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열풍이 한참이다. 북미에서는 테슬라를 시작으로 포드와 같은 기존 내연기관의 대명사인 회사조차도 항상 북미 판매 최상위를 유지하는 F-150과 어메리칸 머슬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머스탱마저도 2020년경에는 전기차로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일본은 워낙 하이브리드 기술의 강국이기 때문에 더 상세한 설명도 필요 없다. 유럽에서는 BMW가 발 빠르게 i시리즈를 선보이며 전기차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아우디의 E-Tron 역시 2018년 Q6모델로 항속거리 500km 이상을 선보일 예정이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테슬라의 모델S를 가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기 위해 중간에 슈퍼차저 충전이 가능한 시설에서 충전을 하는 광경을 보았는데, 항속거리가 500km라면 아무 걱정 없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전기차는 어디까지 왔을까
그런데 이런 세계적인 전기차 혁신과 별개로 우리나라의 흐름은 아직 그렇게 빨라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는 첫째로 순수 전기차는 거의 보기 힘들며, 두 번째로 하이브리드 차 역시 많지 않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공공 충전시설 역시 거의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첫 번째 순수 전기차가 보이지 않는 부분을 나누어 생각해보면, 하나는 수입이 되는 전기차의 판매량이 적은 이슈와 국내 자동차 메이커가 순수 전기 차량을 아직 만들지 않는 두 가지 원인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헌데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경제성장 과정을 지켜본다면 외산 전기차들에 보조금을 파격적으로 지원하여 일반 내연기관 자동차와 비슷한 수준의 가격경쟁력을 갖추게 해 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물론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을 지원해주는 제도와 예산이 있기는 하지만 그 차이가 지역마다 매우 크며 예산 규모 역시 한정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결국 국내 자동차메이커가 순수 전기차를 생산하며 소비의 관점이 아닌 산업 활성화의 관점에서 전기차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하는데, 아직 우리나라 자동차회사들은 내연기관 차량의 판매를 통한 수익 규모가 커서 그런지 좀처럼 쉽게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다. 물론 수소차와 같은 전기차와 경쟁하는 대체에너지 차량의 시장의 옵션이 남아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꾸준히 디젤자동차를 내놓고 판매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전기차와 같은 장기적인 미래보다는 원래 만들어오던 디젤 차량으로 시장에서 경쟁하여 현재의 시장점유율을 늘리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로 하이브리드 차 역시 많지 않은데 특히 국산 하이브리드 자동차보다 외산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훨씬 많다는 점이 아쉽다. 특히 현대자동차가 야심 차게 내놓은 순수 하이브리드 자동차인 아이오닉과 같은 모델의 판매량 부진은 더욱 아쉽다.
전기차도 당연히 그렇지만 하이브리드 자동차 역시 안방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한민국 내에서 많은 양이 판매되고, 그렇게 판매된 차량들을 통해서 주행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와 고객들의 정성적인 의견이 수집되었을 때 다음 세대 혹은 다음 모델의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자동차에서 더 좋은 품질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국산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선택조차 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전기 계열 자동차 산업에서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들이 가질 수 있는 장기적인 경쟁력 부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오닉과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아이오닉보다 2배가 넘는 가격이 책정되어 있는 렉서스의 300h 모델은 하이브리드 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2017년도 상반기에 약 3,800대에 가까운 판매량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공공충전시설에 대한 부분을 보자. 이 부분은 테슬라가 처음 사업을 시작하면서 매우 신경 썼던 부분이며 에너지 산업이기도 하고, 자동차 산업에서 어떤 충전방식이 표준으로 정착하느냐에 따라서 헤게모니가 바뀔 수도 있는 부분이다. 현재 전기차의 충전방식으로는 유럽중심의 AC3상, 일본중심의 DC차데모(CHAdeMO), 그리고 미국의 DC콤보가 있는데 급속과 완속충전을 모두 제공하는 DC콤포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그리고 2017년 2월 국가기술표준원은 이런 전기차의 충전규격 통일을 위하여 KS개정안을 고시하였다. 그 결과로 미국식 콤보충전방식이 표준으로 선정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충전시설을 늘려야 한다. 그런데 나라의 움직임은 미미하다. 나라의 충전시설을 늘려야 하는 정책담당자가 ‘전기차도 별로 없는데 충전시설을 왜 급작스럽게 늘려야 하지?’라는 구시대적 발상을 하고 있을까 걱정이다. 충전시설은 닭이고 전기차는 달걀이기 때문이다. 환경부에서 제공하는 홈페이지를 보면 전기차 충전시설이 늘어나는 것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지만, 그 또한 지역마다 차이가 현격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16년 열린 ‘제1회 전기차의 날’ 행사에 전기차를 타고 온 참석자가 단 1명이었다. 그나마도 일본의 자동차 브랜드인 닛산에서 만든 리프(Leaf) 모델이었으며, 또한 그나마도 렌트한 차량이었다는 내용을 글을 본 적이 있다. 말로는 내연기관의 종말을 외치고 있지만 정작 몸은 잘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다. 문득 애플이 아이폰을 만들어내던 시점에 한참 이슈가 되었던 삼성의 옴니아 생각이 든다. 당시 LG전자 역시 가장 강력한 피처폰을 만들고 있었다.
