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le Foods Prime?
아마존이 미국 고급 슈퍼마켓 체인인 홀푸드를 137억 달러(약 15조 원)이 넘는 금액으로 인수했다. 인수 계획을 발표했을 때부터 미국 미디어는 물론 너나 할 것 없이 앞다투어 테크 애널리스트로 빙의, 아마존의 전략에 찬사를 보내는 동시에 ‘아마존의 홀푸드 인수가 의미하는 것’이란 주제로 다양한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아마존이 우리 일상에 얼마나 깊숙하게 관여하는지를 느낄 수 있는 현상이었다. 워낙 큰 뉴스라 시류에 편승해 아마존의 홀푸드 인수 소식을 들으며 생각난 것들을 정리해 본다.
1. 테크 회사의 반격
최근 테크 관련 인수합병 트렌드, 특히 다른 산업 사이의 인수합병은 기술적인 역량을 키우고 싶은 기존 산업이 주도했다. 유니레버의 달러쉐이브클럽, GM의 크루즈, (공교롭게도 아마존과 같은 날 발표해서 빛이 바랬지만) 월마트의 보노보스 인수 등이 모두 기존 산업의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즉 새로운 시대에서 살아남고 싶어 최근 트렌드 및 기술적인 역량을 ‘강제 이식’한 것이다(They need to stay relevant).
반면 아마존의 홀푸드 인수는 위기의식이 아닌, 한 산업군에 대한 테크회사의 ‘혁신 의지’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야채·생선 등 변질성 제품(perishable goods) 유통과 판매의 역량을 이번 인수를 통해 함양할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아마존의 온라인 역량을 오프라인 세상에서 구현함으로써 기존 산업을 송두리째 흔들겠다는 것이다.
이번 인수 소식이 ‘테크회사의 반격’의 시작점이라면 이런 형태의 테크-to-기존산업 인수합병이 산업 곳곳에 미칠 영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에어비앤비가 항공사나 호텔을 인수해 ‘여행 산업’을 재정의할 수 있다. 넷플릭스가 미국 극장 체인을 인수해 ‘영화 산업’을 재정의 할 수 있다. 페이스북이 방송사를 인수해 ‘뉴스·생방송’을 재정의할 수 있다. 이런식으로 끝이 없는 혁신의 실타래가 풀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2. ‘모두의 시장’이 되기 위한 마지막 단추
아마존은 이미, 최소한 북미에서는 가장 영향력 있는 시장(marketplace)이다. 아마존에서 거래된 상품·서비스 가치의 총합(Gross Merchandise Value, GMV)은 2,800억 달러로 추정되며, 이는 미국 전자상거래 거래액의 40%에 육박하고 4,000개가 넘는 매장을 보유한 월마트 GMV의 60%에 달한다.
이런 괴물 같은 아마존도 그들이 표방하는 ‘모두의 시장(Everything Store)’를 달성하는데 크게 발목 잡히는 것이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식료품(grocery)이었다. ‘뭐 식료품 별거 아닌데, 그런 거 말고 TV나 더 많이 파는 게 나은 거 아니야?’라고 식료품을 과소평가할 수 있는데 이는 큰 오산. 통계에 따르면 미국인은 평균 수입의 10%를 음식에 지출하고 그중 절반 이상을 식료품이 차지한다(food-at-home).
이는 아마존이 현재 ‘꽉 잡고 있는’ 의류와 기타 지출(apparel, services, and other expenditures)을 합친 것과 맞먹는 금액이다. 아마존은 아마존 프레시(Amazon Fresh)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대도시를 중심으로 식료품 사업에 도전한 적도 있다. 이제 홀푸드의 광대한 매장을 통해 본격적으로 이 시장을 열 계기가 된 것이다.
식료품의 또 다른 매력은 음식은 상하기 때문에 일반 제품과 다르게 고객들이 주기적으로 소비하고 다시 구매한다는 것이다. 아마존이 추구하는 충성 고객(loyal customer)을 더 쉽게 확보하고, 또 더 쉽게 유지 및 관리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거의 완벽한 ‘모두의 시장’이 된다. 남은 부분은 아마 집, 보험, 교육, 그리고 교통밖에 없을 듯.
