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가 카이스트 ICISTS 2017 컨퍼런스에서 ‘웨어러블 기술이 시장에 안착하기 위한 조건(The requirements for a wearable device to be established on the market)’이라는 제목으로 강의했던 강의 원고입니다.
강의를 시작하면서
20살 때 워크래프트 3 프로게이머에 도전했던 적이 있고 그 후 뒤늦게 학교에 복귀해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위메이드와 소셜인어스라는 게임회사에서 수년간 게임을 개발한 후 현재는 스타트업 올비를 공동 창업해 신생아용 웨어러블 디바이스와 앱을 만드는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개인 개발자로서 앱스토어에서 앱을 판매하면서 업계에 처음 발을 디뎠다.
아쉽게도 난 학술적으로 꾸준히 연구해온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부족함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직접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필드에서 본 것, 경험한 것, 배운 것을 중점으로 이야기하려고 한다. 다소 주관적일 수 있지만 실제 웨어러블의 개발을 생각하거나 웨어러블 제품에 관심 있는 사람은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앞으로의 이야기 중에는 올비를 만들고 판매하면서 경험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우리가 만든 올비의 영상을 보고 이야기를 계속해 보겠다. 이 영상은 2016년 3월 킥스타터에서 런칭하며 공개한 올비 공식 영상 한글 버전이다.
웨어러블 기술의 시작과 현재
웨어러블은 2009년 핏빗이 첫 번째 제품을 런칭하고 2012년 패블와치가 킥스타터에서 1,000만 달러라는 전례가 없던 엄청난 판매를 기록하면서 대세로 자리 잡았다. 웨어러블 밴드 분야에서 부동의 선두를 달리는 핏빗의 판매량은 2015년 1,700만을 넘어 2016년 4,000만이라는 엄청난 업적을 달성했다.
2015년 뉴욕 증시에 상장해 41억 달러라는 놀라운 규모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으며, 미국 앱스토어 피트니스 카테고리에서 부동의 1위 앱을 수년째 기록한다. 기기를 구매해야만 앱을 쓸 수 있는 웨어러블 회사의 앱이 카테고리에서 1위를 유지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디바이스를 가졌으면서 앱스토어 카테고리 1위를 몇 년째 놓치지 않는 앱이라는 위상은 다른 앱은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핏빗의 성공은 수많은 창업자들에게 웨어러블 시장으로 뛰어들게 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밴드뿐 아니라 다양한 웨어러블 제품이 자고 일어나면 새로 출시가 된다. 한국 회사인 이놈들 연구소의 시그날과 정글 팬서 선글라스는 본 컨덕터 스피커를 이용해 킥스타터에서 각각 100만 달러 이상의 기록적인 판매를 올리며 단숨에 주목을 받았다.
끝없이 성장할 것만 같던 핏빗이 심장박동 측정이 부정확하다며 고객에게 소송을 당하는 악재를 겪고 애플와치와 삼성 기어 등과의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주당 47달러까지 올라갔던 주가가 2017년 들어서는 5달러까지 내려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
덩달아 스마트워치의 원조 격으로 웨어러블에 불을 지핀 패블와치가 얼마 전 사라졌다. 뛰어난 디자인으로 웨어러블 한자리를 꿰찼던 조본도 최근 문을 닫았다.
여기 있는 학생들은 웨어러블 기술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직접 사용해 보고, 그렇기에 웨어러블 기술이 시작될 때 같이 열광하고 실망하던 사람들일 것이다. 현재까지의 이야기도 이미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황이 이렇다 해도 미래의 사람들이 각종 웨어러블 기기를 사용할 것은 자명해 보인다. 그게 뭐가 될지는 몰라도.
그럼 현재 시점에서 웨어러블 기술이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세 가지 이야기를 갖고 이후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싶다. 웨어러블이 앞으로 가야 하는 길은 과거 스마트폰이 모두의 손에 쥐어지는 과정과 닮았다.
스티브 잡스가 첫 아이폰을 발표하기 전부터 PDA처럼 비슷한 스마트폰 제품은 많았다. 하지만 터치감이나 디스플레이가 충분히 좋지 못했고, 느렸고, 새로운 기기를 사용할 만큼 인터페이스가 좋지 않았고, 제조사들이 소프트웨어 개발 생태계를 이뤄내지 못했다. 아이폰은 이 모든 것을 해결했다. 앞으로 하는 이야기는 이 이야기와 비슷한 부분이 많을 것이다.
