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같이 달콤한 책들을 만나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늦었다. 요즘 유행하는 패러디 유머 중 하나인데요. 유머라지만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에요. 요는 ‘늦었다’의 의미일 텐데요. ‘늦은’ 것은 단지 늦은 것이지 ‘끝난’ 것은 아니라는 거죠.
차가 밀려 영화 상영시간에 극장에 도착하지 못했다면 늦은 거고, 게으름 피우다 강의시간에 지각했다면 그건 분명 늦은 거죠. 그러나 영화는 상영되고 있고, 강의는 한창 진행되고 있어요. 늦게라도 들어갈 것인지, 조금 늦었다고 포기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의지의 문제이고 선택의 문제인 거죠.
입추와 처서를 지난 이즈음 피서를 떠나기로 마음먹는 건 분명 늦은 결정일 거예요. 한여름 혹서기도 지났고 아침나절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늦었다고 망설이거나 주저할 필요는 없어요. 다시,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단지 늦은 것이지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니까요. 저와 함께 조금 늦은 피서 한번 떠나보실까요?
사실 저는 올여름 피서를 제대로 즐기고 있어요. 그러니 늦은 피서라기보다는 여름 내내 피서를 즐기고 있는 거죠. 물론 동행도 있지요. 책이라는 동행이죠. 이쯤 저의 피서 장소도 공개할 때가 된 것 같네요. 저의 피서지는 도서관이에요.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책과 함께 하는 도서관 피서”인 셈이죠. 더위도 피하면서 삶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도 얻고, 즐거움까지 얻는 일석삼조의 알찬 피서법이죠. 이제부터 책과 함께 하는 저의 도서관 피서법을 공개해 볼게요.
다가오는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책, 『호모데우스』
전작 『사피엔스』로 역사 서술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유발 하라리의 신작 『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가 올해 저와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한 피서여행의 동료였어요.
지난 역사의 시간 동안 인류의 가장 큰 과제이던 굶주림과 질병, 전쟁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무엇인가? 지구를 평정하고 신이 된 인간은 어떤 운명을 만들 것인가? 인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갈 것인가? 100년 뒤 세상은 어떤 모습이고, 앞을 향해 치닫는 과학혁명의 정점은 어디인가?
숨이 멎을 만큼 굵직한 질문으로 점철된 책이고, 인류의 미래에 대한 논쟁적 주장이 장엄하게 펼쳐지는 최후의 서사시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정작 제 관심을 끈 건 본문의 엄청난 서사라기보다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가벼운 지식이었어요. 피서니까요. 너무 심각해지면 다시 더워질지 모르잖아요. ‘잔디의 역사’라는 내용이 반갑더라고요.
개인의 집과 공공건물 입구에 잔디를 심는다는 생각은 중세 말 프랑스와 영국 귀족들의 저택에서 탄생했다. 그중 최초는 16세기 초 프랑수아 1세가 지은 루아르 계곡에 있는 샹보르 성의 잔디밭이었다.
이후 잔디밭을 가꾸는 습관은 근데 초기에 깊이 뿌리내려 귀족을 상징하는 표식이 되었다. 잘 관리된 잔디밭을 갖기 위해서는 땅은 물론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잔디 깎는 기계와 자동 스프링클러가 없던 시절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가난한 농부들은 잔디 따위에 귀중한 땅과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다. 대저택 입구에 깔린 정갈한 잔디는 따라서 누구도 위조할 수 없는 지위의 상징이었다. 잔디는 지나가는 모든 행인에게 당당히 공표했다. ‘나는 부자이고 힘이 있다. 그리고 이 푸르른 사치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많은 땅과 농노를 소유하고 있다.’
잔디밭이 넓고 잘 정돈되어 있을수록 힘 있는 가문이었다. 어느 공작의 집을 방문했는데 그의 집 잔디밭이 형편없다면 그가 곤경에 처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귀한 잔디밭은 중요한 축하연과 사회적 이벤트들이 열리는 무대였고, 그렇지 않을 때는 엄격한 제한구역이었다.
지금까지도 수많은 궁전, 정부청사, 공공장소에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단호히 명령하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동시에 잔디는 스포츠 세계를 평정했다. 지난 200년 동안, 축구와 테니스의 진짜 중요한 경기들은 잔디밭에서 열렸다. 아프리카와 남미의 빈민가 아이들은 모래와 흙 위에서 공을 차지만 잘 사는 동네에서는 부잣집 아이들이 공들여 관리한 잔디밭에서 축구를 즐긴다.
인류는 이런 식으로 잔디를 정치권력, 사회적 지위, 경제적 부와 동일시하게 되었다. 미국 교외의 깔끔하게 정돈된 잔디밭은 부자의 사치에서 중산층의 필수품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길을 걸어갈 때 잔디밭의 넓이와 잔디의 질만으로 그 집의 부와 지위를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이웃집에 뭔가 우환이 있다는 표시로 앞마당에 방치된 잔디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다.
잔디는 요즘 미국에서 옥수수와 밀 다음으로 널리 재배되는 작물이고, 잔디산업(잔디, 퇴비, 잔디 깎는 기계, 스프링클러, 정원사)은 매년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인다.
잔디 이야기는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에도 나오죠. 『호모 데우스』와는 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잔디인데요. 놀랍게도 프랑스 공원의 잔디밭 푯말에서 똘레랑스(관용)의 의미를 뽑아내고 있어요. 우리나라 같았으면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다소 위압적인 명령문이 있을 법한데 프랑스 공원에는 “존중하시오, 그리하여 존중하게 하시오.”라고 쓰여 있다는 거예요. 잔디 하나로 참으로 다양한 인문학적 성찰을 이끌어내고 있어요.
