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에어컨, 선풍기 껴안고 아등바등 견딘 당신, 거기가 끝이 아니다. 늦더위가 기다리고 있다. 해마다 여름이 길어진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평균 기온 20도 이상인 여름이 40년 전에 비해 30일가량 늘었다고 한다. 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되는 시기가 점점 늦어지고 있다. 9월이라고 안심할 수 없는 거다.
물론 여름은 죄가 없다. 문제는 혹서. 너무 덥고 습기가 차면 잠도 잘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이럴 땐 무조건 피하는 게 상책. 그래서 준비했다. 영화로 떠나는 피서법. 세 가지 행선지가 있다. 골라서 당장 떠나시라.
피서법 1. 한밤에 공포영화를 본다
에어컨 빵빵한 극장에서 잘 만든 공포영화를 보는 것만큼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일이 또 있을까. 공포영화의 피서 효과는 과학적으로도 증명됐다. 조마조마하며 숨죽이다가 깜짝 놀라는 순간, 추위를 느낄 때와 똑같은 화학적 반응이 인간의 신체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올해 여름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공포영화는 한국영화 <장산범>(8월 17일 개봉)과 ‘컨저링 유니버스’의 하나인 <애나벨: 인형의 주인>(8월 10일 개봉)이다.
<장산범>은 <숨바꼭질>의 허정 감독이 4년 만에 내놓은 공포영화다. ‘소리’를 활용해 공포감을 극대화했다. 원래 공포영화가 사운드를 확 키워서 놀라게 하는 장면이 많긴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수준을 넘어 사람의 목소리 자체가 공포가 된다.
5년 전 아들이 실종된 희연(염정아)은 남편, 딸, 치매 노모와 함께 장산이라는 외딴 산속 마을로 이사와 살기 시작한다. 어느 날 그녀는 숲 속에서 빨간 옷을 입은 가엾은 소녀를 발견해 집으로 데려오는데 여자애의 행동이 심상찮다. 딸과 아들 흉내를 내며 헷갈리게 만드는 것이다. 급기야 치매 노모가 사라지고 동네 무당이 찾아와 희연에게 장산범의 전설을 들려주며 여자애를 절대 믿지 말라고 말한다.
영화의 후반부는 <곡성>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무속 신앙과 심령술에서 오는 공포가 결합돼 있다. 격렬한 굿판이 벌어지고, 장산범의 기를 받은 남자가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동굴 속에서 벌어지는 마지막 20분은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소리 공포’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게 해준다.
<애나벨: 인형의 탄생>은 <컨저링> 제작진과 <라이트아웃> 감독이 함께 만든 <애나벨>의 프리퀄이다. 악령이 깃든 애나벨 인형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전해내려 왔는지를 그렸다.
영화의 배경은 1943년 미국의 외딴 저택이다. 인형 장인이 여자아이 모습의 인형을 만들자마자 그의 딸 애나벨이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죽고 만다. 그는 딸을 다시 볼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다며 악령을 집으로 끌어들이는데 이것이 화근이 된다. 인형 속에 숨어서 딸의 모습을 불러내던 악령은 12년 후 고아원 소녀들이 집에 도착하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갑자기 커지는 음향효과와 확 잡아당기는 시각효과로 놀라게 하는 장면이 많은 영화다. 하도 놀라서 팝콘을 쏟았는데 뒤에서 날아온 팝콘으로 다시 채워졌다는 등 무서움과 관련한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도 많다. 필자가 극장에 갔을 땐 여성 관객보다 오히려 남자들이 부들부들 떨고 있어서 그 모습을 보는 것도 영화만큼 재미있었다.
현대 공포영화의 레전드가 된 <컨저링>의 팬이라면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옆집 부부, 그리고 중반부에 나오는 이름 모를 수녀 사진을 놓치지 마시라. ‘컨저링 유니버스’와의 연결고리다.
이 밖에 시체 부검소를 배경으로 한 <제인 도>(8월 23일), 아이들을 몰아세운 <그것>(9월 7일), 2000년대 최고의 공포영화로 꼽히는 <디 아더스>(9월 7일 재개봉) 등의 공포영화가 찾아오니 취향에 맞게 골라보자. 공포영화는 밤에 혼자 봐야 더 무섭다. 진정한 공포체험을 위해선 심야상영을 노려보는 것도 좋겠다.
피서법 2. 영화제에 흠뻑 빠진다
7월엔 부천, 8월엔 제천에서 국제영화제가 열렸다. 이미 지나간 영화제는 아쉽지만 뒤로하자. 9월에도 영화제는 있다. 10월에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앞두고 숨 고르는 달이긴 하지만 소소하게 작은 영화제들이 곳곳에서 개막을 기다리고 있다.
우선, 경기도 안양에선 9월 7일부터 3일간 안양국제청소년영화제가 열린다. 올해엔 무려 105개국에서 2,162편의 크고 작은 영화들이 초청됐다. 개막식은 무료입장이라고 하니 수도권에 거주하는 분들은 시간을 내봐도 좋겠다. 특히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녀 손잡고 가보시라. 모처럼 대화의 장이 열릴지도 모른다.
9월 21일부터 7일간은 DMZ국제다큐영화제 기간이다. 고양, 파주, 김포, 연천 등의 극장에서 42개국에서 온 112편의 다큐영화가 상영된다. 평화, 소통, 생명의 메시지를 담은 다큐멘터리는 극영화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어서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흠뻑 빠지게 될 것이다.
더위에 지쳐서 긴 영화에 집중이 힘든 사람들은 단편영화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서울 KT&G상상마당 시네마에선 ‘대단한 단편영화제’를 9월 7일부터 13일까지 연다. 톡톡 튀는 귀한 상상력에 온몸을 맡겨보는 것은 어떨까?
영화제는 아니지만 서울 상암동 영상자료원에 가면 고전 영화를 항상 무료로 볼 수 있다. <히로시마 내 사랑>, <재와 다이아몬드> 같은 옛날 명작뿐만 아니라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천녀유혼> <허공에의 질주> 등 80~90년대 영화들도 상영하니 시간표를 잘 확인하면 꽤 만족도가 높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상영은 오후 2시부터 하루 3회 이어진다. 매달 다양한 기획전도 준비돼 있으니 수시로 홈페이지에서 시간표를 확인해 보자.
원문: 문화체육관광블로그 도란도란 문화놀이터 / 글: 양유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