1. 괴리감
첫 번째는 괴리감이다. 웨어러블 제품은 결국 센서를 이용한 디바이스를 만들어서 센서에서 취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서 고객이 기대하는 바와 만드는 사람의 입장은 매우 큰 격차(Gap)가 생겨나고 말았다.
예를 들어 심장박동을 측정하는 밴드라고 했을 때 고객은 이 디바이스가 오작동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객은 이 밴드 안에 센서가 있고 ‘지금 심장박동이 70이다’라고 수치를 만들어주는 센서일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 심장박동 센서는 결국 혈관에 빛을 비춰서 그 반사되는 정도의 값을 주는 센서로, 그 값으로 소프트웨어적 심장박동 수치를 만들어 내야 한다. 문제는 이 손목이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는 것인데 이것이 ‘변수’이다.
웨어러블은 ‘변수’가 얼마나 많고 다양한지, 그것이 일정한 수준 안에서 해결 가능한지가 매우 중요한 요소다. ‘변수’라는 것은 곧 리스크다. 리스크가 얼마나 많은지, 과연 해결 가능한지가 중요한 것이다. 병원에서 심박측정기에 팔을 넣고 측정할 때는 가만히 있을 것이다. 그 ‘순간’에만 잘 작동하면 되기 때문에 변수가 없다. 그런데 웨어러블 디바이스라는 것은 말 그대로 ‘웨어러블’이라서 생활 중에 작동이 잘 돼야만 한다.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회사마다 무수한 노력을 기울인다. 필터링을 적용해서 측정이 잘 될 때만의 결과를 보여주기도 하고 아예 ‘우리는 솔직하게 하자, 될 때는 된다고 하고 안 될 때는 지금 측정이 안 된다고 말해주자’고 결정한다. 그럼에도 센서의 성능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 핏빗이 제공하는 심박수 데이터가 부정확하고 고객을 우롱한다며 소송을 당한 적이 있었다.
또 웨어러블 제품은 아니지만 킥스타터에서 역사적인 판매량을 기록한 제품 중 하나인 베이글 스마트 줄자라는 제품이 있다. 자를 당기면 당긴 만큼의 수치를 디지털로 표현해주는 제품으로 아래와 같은 세 가지 기능이 있다.
- 일반적인 측정
- 휠을 돌려서 굴곡진 물체의 길이 측정
- 공간의 길이를 레이저 방식으로 측정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많은 판매를 이뤘지만 3가지 기능 모두 정확하지 않아서 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해 배송을 받은 후 엄청난 불만이 쏟아졌다. 특히 마지막 레이저 측정 방식은 오차 범위가 너무나도 크다.
대학교 연구실에서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다뤄본 학생들은 적외선 센서 한번 다 건드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측정치가 ‘자’의 역할은 절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 것이다. 고객들이 이 제품이 살 때 이렇게 부정확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정확히 측정하는 센서가 새로 나왔구나’ 하며 기대했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올비도 이 부분에 있어서 비슷한 이슈가 있다. 이 작은 디바이스에서 아기의 호흡을 측정하는데, 고객들은 이 디바이스 안에 ‘뭔가 호흡을 측정하는 센서’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현실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가속도 센서를 이용해서 아기 호흡을 측정한다.
배의 움직임에 따라 기울기가 변화하니 그에 따라 센서의 축별 중력가속도 값이 변화하는 점을 이용해 호흡을 카운트하는 것인데, 아기의 호흡을 측정하기 위해 지구의 중력을 이용하니 여기서도 뭔가 갭이 생겼을 테다. 아기가 움직이면 도저히 카운트가 불가능하기에 결국 움직일 때는 아기가 움직이는 중이라는 표시를 앱에 넣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해야 했다.
얼마나 소비자의 기대와 개발의 현실 간의 격차를 최소화하느냐, 그것이 가능한 것이냐. 이게 매우 중요한 이슈다. ‘웨어러블 기술에 맞는’ 새로운 센서의 개발이 더욱 이뤄져야 한다. 현재는 매우 부족하다. 현재 플렉시블 PCB처럼 새로운 기술이 계속 나오고 있다.
