌고, 성금 56억 7,000만 원도 고스란히 전화 요금에 사용됐습니다.
“육지 것이 제주도 잘 되는 일에 왜 똥물을 끼얹느냐”
당시 제주도에서는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에 반대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사라 여겨 비판하는 글을 잇달아 올렸습니다.
- 「제주-세계 7대 자연경관 투표는 대국민 사기극」, 2011년 3월 30일
- 「제주-세계 7대 자연경관 투표 대국민 사기극 2탄」, 2011년 4월 25일
- 「‘제주7대 자연경관’ 아무리 홍보도 좋지만 조작까지」, 2011년 9월 5일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글 내용 중에는 제주도 블로거가 소정의 비용을 받고 ‘세계 7대 자연경관’ 홍보에 동원됐다는 폭로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블로거는 물론이고 제주도민 사회에서는 ‘죽일 놈’이 됐습니다. 당시 제주에 정착한 지 불과 1년도 되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주위에서는 ‘육지 것이 제주도 잘 되는 일에 똥물을 끼얹는다’라며 거센 항의와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걱정하는 지인 중 ‘다른 것은 다 건드려도 7대 자연경관만은 글을 쓰지 마라. 너 쫓겨난다’는 전화를 했다가 관계가 틀어진 사람도 있습니다. 당시 갓 태어난 딸과 여섯 살 아들을 데리고 다시 육지로 올라가야 하는지 밤새도록 고민했고, 아내는 밤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막을 수 없었던 ‘대국민 사기극’
관련 의혹을 제기한 사람은 제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인터넷과 트위터에서 피타고라스(@pythagoras0), 가을들녘(@AF1219), 넷롤러(@Netroller) 세 명이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이들은 온라인에서 각종 자료를 수집했고 저 또한 이 자료를 토대로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의혹은 그저 ‘네티즌의 의견’이라는 말로 무시됐고 기성 언론은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점차 의혹이 제기되자 그제야 언론은 검증을 시작했지만 주요 매체와 TV 등에서는 여전히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을 기원하는 음악회와 각종 행사를 생중계했고, 정치인과 연예인들도 동원됐습니다.
결국 2011년 11월 제주는 수백 억 원의 돈을 지불하고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됐고 수십억 원의 도민 혈세를 이용해 각종 축하 행사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고발은 짧고 고통은 길다, 그러나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2011년 ‘세계 7대 자연경관’ 의혹을 조사하던 당시 가장 큰 도움을 줬던 사람이 이해관 전 Kt 새노조 위원장이었습니다. 이 위원장은 투표에 사용된 번호 ‘001-1588-7715’가 국제전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내부 고발까지 했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정직’ ‘보복성 인사 발령’ ‘해고’를 당했습니다. 소송 이후 복직했지만 ‘재징계’ 받기도 했습니다.
공익을 위한 고발의 대가 치고는 너무나 길었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신뢰할 수 없는 개인이 세운 ‘뉴세븐원더스 재단’의 ‘세계 7대 자연경관’ 대국민사기극에 정부와 제주도, KT, 언론사가 모두 동원됐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처벌받은 사람과 기관은 거의 없었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경제 효과를 부풀리며 제주도를 들썩였던 ‘세계 7대 자연경관’은 ‘7년 만에 전화비 211억 완납’으로 끝이 났습니다. 내부 고발자와 도민들의 고통은 길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하는 누군가의 말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고 검증하는 사회적 풍토가 있었다면 과연 이런 ‘대국민 사기극’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원문: 아이엠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