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빠르게 성장한 회사. 그런 회사에 흔하게 닥치는 위기가 있다. 그 위기는 직원 수가 한자리 단위를 넘어설 때 슬며시 찾아온다. 바로 경영 부재로 인한 성장 한계다.
규모가 작을 때는 대표가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히 챙기는 마이크로 매니징으로 고속 성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규모가 커지면 마이크로 매니징은 회사에 독이 된다. 사람 수가 늘어나면 대표가 모든 것을 챙기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놓치는 부분이 발생하고 직원들이 이것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면서 회사는 서서히 침몰의 운명을 맞게 된다.
직원들이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대응하면 되지 않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많은 대표님들이 권한을 움켜쥐고 직원들이 자신의 통제에 따르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능동적으로 일하기를 바란다. 시키는 대로만 일하면서 동시에 시키지도 않은 일을 자율적으로 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일단 대표님들은 한 가지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권한이 없으면 주인 의식도 없다.
인류는 이 문제를 역사적으로 어떻게 해결해 왔는가? 인류는 우선 우두머리가 없어도 조직이 잘 굴러갈 수 있는 규칙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우두머리가 조직을 세밀하게 컨트롤할 필요가 없도록 조직 구성원에게 권한을 부여했다.
우두머리 자신은 조직이 거대해질수록 관계에 집중했다. 조직과 조직의 관계에 집중하면 동맹이 형성되었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집중하면 로열티가 형성되었고, 사람과 일의 관계에 집중하면 개개인이 ‘내가 그 일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깨닫게 되면서 사기가 상승했다. 현대의 국가, 군대, 기업은 이런 방식을 시스템으로 발전시켜왔다. 오늘날 인류 역사상 최고의 경영 구루로 칭송받는 피터 드러커의 정의에 따르면 이렇게 인류가 시스템으로 발전시켜온 조직 문제 해결 방식이 바로 ‘경영’이다.
많은 대표님들이 경영자의 위치에 있지만 사실 경영이 뭔지 잘 모른다. 경영을 오해하고 착각하기에 마치 예약이라도 한 것처럼 성장 한계에 부딪힌다. 회사의 성장을 저해하고 위기를 불러오는 대표님들의 착각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대표님들이 흔히 하는 경영에 대한 착각을 다섯 가지로 짚어보았다. 다음 내용은 대표님이 독자라는 전제하에 전개되지만,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착각 1: 나는 스티브 잡스다.
대표님이 스티브 잡스에 빙의되는 이유는 마이크로 매니징의 좋은 핑곗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처럼 시시콜콜 하나부터 열까지 내 생각대로 컨트롤해도 회사가 애플처럼 클 수 있지 않느냐는 논리다. 이 논리는 크게 두 가지가 잘못되었다.
- 당신은 스티브 잡스가 아니다.
- 스티브 잡스는 생각만큼 독불장군이 아니었다.
“옳다 확신하는 것은 당당히 맞서서 지켰습니다. 그러자 저를 계속 승진시켜주더군요.”
잡스의 의견에 반대하며 맞선 결과, 재무 담당자에서 운영 담당 임원을 거쳐 부사장까지 승진한 데비 콜먼이 한 말이다. 잡스는 자기 생각대로만 밀어붙이는 사람은 아니었다. 의견 대립 때문에 직원들과 싸우는 일이 잦았지만 잡스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승진시켰다.
스티브 잡스는 위임도 잘 하는 사람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본격적으로 위임의 위력을 깨달은 시기는 아마도 1986년 즈음일 것이다. 당시 잡스는 ‘넥스트 컴퓨터’와 ‘픽사’ 두 회사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잡스가 깊이 관여한 넥스트 컴퓨터는 실패했고 ‘존 래시터’에게 위임했던 픽사는 승승장구했다. ‘시그래프’에서 픽사의 ‘럭소 주니어’가 최우수상을 받았을 때 감격에 찬 잡스는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외쳤었다.
“이제 알겠어!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이제 알겠다고!”
잡스의 성향은 픽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잡스는 픽사의 성공을 통해 위임을 배웠다. 애플에 복귀한 이후 잡스의 위임은 커다란 위력을 발휘했다. 애플이 출시한 아이팟, 아이맥, 아이폰, 아이패드는 스티브 잡스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기술과 디자인 심지어 아이디어마저도 모두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시너지를 낸 결과였다.
그러니 마이크로 매니징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괜한 스티브 잡스를 팔아먹지 말자. 성격이 그 모양임에도 성공한 잡스가 대단한 것이지, 마이크로 매니징이 위대한 경영 기법인 것은 아니다. 사실 그럴듯하게 매니징이라 부르지만 마이크로 매니징은 경영도 뭣도 아니다. 경영할 줄 몰라서 그냥 사람을 어설프게 수족처럼 부리는 게 마이크로 매니징이다.