2. 위화감
두 번째는 위화감이다. 아이폰 이전의 스마트폰은 대중화되지 못했지만 아이폰이 현재의 위치에 올라온 이유 중 하나는 자연스러운 인터페이스에 있다. 기존의 감압식 터치스크린이 아닌 정전식의 편하고 정확한 터치 방식에 발표장에서 잡스가 “Who wants stylus?” 말하면서 손가락 터치로도 충분히 쉽게 쓸 수 있던 UI/UX, 혁신적이고 직관적인 멀티터치가 있었던 것이 큰 이유다. 한마디로 사용에 막힘이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는 점이다.
허들이 있으면 안 된다. 이 점은 웨어러블 기기의 큰 이슈다. 왜 웨어러블 기기가 그렇게도 기존의 사용자가 이미 사용하는 제품, 시계라든지 안경이라든지 벨트, 선글라스, 모자에 자기들의 기능을 탑재한 형태의 제품을 만드는지 그 이유가 설명된다. ‘너 원래 시계 쓰지? 그러니까 이걸 쓰면 일석이조야’ 하는 것이다. 고객들이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디바이스의 연결성도 매우 중요하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가 성공한 또 한 가지 큰 이유는 충분한 3G 네트워크 환경과 와이파이 환경이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연결되므로 연결이 끊길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한 부분인데 현재 절대다수의 웨어러블 기술이 활용하는 블루투스 4.0 기술은 스마트폰으로 앱을 켜야만 연결된다. 근처에 스마트폰이 있으면 자동으로 연결이 돼서 각 회사 서버로 데이터를 보낸다든지 하는 동작은 스마트폰 OS에 의해 제공되지 않기에 결국 사용자가 의식적으로 앱을 켜야만 기기와 연결이 된다.
그런데 요즘 사용자의 앱 사용 패턴은 굉장히 적은 수의 앱을 이용하는 것으로 바뀌어 간다. 그것도 말하는 것, 영상 보는 것, 음악 듣는 것 등 사람이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것들에 귀결된다. 웨어러블 기기와 연동되는 앱을 매번 켜줘야 한다는 것은 귀찮은 일이 되고 있다. 지속적으로 기기가 앱에 연결되지 않으면 기기에 쌓인 데이터를 서버로 보낼 방법이 없기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주지 못하고 그로 인해 서비스에 점차 흥미를 잃어간다.
웨어러블을 정말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이 연결성 부분의 해결이 필요하다. 올해 거리와 데이터 전송량이 향상된 블루투스 5.0 칩셋이 나왔지만 연결성은 해결되지 않았다. 대부분에 집이나 외부환경에 지금의 와이파이처럼 ‘블루투스 to Internet’ 라우터가 설치되어 자동으로 서버와 연결이 된다든지 해야 하는데 현실은 아직 전혀 그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블루투스 말고 다른 통신방식은? LTE 모듈을 웨어러블 장치에 붙이는 방법도 있다. 이는 통신 부분에는 완벽하게 해결 가능하지만 배터리 소모, 고객이 통신사에 매달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 통신사와 계약을 잘 체결해야 한다는 점 등이 악재가 된다. 일이 많이 커진다. 그럼에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연결성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올비는 양산 전에 LTE와 와이파이 중 어떤 방식으로 만들지 굉장히 고민했다. LTE 방식의 경우 통신사에서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내와서 고민이 깊어졌었다. 전자파가 블루투스보다 많이 발생하는 점이 아기용품에는 치명적이라 판단해 결국 블루투스 방식으로 생산했지만 맞는 결정이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 있다. 현재는 블루투스 중개기를 새로 만들어서 기기가 항상 서버와 연결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과거 우리의 결정이 맞지 않았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듯.
아마존 에코가 서드 파티(3rd party) 기기에 블루투스 연결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도 악재다. 다만 에코의 주변기기 제품의 동작 원리를 보고 생각해볼 만한 점이 있다. 에코와 가장 많이 사용되는 제품 중 하나인 램프의 경우 구매를 하면 별도의 브릿지가 들어있어서 이 브릿지를 인터넷에 연결해야 한다. 설치 과정이 약간 까다롭다.
