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재래시장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망원시장에 들러서 저렴한 칼국수를 후루룩 먹고 돌아오는 길엔 고로케를, 집에 와서는 닭강정을 먹는 맛에 빠졌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망원시장에 가지 않습니다. 집이랑 멀어져서? 아닙니다.
초미세먼지로 난리가 난 날, 망원시장의 풍경은 저를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난리 속에서도 닭강정은 덮개 없이 노출되어 있었으며, 이는 대부분의 다른 먹거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오토바이까지 다니면서 매연을 뿜어댐에도 먼지에서 음식을 보호할 장비는 없었습니다. 일부 반찬가게 위에는 파리가 앉아 있었고, 상인들의 카드 거부에 따른 현금 선호는 여전하였습니다. 이런 비위생과 불친절로 인해서 경악하고 있는데 그 다짐에 방점을 찍는 현수막 하나.
그 현수막을 보면서, 재래시장 상인들은 그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우리의 이웃이 아니라 거대한 이익집단처럼 보였습니다. 인근 DMC 주민들의 불편함과 롯데몰 입점이 막힘으로서 침해받고 있는 경제적 손실은 생각치 않고 그저 그들의 이익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신기루와 함께 아직도 물기가 느껴지는(물에 젖은 손으로 상인이 건네준) 1000원짜리 지페 하나가 제 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대형자본에 비해서 재래시장의 힘이 약한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이런 어려움을 국가가 나서서 보호해 줄 필요는 있습니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고 하더라도 자본의 횡포를 그대로 두면 국가 자체가 망가지고, 그 횡포를 막을 수 있는 힘은 국가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실이 ‘비자강’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일부 특수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재래시장들이 대형마트와 맞서기 위해서 한 노력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주차장이요, 하나는 거대한 지붕 덮개입니다. 이는 고객들이 재래시장보다 대형마트를 선호하는 큰 이유 중 몇 가지를 해결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주차문제와 장보기의 수월함을 해결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여전히 재래시장의 주차는 대형마트보다 불편합니다)이 문제보다 더 큰 문제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상인들이 카드 결제를 꺼린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음식을 주로 취급함에도 비위생적이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여전히 존재한다면 고객들은 결코 재래시장으로 가지 않습니다.
‘한 달 일요일 2번 휴무’로 대표되는 의무휴업은 지금도 시행되고 있습니다. 쇠퇴하는 골목상권과 영세 소상공인을 살리기 위해서 시행된 의무휴업.
그렇다면 이 의무휴업일에 사람들은 재래시장으로 향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의무휴업일을 피해서 대형마트를 찾습니다. 이를테면 의무휴업일인 일요일 하루 전, 토요일에 장을 보는 식입니다. 이는 통계상으로도 입증된 부분입니다. 대형마트가 쉰다고 해서 개인 수퍼마켓이나 재래시장의 매출이 크게 뛰지 않습니다.
이제는 고객층이 완전히 갈렸다고 보아야 합니다. 재래시장에서 매일 혹은 2~3일씩 장을 보는 사람과 대형마트에서 1주일 치 장을 보는 사람. 대형마트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져야 합니다. 억지로 대형마트를 쉬게 하면 재래시장으로 사람들이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게 아마추어적인 생각입니다.
의무휴업은 경제적 실익과 함께 ‘명분적 가치’도 있습니다. 국가와 지자체가 나서서 소상공인들을 보호하려는 모습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의무휴업을 없애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를 더 강화시키고, 대형마트를 넘어 아예 대형쇼핑몰까지 규제하는 것은 반대하는 것입니니다. 아니, 더 위험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현재 정부와 정치권에서 모색하고 있는 의무휴업 확대가 시행되면 전국 32개의 복합쇼핑몰도 지금의 대형마트처럼 한 달에 2번은 일요일에 무조건 쉬어야 합니다. 입법안에 따라서 조금 다르지만 가장 강력한 법안은 한 달에 4번, 사업장 규모도 스타필드처럼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쇼핑몰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쇼핑몰은 모두 쉬도록 되어 있습니다.
대형마트를 넘은 대형쇼핑몰의 규제. 이는 또 다른 피해가 우려됩니다. 실제 대형쇼핑몰을 구성하고 있는 가게들은 모두 대기업 직영 혹은 대형 프랜차이즈 점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재래시장 상인들처럼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점포도 정말 많습니다. 대형쇼핑몰도 의무휴업을 하게 되면 이 소상공인들은 고스란히 그 피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대기업 직영점은 쉬고 소상공인 점포는 계속 운영할 수 있도록 할 수도 없습니다. 한쪽은 암흑, 한쪽은 불빛인 대형쇼핑몰에 누가 올까요? 오히려 점포를 열면 각종 관리비와 인건비, 식사비 등으로 적자를 볼 가능성이 큽니다.
대형쇼핑몰을 보는 시각과 대형마트를 보는 시각은 달라야 합니다. 대형쇼핑몰 대부분에는 대형마트가 입점되어 있지만 대형쇼핑몰은 하나의 문화시설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하나의 행위만 할 수 있는 곳에 가지 않습니다. 하나의 공간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소위 ‘몰링’을 즐깁니다. 대형쇼핑몰에서 먹고 놀고 즐기고 쇼핑을 합니다. 소상공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시민들의 즐길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요?
대한민국의 내수 경제는 심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내수 창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대형쇼핑몰을 가장 많은 손님들이 몰리는 일요일에 운영하지 못하게 한다?
전세계를 돌아봐도 대형쇼핑몰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훌륭한 관광시설이 됩니다. 자국에서 몰링에 익숙한 여행자들은 외국에서도 몰링을 즐깁니다.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보면 항상 그 나라의 시장을 찾는 장면이 나옵니다. 시장은 그 나라의 생활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이 트렌드도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시장에서 쇼핑몰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여행자들은 여행한 나라의 쇼핑몰에서 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 즐기는지 볼 수 있습니다. 단언컨대, 대형쇼핑몰 규제에 들어가면 관광산업도 타격을 받습니다. 지금의 규제대로라면 대형쇼핑몰, 아울렛, 백화점 모두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면세점도 규제한다고 합니다.
자본을 이길 수 있는 힘은 국가의 권력이 유일합니다. 그렇기에 소상공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그저 ‘규제’만 하는 식은 곤란합니다. 소상공인은 재래시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형쇼핑몰에도 있습니다. 아울러 재래시장 상인들이 받는 피해 못지 않게,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규모 사업장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피해를 받습니다.
아무리 문을 닫는다고 해도, 대형마트에 가는 사람은 대형마트만 찾습니다. 결코 재래시장에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요일 장보기의 즐거움을 빼앗긴 이들은 그 괘씸함으로 인해서 재래시장을 더 혐오할 수도 있습니다. 부디 이런 말도 안 되는 규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규제는 그 누구도 행복하게 해줄 수 없습니다. 이런 규제가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재래시장 상인들이 웃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재래시장 상인들도 경쟁력을 갖추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너무 큰 힘이 필요한 부분은 국가에 요구를 하되, 재래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가치를 발현하도록 해야 합니다. SNS의 시대에 입소문이 나면 사람들은 알아서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원문: 뻔뻔한 지성들의 르네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