잘못된 승자의 DNA
잘못된 승자의 DNA가 미래를 가로막은 예는 이외에도 많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조선 시대에 청나라의 요청에 따라 러시아와의 전쟁을 위해 총을 쏘는 포수들을 보낸 적이 있다. ‘나선 전쟁’이라고 이름 지어진 이 전쟁에서 우리나라의 포수들은 심지를 매번 태워 점화해야 하는 불편한 화승총으로 부싯돌을 이용해 손쉽게 점화를 할 수 있는 수석식 소총을 가지고 있는 러시아군을 이겼다.
구식 무기를 가지고 신식 무기를 가진 러시아군을 이겼던 우리의 역사는 잘 기억해야 하지만, 정작 우리나라는 그 후 쇄국령과 같은 조치를 통하여 병기를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문물을 느리게 받아들여 세계 속에서 도태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이제 점점 사라져갈 내연기관 자동차 시장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는 국내의 자동차업체를 보면서 문득 화승총을 들고 러시아군을 이겼던 우리의 역사가 떠오른다. 영 이상한 연결은 아닐 것이다. 시대적 흐름이 끊어져 가는 곳의 승리는 오히려 패배보다 못할 수 있다.
북미에서는 2015년 이미 테슬라 모델S의 매출이 벤츠 S클래스의 매출을 앞질렀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테슬라가 자국의 자동차 회사이며 전 세계 전기차 산업을 이끌어가는 기업이기 때문에 아주 고무적일 것이다. 지금 미국은 자국의 기업이 만드는 전기차를 직접 사용해보고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전기차 고객의 미국인이 이미 수십만 명에 달할 수 있다. 현재 이미 전기차 시장에서 승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앞으로 더욱 밝은 미래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미 IT 여러 분야에서 우리를 앞서나가고 있는 중국 역시 전기차의 기세가 아주 높다. 중국 내에서도 계획도시의 형태로 전기차를 늘리고 있는 심천은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 1위를 달리는 BYD의 영향을 받아 매우 높은 전기차보급율을 보이고 있다. 전기 차량만을 타게 하는 법을 추진 중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오고 있다. 게다가 꼭 심천이 아니더라도 1선이나 2선 도시의 경우에는 새로 생기는 아파트나 복합몰 등에 테슬라 충전소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모름지기 제품이 확산되려면 인프라의 규모는 예전보다 많은 수준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중국은 그 확산을 국가 수준에서 잘 이뤄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자동차는 매우 일상적으로 밀접한 소비재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소비재 분야에서 잘 설명된 고객의 피드백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자국민만큼 잘 통하는 말로 제품의 아쉬운 점이나 더 필요한 부분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은 드물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초고속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기술적인 능력도 분명히 필수적이었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제품과 서비스를 사용하는지 멀리 가지 않더라도 바로 알아낼 수 있는 많은 고객이 주변에 산재하여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과정을 무시할 수 없다면 국내의 자동차 기업들은 하루라도 빨리 더 많은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순수전기차를 만들어서 고객의 반응을 들어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국가는 그사이 전기차의 인프라를 불편이 없을 수준으로 보충하고 말이다. 만일 그렇지 못한다면 전기차 산업을 열심히 육성하는 LG나 삼성 그리고 국내 자동차 회사인 현대차나 기아차는 미래의 자동차 산업에서 결코 애플이 되지 못하고 폭스콘의 역할에 머물게 될 것이다.
국내 자동차 산업은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럴수록 우리는 현재에 집착하지 않고 내연기관 종말의 끝에 있을 미래를 향해 정면 돌파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