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전투기가 격추되는 것을 줄이기 위해 전장에서 돌아온 전투기들의 외상을 분석하여 취약 부분을 보강하는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분석 결과 비행기의 외상 대부분이 날개 및 꼬리 부분에 집중되어 있었고, 이에 당연히 해당 부분에 추가 장갑을 설치하려 하는데 분석을 총괄한 연구원이 당장 조종석과 엔진 부분을 집중 보완해야 한다는 뜬금없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
그의 분석에 의하면 비행기의 각 부분이 적군의 총탄에 손상을 입을 확률이 비슷한데, 조종석과 엔진 부분에 총탄의 흔적이 없다는 건 그 부분이 손상되면 치명타를 입고 돌아오지 못했다는 증거라는 것. 만약 이 훌륭한 연구원이 아니었으면 편향된 데이터 분석으로 쓸데없는 곳에 두꺼운 갑판을 덧댈 뻔했던 이 사건의 배경에 있는 것을 ‘생존자 편향의 오류(survivorship bias)’라고 한다.
나는 이런 편향적인 사고를 매우 싫어한다. 비판적 사고의 폭을 좁히고 차선의 선택은커녕 아주 그릇된 결정을 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스타트업 세계에서도 이런 생존자 편향의 오류를 자주 접한다. 성공한 사람들만 바라보고 그들의 공통점만 추려서 성급하게 일반화한다든가, 소위 성공했다고 자뻑하는 사람 중 ‘나는 노오오력 열심히 하다 잘 되었으니 여러분도 불평할 시간에 노오오력 하면 성공하실 수 있어요’ 하는 식의 조언 모두 이런 오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성공한 스타트업 창업자 중 대부분은 열심히 노력하고 열정을 쏟아부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창업자가 열심히 노력하고 열정을 쏟아붓는다. 그리고 모든 창업자가 성공하진 못했다. 오히려 대부분은 실패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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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창업자와 회사를 분석하면 그들의 독특한 ‘성공 패턴’이 보이고, 마찬가지로 실패한 회사를 보면 실패에 기인한 공통 문제점이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가끔 성공과 실패에 영향을 미친 이유가 같다는 것.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고 타이밍 맞춰 엄청나게 조직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것이 성공의 요인으로 칭송받는 동시에, 늘어나는 수요에 대처하기 위해 조직을 급격히 성장시켰는데 이것이 핵심 역량 집중에 방해가 되고 나쁜 기업 문화를 방치하는 데 가장 큰 요인이 되었다고 지적받기도 한다.
더 넓고 편향되지 않은 데이터와 분석이 있다면 성공의 원동력은 빠른 조직의 성장 그 자체가 아니다. 성장의 시점을 파악(성공하기 위한 전제조건)하고, 그때 조직을 엄습할 지뢰 같은 위험 요소를 신속히 식별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것(전제가 만족 되었을 때 성공하기 위한 필요조건)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오류를 피하기 위해선 능동적인 사고 능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
유명하거나 영향력 있는 사람이 주장하더라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왜 그럴까’ 질문하고 고민해봐야 한다. ‘스타트업은 무조건 스피드다’라는 주장이 있다면 왜 스피드가 중요한지, 스피드가 왜 스타트업을 정의하는 잣대가 되어야 하는지, 스피드를 주장하다가 잘 안 풀린 경우(예: 테라노스)와 회사를 천천히 쌓아 올려 성공한 경우(예: 서베이몽키) 등의 고찰을 통해 주어진 주장에 개인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렇고 저렇게 하는 것이 스타트업 성공 공식이다’라는 뉘앙스의 주장을 접할 때 혹시 있을 생존자 편향의 오류를 가려내기 위해 성공하지 못한 스타트업 이야기를 평소에 자주 접하려고 노력한다. 구글에서 ‘startup post mortem’이라고 검색하면 많이 찾을 수 있다. Startup Graveyard도 좋은 참고 사이트.
팩트 체크의 습관화, 언론에서 스토리텔링의 용이함을 목적으로 일반화한 이야기들의 숨은 뒷이야기를 파악하는 것 역시 편향적 사고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정신 차리고 멀쩡한 날개에 추가 장갑을 설치하는 삽질하지 말자. ??
원문: Andrew 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