- 전구를 소켓에 연결
- 브릿지를 인터넷 선으로 연결
- 램프 앱에서 브릿지 활성화
- 알렉사와 연동
이 과정을 마쳐야 한다. 에코가 램프를 컨트롤하는 것이 아니라 에코가 음성을 인식해서 램프 회사 서버로 명령을 보내면 램프 회사 서버가 집의 브릿지로 명령을 보내 브릿지와 연결된 램프를 켜고 끄는 방식이다. 브릿지를 따로 전원과 공유기에 연결해야 하고 앱을 다운받아 연결해야 한다.
절차가 뭔가 굉장히 번거로워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잘 결정한 것이다. 한번 세팅하면 램프와 브릿지는 전원과 인터넷에 항상 연결되어 이후 처리할 게 없다. 앱을 켤 필요도 없고 에코에 말만 걸어 사용할 수 있다.
위화감 문제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매우 중요한데도 만드는 사람이 느끼기 어려운 부분이라는 점이 재미있다. 만드는 사람이 어떤 목표가 생겼을 때 본인 제품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기란 쉽지 않다. 합리화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인이나 관심자가 내 제품에 부정적인 반응이 보일 때 만드는 사람은 이미 수많은 피드백을 받은 다음이기에 그 대응 및 대답이 이미 수십 가지는 있다. 잘 준비된 이런저런 이유를 설명하며, 때론 감성적으로 접근하면서 그 사람을 설득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고객을 정말로 설득할 수 있을까? 애당초 내 설득을 전할 기회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이 위화감은 국가적인 요인을 받을 때도 있다. 한국 스타트업에서 만든 스위처라는 제품은 매우 성공적으로 고객의 긍정적 반응을 받아냈다. 집안의 전등 스위치에 이 장치를 붙인 뒤 앱으로 버튼을 누르면 장치가 직접 스위치를 밀어서 전등을 껐다 켤 수 있는 제품이다. 정말 잘 준비했고 왜 이 제품이 고객들에게 필요한지, 어떤 사람들에게 필요한지 잘 분석하고 잘 풀어냈다.
그런데 미국에서 출시된 나란이라는 제품은 원리는 거의 동일한데 그다지 성공적인 반응을 얻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미 미국은 1,000만 대 판매된 알렉사 에코가 음성으로 전등을 제어하고 있다. 에코와 연동되는 주변기기가 수백 가지가 시중에 판매된 상태이다. 이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어필될 여지가 전혀 없다.
올비를 만들어 출시를 준비할 때 고객 중에는 아기가 착용하는 만큼 전자파를 걱정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 ‘첫 반응’이 중요하다. 만드는 과정에서 대답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전자파 발생이 최소화된 블루투스 방식으로 통신하며, 1분에 한 번 극소량의 데이터를 순간적으로 보낸다.”
고객이 듣고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첫 반응’에서 느낀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 점을 해결하기가 참 어렵다. 아까 영상을 함께 보면서 누군가는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또 기저귀에 착용해야 하는데 신생아가 보통 하루에 10번 이상 기저귀를 갈기 때문에 고객들은 ‘번거롭다’고 느낄 수도 있다. ‘번거로움에도 정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한 번 ‘번거롭다’고 느낀 감정을 이겨낼 만큼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 앞으로 올비가 끝내 성공한다면 그 점을 이겨냈다고 생각해달라.
이 웨어러블 제품은 혁신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제품이 위화감을 극복할 수 있을까? 두고 봐야 할 문제다. 일하다 목이 마르면 어떻게 하지? 분명 미래에 존재할 어떤 멋진 제품의 과정일 것이기에 이런 제품을 마냥 무시할 순 없다. 지금까지 만들어온 결과만 해도 놀라운 업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이 회사의 생존문제만 놓고 본다면 긍정적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3. 혁신
세 번째로 웨어러블 기술이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혁신적이어야 한다. 어떤 제품이 혁신적인 제품일까. 만드는 사람이 혁신적이라고 말하는 제품이 혁신적인 제품일까? 만드는 사람의 가족이나 친구가 ‘와 정말 멋지다! 너 정말 멋있어’라고 인정해 주는 제품일까? 고객이 광고를 보고 ‘와 이거 혁신적인데! 나 이거 완전 필요해!’라고 하는 제품일까?