착각 2: 야근이 회사에 이익이다.
닭은 자연 상태에서는 5~10년을 산다. 태어난 지 120일 만에 알을 낳기 시작해서 180일부터는 10일에 9개 정도의 알을 낳는다. 달걀 공장의 닭은 1년을 산다. 하루에 하나씩 알을 기계처럼 뽑다가 알이 뜸해지면 강제로 털을 뽑히고 굶겨진다. 그러면 닭은 다시 알을 하루에 하나씩 뽑아내기 시작한다. 그렇게 혹사당한 닭은 1년이 오기도 전에 죽거나 1년을 넘기면 더 이상 알을 낳을 수 없는 지경이 된다. 그런 닭들은 도축장으로 보내진다.
인간들은 그렇게 달걀을 뽑아내는 게 이익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조류독감을 겪으면서 최근에는 그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달걀 공장의 닭들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코르티코스테로이드 호르몬을 분비하면서 면역력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것이 지금은 조류독감으로 닭들이 집단 폐사하고, 양계 시장이 마비되고, 소비자가 달걀을 기피하는 수준에서 끝나지만, 반복된다면 심각한 재앙이 벌어질 수도 있다. 에볼라처럼 조류독감 변종 바이러스라도 생기면 인류에게 스페인 독감 이상의 재앙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닭이 인간이 원하는 만큼 계속 알을 낳을 수 없는 것처럼. 인간도 오랜 시간 동일한 생산성을 유지할 수 없다. 만일 그렇게 믿고 직원을 무조건 오래 회사에 붙잡아두는 게 이익이라 생각한다면 당신은 무능하고 무식한 대표다. 그런 무능한 대표가 있는 회사가 얼마간은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조만간 회사에 ‘어디 어디의 등대’라는 수식어가 붙고 본사 옥상에서 사람이 투신하면 잘 나간다는 생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피터 드러커는 기업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종의 사회 제도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이 직원의 삶의 가치를 고민하고 향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피터 드러커가 처음 이 주장을 했을 때는 아무도 듣지 않았다. 심지어 공산주의자라 매도했다. 그러나 기업들은 저임금과 철야로 직원들을 공장에 붙들어놓고 제품 생산량만 늘려봤자 구매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시장을 유지시키는 구매력이 자신들이 착취하고 붙잡아놓은 직원들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제는 피터 드러커가 옳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구글, 자포스, 페이팔같이 직원들의 삶의 질을 신경 쓰는 기업들이 성공하면서 피터 드러커의 기업의 정의가 옳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심지어 직원 대우가 악독하고 살벌하기로 유명했던 GE조차 최근에는 구글과 비슷하게 인적자원관리 시스템을 바꾸면서 경영 성과가 크게 개선되고 있다. 대표님들이 알아야 한다. 기업의 역량은 결국 기업에 있는 사람의 역량에 달렸다는 것을. 사람의 가치를 높게 여기면 기업의 가치도 높아지게 되어있다.
착각 3: 마케팅만 잘하면 잘 팔린다.
마케팅만큼 제대로 이해된 적이 없는 비운의 단어도 드물 것이다. 90년대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마케팅을 ‘영업 전략’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주로 ‘광고’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때문에 마케팅이 뭔지 잘 모르는 대표님들은 이런 말을 하기 쉽다.
“우리 제품은 마케팅이 필요 없어!”
“돈 안 드는 마케팅을 해야지!”
마케팅은 광고가 아니다. 광고는 마케팅의 일부일 뿐이다. 마케팅은 고객 중심 시장 활동의 총체다. 마케팅은 2차 산업혁명 이후 생산자 중심으로 제품을 만들던 것에 대한 반성으로 생겨난 개념이다. 고로 마케팅은 고객이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아내어 니즈에 맞는 제품을 생산하는 것을 시작으로 한다. 제품 기획에서부터 마케팅이 시작되는 것이다. 마케팅의 본 의미를 대입하면 위의 말들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되어버린다.
“우리 제품은 고객이 필요 없어!”
“돈 안 드는 제품을 만들어야지!”
마케팅만 잘하면 잘 팔린다는 말은 마케팅의 본뜻을 대입하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마케팅을 광고로 생각한다면 완전히 잘못된 말이다. 무엇이든 본질이 중요한 법이고, 비즈니스의 경우에 본질은 제품이다. 마케팅이 잘 되었다면, 그러니까 사람들이 꼭 필요로 했던 니즈를 제대로 짚어서 가치를 만들어냈다면 그 제품은 딱히 광고를 안 해도 잘 팔리게 되어있다. 그러나 니즈의 고민 없이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제품을 만들어놓고 광고를 잘 해서 팔리기를 바란다면 당신은 사업가가 아니라 사기꾼이다. 제품만 가치가 없는 게 아니라 당신도 사업가로서의 가치가 없으니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게 좋다.
