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이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새롭게 들리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언론 등지에서 너도나도 ‘헬조선’, ‘수저계급론’을 입에 담더니 별안간 내리막길을 걷는 듯한 단어가 되었다. 쌓인 게 많아서, 억울해서, 다 같이 분노해봤다. 하지만 다들 알고 있었다. 사회는 ‘노오오오오오력’을 강조하는 것밖에는 못 한다며, 개인들에게 책임을 다 떠넘긴다며 비웃어봤자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결국 ‘노오오오오오력’ 뿐이라는 것을.
‘헬조선’이라는 단어는 애초에 분노로만 만들어진 단어는 아니었다. 체념과 자조, 그리고 분노가 뒤섞인 그런 복잡한 한국인의 심리를 대변하는 단어였다. 이제 분노는 잠잠해지고, 마음속 한켠의 불만으로 남았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은 노력뿐이라며 오늘도 주섬주섬 가방을 들고 학교로, 일터로 향할 수밖에.
그런데 미칠 노릇이다. 뼈를 깎을 정도로 노력해도 모자랄 판에 오늘도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다는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이제부터는 퇴근 후에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학원도 다니고 책도 읽고 논문도 읽고 자격증 공부도 하고 등등 치열하게 자기 계발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는데, 막상 휴일을 거쳐 일상으로 복귀하고 보니 그 동기부여가 도무지 어제와 같지 않으니 이게 어찌 된 일인지.
해야 할 것에 대한 걱정, 기대, 불안 등 온갖 잡념들이 밀려든다. ‘잘할 수 있을까?’ ‘귀찮다… 그냥 쉬고 싶다.’ ‘이런다고 뭐가 바뀔까?’ ‘오늘만 쉬고 내일부터 열심히 살면 안 될까?’ 생각만 부지런하다. 결론 내릴 생각은 저만치 달아난 듯하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나름 고민한 티는 내봤으니 오늘은 퇴근하자마자 집에 가서 좀 쉬어도 되지 않을지.
동기부여가 부족해?
동기부여에 의미부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절박한 이유를 만들어야 노력하는 것도 수월해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아무도 자기계발서를 통해 뭔가 삶을 뒤바꿀 비법이라든가 노하우를 얻으리라는 기대 따윈 하지 않는다. 단지 ‘성공했다’는 저 사람의 자랑 이야기를 한참 듣고 나면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 ‘나는 그동안 뭘 하고 살았던가’ 따위의 자기반성과 다짐이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예상 때문에 자기계발서를 집어 드는 것 아니겠는가.
때로 인터넷에 ‘동기부여’를 검색해보기도 한다. 성공한 사람들,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앞서 노력했던 사람들이 남긴 주옥같은 일화를 엿본다. 드라마틱한 성공의 여정을 보며 잠시 나에게도 그런 성공의 여정을 덧입혀본다. 나에게도 한 번쯤 저런 일이 일어났으면. 나도 한 번쯤 주인공이 되어 봤으면.
최근 인터넷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라는 제목을 만났다. 이번엔 또 무슨 뻔한 이야기이려나 싶다가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클릭해 봤다.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와 한국의 피겨 여왕 김연아의 이야기였는데 ‘연습을 할 때 주로 어떤 생각을 하는가’ 같은 질문을 한 모양이다. 어떤 대답을 했는지 먼저 아래의 사진을 살펴보도록 하자.
‘그냥’ 한단다. 별생각 없이 ‘그냥’ 하는 거란다. 뭔가 대단한 동기부여 노하우라도 나올까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적잖이 실망스러운 대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의 대답은, 적어도 나에게는 무척이나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전체 영상을 다 본 것은 아니어서 전후 관계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그냥 한다’는 말이 주는 울림은 무척이나 크게 다가왔다. 왜?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면서도 게으름 부리고 미루기만 할 뿐, 노력하지 못하고 그저 자기계발서나 동기부여 영상이나 찾아 헤매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진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동기부여가 노력의 방해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는가? 그 일을 해야만 하는,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하는 절박한 이유를 찾는다는 것은 사실 절박한 이유를 못 찾으면 안 하겠다는 의미일 수 있다. 다시 말해 때때로 동기부여 타령이란 결국 계획만 세워둔 채 실천하지 않은 자신의 행위에 ‘동기부여가 부족했다’는 식으로 변명거리를 만들어두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인지도 모른다.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목표 달성에 방해가 되는 행동을 실컷 해놓고 나중에 결과가 좋지 않자 그 행동만 아니었다면 충분히 잘할 수 있었다는 식으로 과거의 행동을 구실로 삼아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것. 심리학에서는 이를 두고 자기 불구화 전략(Self-handicapping strategy)이라고 부른다.
결론적으로 절박한 동기부여를 찾고자 헤매느라 정작 해야 할 일들을 무한정 미루고나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일이다. ‘동기부여가 부족하다’ ‘동기부여 강의가 필요하다’ ‘동기부여 책이 필요하다’ ‘동기부여 영상이 필요하다’는 변명을 통해 노력하지 못한 것에 대해 합리화하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모든 것을 내던지고 오로지 그 일에만 몰두할 정도로 스스로를 몰아붙인, 그런 동기부여의 순간을 살면서 과연 얼마나 만나 보았는가?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사실 그런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을. 책에서야 수도 없이 ‘일에 미쳐라’ ‘공부에 미쳐라’ ‘꿈에 미쳐라’ ‘미쳐라’ ‘미쳐라’ 한다지만 사실 그럴 일은 요원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머리보다 손이 더 앞서게 하라. ‘그냥’ 시작하라. 어지러이 떠오르는 생각들에 휘둘리지 말라. 걱정, 기대, 불안, 희망, 가능성 모든 것들을 접어두고 ‘그냥’ 시작하라. 머릿속에서 생각이 시작되는 순간 노력하지 않는 행동에 대한 정당화(justification), 합리화(rationalization)의 가능성이 싹트는 법이다. 생각의 연쇄를 따라 결국 그 일을 미룰 수도, 귀찮아할 수도, 걱정할 수도, 평가절하할 수도 있다.
우리는 생각을 통해 더욱더 절박해지기를 희망하고 더욱 치열하게 일에 몰두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사실 생각이 앞설 때 나타나는 결과가 대개 ‘미루기’라는 것은 동기부여를 갈구하던 이들이 으레 직면하는 ‘불편한 진실’이다.
원문: 허용회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