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기계화된 공장, 사람이 사라진 공장
영화 속 ‘스마트 공장(Smart Factory)’
무엇이든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약간의 신화와 우화가 가미되는 모양이다. 영화도 그렇다. 세계 최초의 영화는 프랑스의 발명가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열차의 도착>이다.
1895년 12월 28일 프랑스의 한 카페에서 이 영화가 처음 상영되었을 때 스크린의 기차를 보며 관람객이 놀라서 도망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스크린 속 기차가 자신들을 향해 달려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정도는 아니었다는 게 최근의 정설이다. 분명 놀랐겠지만.
낯선 문화나 문명, 혹은 기술과 처음 접촉할 때 누구나 두려움이 앞선다. 영화를 보며 도망친 사람은 없더라도 그 카페에 있던 사람들 모두 이유 없는 공포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런 공포감의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운 문명과 기술에 대한 흥분도 교차했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는 지금의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미래, 변화시킬 미래에는 기대와 우려가 여전히 교차한다(개인적으로는 ‘기대’에 가깝다).
4차 산업혁명의 또 다른 이름 ‘인더스트리 4.0’
애플 아이폰을 조립하는 대만의 폭스콘은 중국에 있는 공장의 직원 대부분을 로봇으로 대체하고 있다. 로봇 자동화는 총 3단계로 진행되는데 사람이 꺼리거나 위험한 작업부터 자동화하기 시작해 최종적으로 생산·물류·검사 과정까지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고 전체 공장을 자동화한다는 방침이다. 이 회사는 이미 ‘폭스봇’이라는 자체 산업용 로봇을 4만 대 넘게 배치했다.
독일 아디다스는 지난해 해외가 아닌 국내에 신발 공장을 열었다. 아디다스가 자국에 공장을 신설한 것은 23년 만의 일이다. ‘스피드 팩토리(Speed Factory)’라고 불리는 공장 덕분이다. 100% 로봇 자동화 공정을 갖추고 있는 이 공장의 상주 인력은 10여 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이 생산하는 운동화는 연간 50만 켤레에 달한다. 기존의 공장이라면 600명의 인력이 필요한 생산량이다.
사람이 사라진 공장, 완전 자동화가 실현된 공장인 ‘스마트 공장(Smart Factory)’은 개별 기술이 아니라 기술 총합으로서의 4차 산업혁명을 대표적으로 상징한다. 기존의 공장 자동화는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기계가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의미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스마트 공장은 공장 시스템이 스스로 판단하고 이에 따라 작업을 수행하는 지능화된 공장을 의미한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인공지능(AI), 스마트 센서 및 물류·보안, 빅데이터, 로봇 등 수많은 요소가 결합해야 한다. 그래서 스마트 공장의 핵심은 제조설비의 물리적 영역과 제어·통신 등의 디지털 영역을 결합한 사이버물리시스템(CPS) 구축이다. 일종의 표준화 작업이다. 가장 앞선 곳이 독일이다. 전 세계가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을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써로게이트>와 <아이 로봇>, 혹은 <모던 타임스>
아쉽게도 스마트 공장을 배경으로 하거나 스마트 공장의 전제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SF 영화는 많지 않다. 영화에서는 주로 스마트 공장이나 공정을 거친 결과물(로봇이나 자동차 등)만을 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만 인류가 자신을 대신하는 로봇을 통해 100% 안전한 삶을 영위하는 미래를 그린 <써로게이트>나 ‘로봇 3원칙’을 깨고 인간을 공격하는 인공지능(AI) 로봇과의 대결을 그린 <아이, 로봇> 등에서 스마트 공장의 일면을 발견할 수 있다. 복제 인간이 나란히 생산라인에 앉아 또 다른 복제인간을 만드는 <아일랜드>도 있지만, 4차 산업혁명의 스마트 공장과 일치하는 모습은 아니다.
오히려 스마트 공장이 가져올 장래의 어두운 단면은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스>에서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영화는 화면을 가득 채운 시곗바늘이 6시를 향해 움직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시계추처럼 정해진 시간에 맞춰 공장으로 출퇴근하는 노동자의 삶과 고충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런 자막이 나온다.
“이 영화는 점점 공업화하는 각박한 사회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인공 채플린은 철강회사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흘러가는 기계에 너트를 조이는 단순 작업을 반복한다.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급기야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라가 볼트를 조이다가 기계에 빨려 들어간다.
그 안에서도 채플린은 볼트를 조인다. “롱샷(long shot)은 희극이고, 클로즈업(close up)은 비극이다.” 영화감독이자 배우였던 채플린의 이 말처럼 <모던 타임스>는 우스운 동작과 농담이 이어지지만, 대량생산 시스템의 발전으로 점점 부품화되는 인간의 비애가 숨어 있다.
인간이 기계화된 공장, 인간이 사라진 공장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대표적 상징물이자 현상인 스마트 공장은 <모던 타임스>와는 정반대의 모습이 될 가능성이 크다(이미 그렇게 되었다). 사람이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온종일 볼트를 조이는 일을 무한 반복하는 일도 발견하기 어렵다.
2차 산업혁명 시대, 공장의 살풍경한 모습과 비애를 그렸지만, 거기에서 사람의 모습만 지운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 스마트 공장의 단면을 그려볼 수 있다.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기계는 쉼 없이 작동하고, 제품을 만들어내지만,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사람이 있던 자리에는 기계(혹은 로봇)가 자리 잡고 있다. 톱니바퀴 속까지 따라 올라가 볼트를 조이는 채플린의 모습도 삭막하지만,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모든 과정을 ‘알아서 하는’ 공장의 모습도 삭막하기는 마찬가지다.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촉발된 1차 산업혁명 때는 기계에 밀려난 사람이 기계를 공격하기도 했다. 대량생산 체제로 촉발된 2차 산업혁명 때는 사람이 기계의 부속품이 되었다고 아우성이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앞두고 우리는 다시 기계에 밀려날지(혹은 부속품이 되거나) 모른다고 우려한다. 그렇다고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에서 기차가 달려오는 장면을 보며 놀라서 달아날 수는 없다.
영화를 보며 비애를 느끼지만, 우리는 언젠가 영화 <모던 타임스>의 장면을 추억하게 될 것이다. 인간이 기계화된 공장의 모습에서, 인간이 사라진 미래의 공장을 상상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언젠가 4차 산업혁명 시대 스마트 공장의 모습을 그린 영화가 나오면 이런 자막으로 시작할지 모른다.
“이 영화는 점점 ‘자동화’하는 각박한 사회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원문: 책방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