3. 홀푸드, 아마존 혁신의 전초기지
사실 프로덕트 가이(product guy)로서 이 뉴스가 제일 흥분되는 부분은 아마존이 홀푸드를 인수함으로써 시도할 다양한 혁신, 기존 아마존 서비스와의 융합과 재탄생에 관해 상상하는 것이다. 특히 소비자에게 잘 보이지 않는 ‘뒷단’에서 일어날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보면 ‘아 정말 이 인수 무섭게 정교하고 대단하네’라고 감탄할 수밖에 없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상상해 본 아이디어 몇 가지.
1) 홀푸드 = 미니 아마존 웨어하우스
아마존 프라임 나우(Amazon Prime Now)라는 서비스가 있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생필품을 2시간 안에 배달해주는 서비스다. 아마존이 홀푸드를 마지막 단의 물류센터로 활용하면 대도시, 생필품, 2시간이라는 애매한 시간 등의 조건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정확한 수요 예측에 의해 홀푸드 창고에 더 다양한 제품을 구비해두고 즉각 판매 및 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슈퍼볼 시작 한 시간 전에 TV가 고장이 났는데, 클릭 몇 번으로 곧바로 새로운 TV가 집 앞에 배달되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정말 엄청나지 않은가? 이미 저렴한 가격과 무한대에 가까운 품목을 구비한 아마존이 ‘즉석 배달’이라는 궁극적인 편의까지 실현하면 그야말로 게임 끝일 것 같다.
아마존이 드론을 이용해 상품을 배달한다고 했을 때 감탄사와 동시에 현실적인 제약들이 머릿속에 곧바로 떠올랐다. 특히 국지적인 비행 거리가 이 멋진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홀푸드 옥상을 ‘드론 기지’로 바꾼다면?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홀푸드 창고를 미니 아마존 물류 센터로 사용한다면 드론 배달이 현실로 확 다가올 수 있다고 생각된다.
장 볼 거리, 생필품, 좋아하는 책 등을 아마존 에코의 알렉사로 음성 주문하면 10분 후 드론이 뒷마당에 주문한 상품들을 배달해놓고 유유히 다음 장소로 날아가는 장면. 이 상황이 SF 영화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에 살짝 소름이 끼친다.
3) 오프라인 쇼핑 경험의 혁신
아마존은 현재 직원 대상으로 아마존 고(Amazon Go)라는 매장을 시범 운영한다. 아마존 앱을 통해 매장에 들어가서 필요한 상품을 고르고 계산대를 거치지 않고 그냥 걸어나가면 자동으로 결제가 되는 ‘마법의 슈퍼마켓’이다. 시범 매장을 통해 기술을 완성시킨 후 아마존이 자신들만의 아마존 고 매장을 만든다면 성공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아마존의 실행력이 워낙 무서워서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동시에 매우 높다고도 확언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성공적인 소매업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멋진 기술’과 실행력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상품을 구비해둬야 할 뿐 아니라 소매의 제1, 2, 3 법칙인 장소, 장소, 장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만약 아마존 고 기술이 홀푸드에 바로 적용된다면? 품질 높은 상품을 갖추고 노른자 땅에 위치한 홀푸드는 아마존 고 기술을 적용해 오프라인 쇼핑 경험의 혁신을 선도하기에 너무 적합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혼수로 집, 가구, 차, 통장 다 준비해 놓고 ‘칫솔만 갖고 들어와~’ 하는 느낌? 이미 현재 오프라인 경험이 최고에 가까운 홀푸드에 온라인 및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 우리에게 선보일 마법 같은 쇼핑 경험이 너무나 기대된다.
아마존의 AWS 서비스는 전 세계 크고 작은 개발자에게 차별하지 않고 엄청난 컴퓨팅 파워를 제공한다. 마찬가지로 식료품을 소비자의 크기에 구애받지 않고 효율적으로 연결시켜주는 플랫폼으로 홀푸드를 생각하면 어떤 것들이 가능할까?
지금은 개별 소비자가 장을 보러 가는 곳이지만 음식점도 홀푸드 유통 허브에서 직접 원자재 및 반자재를 배달시킬 수 있지 않을까? 홀푸드엔 꽤 괜찮은 푸드코트가 있는데 매장에 들리는 사람들의 간식거리를 넘어 기업용 케이터링으로 서비스를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 식료품의 SaaS 시대… 아마존이 연다고 확신한다.
결론
아마존 멋지다.
덧
홀푸드 인수 발표 당일 아침엔 90억 달러에 슬랙 구매 의향을 보인다는 루머가 있었는데… 더더욱 멋지다.
원문: Andrew 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