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블랙 기업에 다닙니다. 최근 출판한 책에서도 소개했듯 몸은 야근으로 만신창이가 되었고 주변에 뜻있는 동료들은 대부분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생각하다 보니 ‘블랙 기업’ 이전에 ‘블랙 사회’가 있는 게 아닌가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블랙 기업, 블랙 사회
우리는 대부분 수능과 내신 성적에 맞추어서 대학을 가고 학과를 정했습니다. 물론 점점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아지는 것 같지만요. 저도 성적으로 갈 수 있는 학교와 학과 중 일반적으로 통념상 좋다고 생각하는 곳을 선택해서 들어갔습니다. 사실 들어갔다기보다는 진학 지도 선생님을 통해 ‘들어가졌다’고 표현하는 게 더 옳을 것 같습니다.
취직은 또 어떻습니까? 많으면 100여 곳 내외의 기업에 서류를 던진 뒤 모든 관문에 통과한 몇 군데를 두고 연봉이나 지역을 보고, ‘○○기업 VS. XX기업’하며 사람들이나 취업 카페 등 여기저기 물어보기도 하고 통념상 더 어깨가 펴지는 기업에 취직했을 겁니다. 아니면 단 한 군데 합격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결국에는 한 군데만 합격했으니 사실 취직은 대학보다 선택의 여지가 더 없었을 겁니다.
이게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강요받았기 때문이죠. 좋으면 다 좋고 안 좋으면 다 안 좋은 대학과 기업이 가득한 대한민국 구조에서 특성화 대학, 특성화 기업은 애초부터 몇 없습니다. 이런 구조에서 상대평가식으로 줄 세우고 더 나은 것을 찾아서 고민할 겨를 없이 선택하는 것은 마치 가뭄에 논바닥에서 퍼덕이는 민물고기처럼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닙니다. 막상 결혼해서 아이를 두면 자녀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대부분 지금 교육 시스템은 아니라고 생각하죠. 대안을 찾아 나서다가 경제적 이해로 결국 지금 여기서 더 높은 자리로 올라서는 것 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음을 알고 자녀에게 강요하고 쏟아붓는 형태의 교육이 이어집니다. 상대주의. 어릴 때부터 취직하고 기업 내부에서 오랜 시간 일하면서 이 상대주의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장례를 치를 때까지 상대적으로 딱딱 규격화된 몇 개의 모듈의 선택 안에서만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바꾸는 것보다 그대로 물려주는 게 더 많을 수 있다는 것이죠. 만약 당신의 자녀 혹은 미래의 자녀가 지금 다니는 직장에 취직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분이라면 걱정은 없겠지만 이 질문에 어떤 짜증과 두려움, 걱정이 순간 든다면 분명 당신이 받는 것 같은 고통이 대물림 되길 바라지 않을 겁니다.
세상에 좋은 기업에 존재하듯 분명 블랙 기업은 있습니다. 신기한 건 망하라고 외쳐도 오랜 기간 생명 연장을 하면서 잘 되는 기업이 있다는 것이죠. 구직을 앞둔 대학생에게 이름만 대면 1순위로 갈 곳은 아니라고 하는 블랙 기업도 결국에는 누군가 들어가고 회사는 사업을 계속 이어갑니다. 블랙, 혹은 다크그레이쯤 되는 기업에 있는 우리는 어떤 자세여야 할까요? 이런 류의 질문에 정답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제 생각을 조금 나누고자 합니다.
나도 모르게 저지르는 내로남불
우리는 ‘내로남불’이라는 단어를 잘 압니다. 나에게는 관대한 인간의 속성에 관한 말인 내로남불은 전방위로 퍼져 계속 회자됩니다. 특히 내가 생각하기에는 작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일이 많습니다. 내게는 작은 것, 무신경하게 넘길 수 있는 것일지 몰라도 남은 답답함을 느끼는 그런 경우 말이죠.