착각 4: 경쟁해야 살아남는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평정하는 히트 상품들이 어떤 배경에서 탄생하는지 살펴보면 한 가지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히트 상품은 꼭 기존 제품들이 치열한 경쟁으로 서로 비슷해지면서 매력을 잃어갈 때 등장한다. 구글 검색이 그랬고, 아마존이 그랬고, 이케아가 그랬고, 아이폰이 그랬고, 에어비앤비가 그랬다.
경쟁은 경쟁자를 의식하는 것이다. ‘마이클 포터’를 필두로 정통한 마케팅 전략은 경쟁을 중시해왔다. 경쟁자의 제품을 철저히 분석하고 대비해야 제품 차별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그 논리는 틀렸다. 크게 히트를 친 제품들은 하나같이 경쟁자들이 대비조차 하지 못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장에 접근하여 기존 가치를 완전히 대체할 새로운 가치를 제공한 것들이었다.
경쟁자를 의식하고 경쟁자를 분석하면 차별화는커녕 오히려 경쟁자를 닮아가게 된다. 내가 경쟁 제품을 분석해서 더 좋은 기능을 추가하면 경쟁자는 내 제품을 분석해서 제품을 업그레이드한다. 이런 방식은 피 말리는 접전을 유도할 뿐, 근본적인 차별화를 달성하기 어렵다.
차별화된 제품으로 경쟁자를 물리치고 싶다면 경쟁에 집중하기보다는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역량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같은 카테고리의 사업이라 해도 각 기업의 역량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기업의 역량은 기업에 속한 사람의 역량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각 사람은 살아온 배경부터 성격까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역량도 지문만큼 다양할 수밖에 없다.
기업의 구성원 각자가 자기 역량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유도하면 기업의 역량도 향상된다. 그 역량에 집중해서 니즈에 맞는 제품을 탄생시키면 차별화된 제품으로 시장을 평정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은 사람이 중요하다. 제품을 소비할 사람들이 중요하고, 제품을 만들 사람들이 중요한 것이다.
착각 5: 성공하는 경영 공식이 존재한다.
중학생 시절에 어느 회사의 사장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던 것 같다. 그때는 경영을 잘하는 공식 같은 게 존재하고, 그런 공식은 대기업들만 비밀로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어린 시절 내가 상상했던 경영 공식은 워드프로세서 양식 같은 걸로 가득 찬 기밀문서였다.
어른이 되고 보니 그런 상상은 나만 한 게 아니었다. 경영 전략을 짠다며 어디선가 익숙한 양식을 구해와서 회사 상황을 양식에 억지로 구겨 넣는 광경이 여러 번 목격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 문서 양식의 출처는 어느 저명한 인사나 유명한 기업의 방법론일 것이다. 물론 방법론은 중요하다. 보통 그런 방법론들은 특정 비즈니스를 경험하면서 여러 시행착오 끝에 나온 경험치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방법론이 아니라 방법론과 관련된 양식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있다. 방법론이 나오게 된 배경에서부터 방법론의 본질에 이르기까지 깊이 있게 이해할 생각은 없이, 단지 돋보이고 싶어서 수박 겉핥기로 양식만 가져다 쓰는 허영심 많은 사람들 말이다.
양식은 중요하지 않다. 본질을 터득하고 나면, 우리 회사 상황에 맞는 더 좋은 양식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방법론은 도구로 접근해야지 공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오늘은 옳았던 방법이 내일은 틀릴 수도 있다. 경영은 그만큼 변수가 많고 변화무쌍하다. 경영은 사회과학이다. 세계의 다양한 기업들의 비즈니스 역사가 쌓여 경영학이 되는 것이다. 역사에 족적을 남긴 기업들의 비즈니스를 이해한 후, 방법론들이 나온 배경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현재 우리 상황에 맞는 우리 기업의 거시적 의사 결정을 내리고 올바른 시스템을 만들어 갈 수 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길이 있을까
그렇다면 경영의 본질은 어떻게 습득할 수 있을까? 정답은 책이다. 서점에 가면 훌륭한 경영학 구루들의 정수를 만나볼 수 있다. 그런 책들은 하나같이 다른 기업의 사례를 통해 경영의 본질을 탐색한다. 따라서 문서 양식 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은 좋은 경영 서적이라 할 수 없다.
경영의 본질을 짚으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좋은 경영 서적이다. 예를 들자면 『일잘 팀장은 경영부터 배운다』 같은 책이 그런 책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쓴 책이긴 하지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역사∙사회∙문화 등 다양한 사례와 예시를 통해 경영∙전략∙마케팅 등에 대한 본질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아주 좋은 책이다.
『일잘 팀장은 경영부터 배운다』는 전국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다.
원문: 여현준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