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스티브 잡스 극장’에서 발표된 아이폰 8과 아이폰 X. 너무나 그리운 스티브 잡스의 음성으로 시작된 발표 2시간, 발표가 끝난 후 알 수 없게도 찝찝한 마음이 종일 있었다. 친구와 대화하던 중 아차 싶으며 이 장면이 떠올랐다.
“왜 플래시를 없앴습니까? 정말로 온당한 결정이 맞습니까?”
D8 콘퍼런스에서 사회자의 집요한 질문에 잡스는 마침내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거 아세요? 그런 결정을 하라고 고객들이 우리에게 돈을 지불하고 있다고요!”
잡스는 생애 내내 ‘빼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우리는 결정해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가려는 근본적인 방향이 어느 쪽인지. 그리고 뭐가 이치에 맞고 뭐가 이치에 안 맞는지. 그리고 그거 아세요? 집중은 ‘No’라고 말하는 거예요.
팀 쿡 체제의 애플은 아이폰 7에서 이어폰 단자를 빼버리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리며 역시 그들이 잡스의 후예임을 증명했다. 그런데 이번엔 의아하게도 공을 고객에게 넘겼다. 고객은 선택해야 한다.
- 요즘 트렌드에 맞게 베젤리스 폰을 준비했어~ 아이폰 X을 사. 다만 홈 버튼이 없어서 지문 인식(Touch ID) 대신 열라 멋진 안면 인식(Face ID)을 만들어냈어!
- 그게 싫으면 아이폰 8을 사. 아이폰의 적통 후계자야(다만 갤럭시 S8에 비해 좀 뒤처져 보이지! 그리고 팀 쿡은 아이폰 8이 Huge Step이라고 했지만 내 눈엔 7이랑 정말 차이가 거의 없어 보인다).
이 골치 아픈 결정을 왜 고객이 해야 하게 됐을까? 간단하다. 애플은 아이폰 X에 끝내 확신이 없었다. 말 그대로 특별판이다. 애니메이션으로 따지면 정식 스토리 라인이 아닌 극장판이다. 홈 버튼을 없애고 안면 인식을 넣었는데 그게 정말로 지문 인식보다 좋은지 확신이 안 선다.
고민한 흔적은 많이 보인다. 안면 인식을 강조하려고 얼굴에 따라 달라지는 신박한 이모지가 추가됐다. 새로운 인터페이스는 나빠 보이지 않는다. 근데 정말 폰 잠금 해제 좀 하자고 셀카 찍듯 휴대폰 쳐다봐야 하냐고.
‘아이폰 X 안면 인식 시연 중 실패‘. 스트리머 언 박스 테라피의 화법이 재미있다. 🙂
“It’s actually not all that NATURAL as THEY SAID!”
사건의 발단은 갤럭시 S8이 사고를 쳤기 때문이다. 앞으로 10년은 더 디자인적으로는 애플 뒤꽁무니만 따라다닐 줄 알았는데, 아이폰보다 (보기에) 더 멋진 제품을 만들었다.
아이폰 7과 갤럭시 S8 둘을 나란히 놓고 보면 무조건 갤럭시 S8이 앞서 보인다. 아이폰 7의 두텁디 두꺼운 베젤은 한 세대 이전의 스마트폰 같아 보인다. 애플의 고민 시작이다. 그러나 이건 아니잖아! 비겁해~ 사용자 반응 보고 나서 다음 아이폰 뭘로 만들지 정하려는 거 아니냐고~
단 6개월 만에 애플이 갤럭시 S8을 따라서 만들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일리 있다. 그러나 갤럭시 S8의 전신인 갤럭시 S7 엣지가 높게 평가받으면서 베젤리스는 트렌드가 될 것이 자명해 보였다.
그 후 S8과 비슷한 시기에 나온 G6가 갤럭시 S8과 거의 똑같은 모습으로 출시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거기에 S8의 높은 완성도가 애플을 더욱 다급하게 하지 않았나 추측했다. 갤럭시 때문이 아니더라도 결국 모두 베젤리스로 가려던 욕심은 어느 회사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표 마지막 팀 쿡은 이렇게 말했다.
“고 스티브 잡스가 우리를 보며 자랑스럽다 할 겁니다.”
내 마음에 찝찝함이 들게 해 준 장면이었다.
애플와치는 좋았다. 사고 싶어진다. 얼마 전 작성한 「웨어러블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을까」를 지워야 하나 고민에 빠진다(애플와치 사용자 만족도 97%). 그러나 스마트폰이 있는데 와치까지 LTE 요금 내면서 써야 할지… 수영장처럼 스마트폰을 들고 들어갈 수 없는 곳에 자주 출입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원문: Bright Lee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