같은 사람이라도 그 사람에게 무슨 옷을 입히냐에 따라 자연스레 대하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같은 사람을 주유원으로 대할 때와 바이어로 대할 때 우리는 분명 사뭇 다른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예전에 주유소에서 잠깐 아르바이트했을 때 만난 운전자 중 일상적으로 대화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손으로만 가득 넣어 달라고 제스처를 취하거나 다짜고짜 반말인 사람이 훨씬 많았습니다. 주유복을 벗으면 그렇게 대하지 못할 사람들이, 단순히 상대방이 주유원 복장이고 자기가 돈을 낸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은연중에 취급했을 수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식당에서 종업원을 대할 때 등 작은 부분에서 무심코 행동하지만 남에게 상처가 되는 일을 한 적이 적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재벌까지 가지 않아도 ‘젊은 꼰대’로 명명되는 사람은 요즘 도처에 있습니다. 특히 스타트업 붐으로 많은 투자금을 받아가며 경영자가 된 사람 중에 꼰대가 되어 몇 년 전 자신의 절박함이나 사회를 대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회적 물의와 화제를 낳는 일부 청년도 있습니다. 올바른 창업자를 함께 물 먹이는 이런 사람들을 비롯하여 사회 전반적으로 아직 꼰대가 아닐 뿐 잠재적 꼰대로 커가는 사람이 적지 않고 큰 조직에는 더 많습니다.
블랙기업은 사실 이런 젊은 꼰대를 양산하기에 적당한 부화장입니다. 실무자까지도 불법을 무심히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회사의 아젠다 중에서는 도덕 윤리까지 가지 않아도 실정법 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정책도 적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경영의 효율성’일 수도 있지만 ‘이익에 눈이 먼’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상사가 회사에 돈이 없다고 협력 업체에 대금 지불을 유예하라고 하면 그냥 유예합니다.
사실 그 상사는 회사에 돈이 없다고 하니까 스스로 지불을 유예하겠다라고 생각한 걸지도 모릅니다. 충성심=조직 내에서의 입지, 이게 그 상사의 결정을 만든 입장이죠. 어떨 때는 경영진에서 불법인지도 모른 채 오더가 내려옵니다. 주변을 불안에 떨게 만든 후 법무 부서에서 안 된다고 해야 한 발 빼고 틈을 기다리죠. 이런 일을 진행하면서 실무자들은 그게 불법인지 아닌지도 모른 척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불법은 무심히 벌어지고 손발이 되었던 실무자는 무심결에 불법을 함께 저지르는 상황이 생깁니다.
결국 우리는 언젠가 결정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 회사의 관리자가 되거나 다른 회사, 더 작은 회사에서 입김을 불어 넣는 일을 언젠가는 어떤 모습으로든 맡게 됩니다. 학습에 의해 그런 의사 결정 패턴이 쌓인 사람은 결국 그렇게 일하고 또 그런 회사를 만들 것입니다. 지금 보고 들은 걸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행하면 그런 구조를 또 어딘가에서 양산할 것입니다.
지금 실무자 한 명이 나중에 하나의 구조를 결정짓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지금 ‘어차피 내 이야기가 아닌데’라고 구조를 보는 게 아닌 ‘구조 속의 나’를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구조 속에 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미래의 자녀가 이런 구조에서 살아가길 바라지 않는 것은 다소 모순적인 생각입니다.
블랙 기업 출신은 또 다른 블랙 기업 DNA를 전파하고 다닙니다. 어디서 ‘그 회사 출신은 안 돼’라고 할 때 그 회사가 그냥 미워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상당 부분은 그 회사의 문화나 일하는 방법을 알고, 몇 번 부딪히고 난 후 그 회사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일부 회사는 회사의 크기와 명성만을 보고 그 회사 출신을 경력직으로 높은 자리에 뽑기도 합니다.
모든 그 회사 사람이 나쁜 사람은 아닐 것이지만 스스로 깨어있지 않은 블랙 기업 출신 인사는 결국 정제되지 않은 블랙 기업의 문화를 이직한 회사에 심습니다. 기존에 일 잘하던 직원들이 갑자기 온 경력자 때문에 퇴사 욕구를 말하기 시작하는 것도 이 시점입니다. 직장인 익명 게시판에서는 어느 회사에서 온 임원 누구를 다시 데려가라 이런 글이 올라오는 웃픈 상황이 벌어집니다.
따라갈 것인가, 피할 것인가, 꿈틀거릴 것인가
블랙 기업에 다니는 우리에게도 같은 선택지가 주어집니다. 따라갈 것인가, 피할 것인가, 꿈틀거릴 것인가. 기존 블랙 기업의 헤게모니에 맞게 따라갈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상대적으로 더욱 충성스럽고 조직의 일하는 철학에 부합하는 인물로 권력 윗자리에 오를 수도 있습니다. 이 사다리에 윗자리는 몇 개 없다는 게 함정이지만요.