올 상반기에 저는 아주대 공공정책대학원에서 수원시의 공직자들과 함께 ‘독서와 글쓰기’ 강좌를 진행했어요. 거기서도 ‘잔디와 똘레랑스, 인문행정’이라는 내용으로 토론도 하고 인문행정의 의미도 공유했던 기억이에요. 이쯤 되면 저의 도서관 피서는 여러모로 쓸모가 있는 알찬 피서였던 셈이죠.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는 책, 『칼날 위의 역사』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가 인류의 미래를 예감하게 하는 책이라면 그와 반대로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책도 있어요. 마침 도서관 피서 때 함께 했었죠. 조선의 아픈 역사를 다룬 에세이집인데요. 먼저 충격적인 내용을 소개할게요.
조선은 두 번 망했다. 선조 때 한 번 망하고, 고종 때 또 망했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은 어쩌면 세 번째 패망의 길로 치닫고 있는지 모른다. 임진왜란 때 임금은 백성과 도성을 버리고 도망쳤다. 목적지는 요동이었다. 조선의 왕을 포기하고 명나라의 제후가 되어 속 편하게 살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왕의 안중엔 백성도 나라도 없었으니, 그게 망한 것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일제강점기 독립군이 총 한 자루를 구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생각한다면, 지금의 우리 군이 그 독립군의 정신을 털끝만큼이라도 계승했다면, 적어도 방산비리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절절하게 와 닿는 이야기지요. 새겨들어야 할 고언이고요.
이 책 역시 피서지에서 만났는데요. 역사학자 이덕일의 『칼날 위의 역사』에요. 앞서 짧게 소개했는데도 읽을 당시의 흉통이 다시 느껴지네요. 즐겁고 유쾌한 피서여야 하는데, 우리의 역사는 왜 이리도 아프게 다가오는 걸까요.
이 책 읽을 땐 정말 우울하고 슬펐어요. 잠시 피서를 망쳐버렸던 거죠.
건조한 마음을 달래는 책, 『바깥은 여름』
심란한 마음을 달래는 방법은 아무래도 문학에 기대는 수밖에 없겠다 싶더군요. 역시 문학은 날카롭고 예리한 송곳이기보다 삶의 핍진성과 진정성을 에두른 따듯한 문장이어야 제맛이지요. 일테면, 이런 문장이랄까요.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
– 김애란 소설집, <바깥은 여름> 수록작 중「풍경의 쓸모」에서
김애란의 신작 소설집 『바깥은 여름』은 그런 의미에서 피서지에서의 한나절을 시원하게 달래주는 청량제 같은 동료였어요. 『비행운』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소설집 『바깥은 여름』은 역대 최연소 수상으로 화제를 모은 이상문학상 수상작 「침묵의 미래」와 젊은작가상 수상작「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포함해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렸어요.
가까이 있던 누군가를 잃거나 어떤 시간을 영영 빼앗기는 등 상실을 맞닥뜨린 인물의 이야기, 친숙한 상대에게서 뜻밖의 표정을 읽게 되었을 때 느끼는 당혹스러움, 언어의 영(靈)이 들려주는 생경한 이야기 등이 김애란 특유의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로 펼쳐지죠.
멋진 피서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책, 『라틴어수업』
끝으로 저의 피서를 오롯이 지적 호기심으로 달뜨게 했던 책을 소개해야겠어요. 거두절미하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도 ‘강추’하고 싶은 책이고요.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흐름출판)이라는 책인데요. 저자가 워낙에 탁월한 공부쟁이어서 좋은가 싶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이 책이 인기를 끄는 데는 전혀 다른 이유가 있더군요. 이 책은 단순히 라틴어를 가르치는 어학 교재가 아니에요. 그보다는 그리스로마 시대의 음식, 놀이 문화, 사회제도, 법, 종교 등 다채로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는 책이죠.
평소 인문학 책 읽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이라면 『라틴어 수업』을 통해 맛깔스럽게 정리된 풍부한 인문학 식단을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단지 지식의 단맛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신기한 경험도 하게 될 테고요.
팁으로 <라틴어 수업>의 한 자락만 보여드릴게요.
Hoc quoque transibit!(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금의 고통과 절망이 영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어디엔가 끝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마침표가 찍히기를 원하지만 야속하게도 그게 언제쯤인지는 알 수 없어요. 다만 분명한 것은 언젠가 끝이 날 거라는 겁니다.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그러니 오늘의 절망을, 지금 당장 주저앉거나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끝 모를 분노를 내일로 잠시 미뤄두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 나를 괴롭혔던 그 순간이, 그 일들이 지나가고 있음을, 지나가버렸음을 알게 될 겁니다.
– 274p
책과 하는 피서를 마무리하며
‘책과 함께 하는 도서관 피서’ 어떠셨나요. 함께 떠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늦었다 싶을 때는 단지 늦은 것이지 세상 모든 일이 끝난 건 아니에요. 조금 늦었지만 이제라도 저처럼 책과 함께 늦은 피서를 떠나보세요.
기왕이면 혼자가 아니었으면 좋겠고요. 연인이나 자녀의 손을 잡고 함께 가보시면 더욱 좋을 거예요. 거기 삶의 의미와 재미를 동시에 만끽하게 할 다양한 지식과 정보의 식단이 차려져 있을 테니까요. 늦더위를 피하는 휴식은 기본이고 딱히 비용을 들일 것도 없이 정신의 자양분까지 얻을 수 있으니 책과 함께하는 피서는 그야말로 알뜰 피서법이죠.
원문: 도란도란 문화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