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노화와 죽음에 도전장을 던지다: 〈프로메테우스〉·〈엘리시움〉과 헬스케어
최근 흥미로운 책을 읽었다.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 전작 『사피엔스』에서 인지·농업·과학 세 개의 혁명으로 인류의 역사를 설명한 저자는 인간에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로 책을 갈무리했다.
7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의 한구석에서 자기 앞가림에만 신경을 쓰는 별 중요치 않은 동물이었다. 이후 몇 만 년에 걸쳐 이 종은 지구 전체의 주인이나 생태계 파괴자가 되었다. 오늘날 이들은 신이 되려는 참이다.
『호모 데우스』는 이런 경고로 시작한다.
전례 없는 수준의 번영, 건강, 평화를 얻은 인류의 다음 목표는, 과거의 기록과 현재의 가치를 고려할 때, 불멸, 행복, 신성이 될 것이다. 굶주림, 질병,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을 줄인 다음에 할 일은 노화와 죽음 그 차체를 극복하는 것이다.
노화와 죽음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고 불멸의 존재를 꿈꾼다. 신이 된 인간, 즉 호모 데우스가 되려 한다는 경고다.
기아·역병을 이긴 인류, 다음 목표는 장수·불멸?
그 싸움은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노화는 물론 죽음까지 기술적 문제로 보는 과학자와 사상가가 늘고 있다. 기술적 문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면 해결할 수 있다. 기아와 질병이 그랬던 것처럼.
구글은 2013년 ‘죽음 해결하기’가 목표인 ‘칼리코(Calico)’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1년 전 구글은 현대 과학의 주력사업이 죽음을 격파하고 인간에게 영원한 젊음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믿는 레이 커즈와일을 엔지니어링 이사로 선임했다. 이어 인간의 불멸을 믿는 빌 마리스를 영입해 구글 벤처스를 맡겼다. 지난 2015년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 나에게 500살까지 사는 것이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그렇다’이다.
불멸을 믿고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는 곳이 구글뿐이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실리콘밸리의 많은 기업가와 투자가들이 이런 꿈을 공유한다. 페이팔의 공동창립자 피터 틸은 “영원히 사는 것이 나의 목표”라고 고백하며 이렇게 강조했다.
죽음에 접근하는 방식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수용하거나, 부정하거나, 싸우는 것이다. 수용하거나 부정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나는 싸우는 쪽이 좋다.
얼마 전까지 기아, 역병, 전쟁과 싸우기에도 힘에 부쳤던 인간이 노화, 심지어 죽음에 맞서 선전포고를 하게 된 배경은 과학기술의 발전이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로봇과 사물인터넷(IoT)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며 더욱 자신감이 넘친다.
인간의 행복이 과학기술,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의 주요 임무라면, 그 기술을 노화와 죽음을 정복하는 데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싸움은 이미 시작됐다. 헬스케어, 혹은 바이오 테크톨러지가 바로 그것이다. 이미 익숙한 기술과 용어 아닌가.
〈엘리시움〉과 〈프로메테우스〉의 자동 진단치료 캡슐
2154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 〈엘리시움〉에는 두 개의 세상이 존재한다. 병들고 황폐해진 지구와 깨끗하고 풍요로운 우주 도시 엘리시움. 병든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꿈은 엘리시움으로 가는 것이다. 작업 도중 치명적인 방사능에 오염된 맥스(맷 데이먼)는 자신이 살기 위해. 프레이(앨리스 브라가)는 백혈병에 걸린 사랑하는 딸을 구하기 위해.
엘리시움에 가려는 이유는 하나다. 그곳에 자동진단치료 캡슐이 있기 때문이다. MRI(자기공명영상장치)처럼 생긴 이 캡슐은 그야말로 만병통치 최첨단 의료시스템이다. 폭발로 얼굴의 반이 날아간 경비대장이 캡슐에 눕자 스캐닝을 한 뒤 곧바로 근육과 피부, 신경을 재생하는 수술에 들어간다.
코마 상태에 빠진 아이가 눕자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하고 유전자 치료에 들어가 아이의 병을 완치한다. 스캐닝부터 진단과 치료·수술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몇 초, 몇 분에 불과하다.
불행하게도 대부분 지구인은 이 의료시스템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엘리시움에 사는 선택된 사람만 혜택을 누린다. 영화에서 캡슐과 의료시스템은 단순히 병을 고치는 기계가 아니다. 신분과 계급을 나누는 경계선이다. 캡슐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엘리시움의 사람들은 그곳에서 불멸을 꿈꾸며 행복한 삶을 영위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프로메테우스〉에서도 비슷한 장치가 나온다. 배경은 2085년, 에일리언에 감염(?)된 주인공 엘리자베스 쇼 박사(누미 라파스)는 자동 진단치료기를 작동시켜 수술을 받으려 한다.
‘낙태’ 코드를 누르자 ‘설정되지 않은 수술’이라는 답이 뜬다. 곧바로 외과 수술로 코드를 바꾸고 ‘이물질 제거’를 명령한다. 자동 진단치료기는 이물질의 위치를 스스로 읽고 즉시 수술에 들어간다. 살을 자르고 이물질을 제거하고 봉합하는 전 과정이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이 영화에서도 영생과 불멸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이라는 주제가 관통한다. 인류의 기원을 찾아 나선 프로메테우스 호의 탐사대 임무는 사실 이 우주선에 타고 있던 피터 웨이랜드(가이 피어스) 회장이 영원히 사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불멸의 존재는 인간이 아니라 인조인간 데이빗(마이클 패스밴더)이다. 데이빗은 살아남아 〈에이리언:커버넌트〉로 이어진다. 두 영화를 꼭 같이 보시길.
빅데이터·AI 기반의 맞춤형 치료와 정밀의학
물론 먼 미래의 이야기다. 하지만 치료(Therapy)와 진단(Diagnosis)을 동시에 진행하는 ‘테라그노시스(Theragnosis)’ 연구는 국내에서도 10여 전 전부터 진행 중이다. 헬스케어+빅테이터, 헬스케어+ICT의 결합과 융합이 의료 분야의 화두가 된 지도 오래다. 빅데이터와 AI를 적용하는 헬스케어 기술은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의료계의 패러다임은 단순한 진단과 치료에서 환자 개개인의 유전적·환경적 요인과 생활 습관까지 고려해 환자별로 최적화된 치료법을 제공하는 개인별 맞춤 치료로 전환하고 있다. 이른바 ‘정밀 의학(Precision Medicine)’이다. 유전자 해독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알고리즘화가 의료의 키워드가 되는 셈이다. 구글의 딥마인드 헬스 프로젝트, IBM의 왓슨 인공지능 암센터 등이 이러한 변화를 주도한다.
전문가들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엘리시움〉과 〈프로메테우스〉의 자동 진단치료 캡슐이 허황된 꿈만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그때가 되면 불멸까지는 몰라도 평균수명은 많이 늘어날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분명 〈호모 데우스〉를 쓰기 전 두 영화를 봤을 것 같다.
원문: 책방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