피할 수도 있습니다. 그만두는 겁니다. 그만두고 또 다른 곳으로 가서 거기가 블랙 기업이면 또 그만두고 화이트 기업을 찾을 때까지 잡 노마드가 되는 것입니다. 아니면 꿈틀거리는 겁니다. 블랙 기업에 일정 기간 다니며 생각을 해 보는 겁니다. 일정 권한이 주어지면 권한 안에서 바르다고 생각하는 철학을 따라 몇 가지를 시도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대로 따라가는 선택지부터 생각해봅시다. 성공할 경우 안정적인 환경에서 계속 다닐 수 있지만 성공 확률이 희박합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아무리 진골, 성골 출신이라고 해도 물리적인 자리 자체가 부족하기에 결국 권좌에서 밀릴 수 있습니다. 끓는 냄비에서 버틸 자신이 있다면 추천합니다. 사실 이 방법을 마냥 손가락질할 수도 없습니다. 평가는 법원과 시장이 하겠죠.
피한다고 해봅시다. 일부 성공이 있습니다. 특히 아직 연차가 어릴 때 경력이 뽀송뽀송할 때는 이직이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이직은 놀이공원 몇 개 놀이기구 이용권과 비슷합니다. 이직의 횟수도 이직의 시간적 간격도 제약이 따릅니다. 다음 회사가 받아 줄 만한 뭔가가 있어야 이직이란 게 성립됩니다. 쌓인 성과나 노하우가 없으면 이 길이 쉽지 않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이고 난 다음입니다. 대리급 이상 말이죠.
신입이 아니기에 기업마다 기대치가 있습니다. 당장 여기서 이 정도의 일을 해 줄 사람 말이죠. 중요한 것은 이 일을 보는 프레임과 조직에서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입니다. 블랙 기업에서 하던 방법으로는 환영받을 수 없습니다. 넘치는 보고서에 지속된 야근, 뚜렷하지 않은 회의 아젠다, 답습되는 전략, 실행보다는 검증에 초점을 맞추는 태도, 까칠하거나 답답한 소통 등 많은 단계와 느린 일의 실적은 블랙 기업 선배들이 만들어 온 그대로입니다.
이런 사람은 피한다고 해도 결국 커리어의 한계를 빨리 맞습니다. 글의 서두에서 말한 ‘젊은 꼰대’일수도 있고 ‘내로남불’ 식 인식하지 못한 불법을 계속 저지르는 사람일 수도 있기에 많은 변화가 필요합니다. 더 문제는 이런 사람이 만드는 회사입니다. 더 작은 회사를 가서 권한이 많아지면 또 하나의 블랙기업을 만듭니다. 앞서 언급한 블랙 기업 출신 임원들이 만드는 민폐는 스타트업 경영진으로서 직원으로 입사한 청년에게 시작부터 좌절을 주는, 이름만 스타트업인 회사를 만드는 데도 기여합니다.
결국 블랙 기업에 다니는 사람은 블랙 기업 안에서 꿈틀거려야 합니다. 타산지석, 반면교사 말입니다.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지금 뭐라도 기록해야 하고 생각하는 게 필요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수동적으로 물들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이 판을 이해하고 정리해서 자신만의 프레임을 만드는 게 여기서 해야 할 일차적인 일입니다. 구조를 머릿속에 그리고 마냥 절망할 게 아니라, 있는 동안 구조를 어떻게 바꾸면 절망은 피할 수 있겠다는 밑그림을 그리면 됩니다. 어차피 정년까지 한 회사만 다닐 건 아니기에 직장인인 개인으로서의 자산을 만들어 놓습니다.
권한이 생긴다면 더 좋습니다. 회삿돈으로 실험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철학에 영향을 미치는 돈의 사용, 인재 운영, 사업 설계 등과 관련된 일에 일정 부분의 권한을 갖게 되었다면 할 수 있는 영역에서 기존 패러다임을 전복시킬 작은 폭탄을 여기저기 설치해야 합니다. 쉽게 안 바뀔 겁니다. 보통 회사는 경영자나 주주쯤 되어야 바뀝니다. 하지만 언젠가 어디서 그런 역할을 맡을지 모르고 그때 실력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전에 실력을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좀비가 되기 전에 해독책을 알아두는 것이죠.
마냥 구조에 절망해선 안 됩니다. 언젠가 새로운 땅에서는 좋은 것을 심어 볼 생각을 해야 합니다. 푸념으로 치킨집이나 차리자고 하지만 알바생의 삶의 질도 가게 실적에 영향을 미칩니다. 잘 늙은 어른이 되기 위해 지금 더럽더라도 마냥 절망해서는 안 될 이유입니다. 절망하면 결국 손해 보는 건 자신뿐입니다. 블랙 기업에 입사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그다음은 또 그다음의 문제입니다.
원문: Peter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