고객이 써본 후에도 “혁신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제품이 바로 혁신적인 제품이다. 자기가 만든 제품이 혁신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회사는 없다. 그리고 그 웅장한 비전과 계획을 보면 정말 혁신적으로 보인다. 내 삶이 바뀐다고 이야기한다. 정말 그럴 것만 같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아직 라이프 체인지를 성공적으로 이뤄낸 웨어러블은 딱히 있어 보이지 않는다.
핏빗조차도 완벽한 사랑을 받는다고 말하기엔 부족하다.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떠나는 비율’은 2016년 통계에서 30%로 나왔다. 솔직히 생각보다 훨씬 상황이 좋아서 놀랐다. 통계보다 더 상황이 안 좋을 것을 확신하다. 이 사람들은 “더 이상 웨어러블 제품을 쓰지 않는다. 유용하다고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헬스장 등록하고 안 가거나 다이어트 시작하고 못 끝내는 것과 웨어러블 제품의 차이점을 못 느끼겠다”고도 한다.
웨어러블 제품들이 잔뜩 집중하는 것 중 하나는 수면이다. 사람들은 질 좋은 수면에 관심이 많다. 사일런트 파트너는 파트너의 코골이를 해결해 주는 제품인데 1,600만 달러라는 선 판매를 보듯 사람들은 너무나도 혁신적인 제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약속한 배송 시기에 제품 배송에 대한 소식이 없자 고객들은 이제 사기당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혁신적이라고 외쳤던 마켓리더 웨어러블 제품들이 관심을 잃어가고 있다. 패블과 조본은 없어졌고, 핏빗도 쉽지 않다.
언젠가부터 스타트업 업계에 ‘당신의 제품은 페인킬러인가 비타민인가?’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개념이 처음 등장할 때 스타트업의 제품은 페인킬러, 즉 ‘없으면 안 되는 것(must to have)’이 돼야 한다고 했다. 요즘은 또 ‘흥미로운 회사는 비타민(nice to have)을 만든다’는 말도 나온다. 스스로 스타트업이 정체성을 판단하고 그에 맞게 적절한 방향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도 있다.
맞는 이야기긴 하지만 내 생각에 역시 스타트업은 페인킬러를 만들어야 한다. 요는 혁신적인 제품 때문에 내 삶이 정말로 바뀌어야 한다. 깜빡 잊고 놓고 나오면 집에 다시 들어갈 정도의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수많은 웨어러블 기기가 더 이상 충전이 안 된 채 서랍 안에 있다.
혁신적인 제품은 대부분이 세상에 없던 것이어서 시작부터 모든 사람이 사용해볼 수는 없다. 결국 킥스타터 등에 포진해있는 얼리 어답터들이 먼저 사용한다. 이 똑똑한 얼리 어답터에게 정말 사랑받는 제품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 사람들이 사용해보고 자기 삶이 너무 변해서, 이것을 사용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이 안타까워서 써보라고 소개하지 않고는 버티지 못하는 그런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농담이다. 손 선풍기 회사와 저는 아무 커넥션이 없다. 그런데 이거 놓고 나오면 엘리베이터 타고 다시 올라가서라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을까? 보통 킬러 제품은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에서 그 답을 찾는 경우가 많다. 연결하고 싶은 욕구, 소통하고 싶은 욕구, 보고 싶은 욕구, 듣고 싶은 욕구. 한번 완전히 망했던 애플을 살렸던 건 아이팟이라는 mp3 플레이어였다.
페인킬러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도대체 페인킬러는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는 걸까. 나도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퀴즈를 내보겠다. CB인사이트(CBInsights)에서 101개의 실패한 스타트업을 분석해서 ‘스타트업이 실패하는 20가지 원인’이라는 통계자료를 냈다.
- 자금 소진(Ran Out of Cash)
- 형편없는 마케팅(Poor Marketing)
- 가격/비용 문제(Pricing/Cost Issues)
- 필요가 없음(No Market Need)
- 적합한 팀빌딩 실패(Not the Right Team)
- 고객을 무시(Ignore Customers)
- 비지니스 모델 필요/부족(Need/Lack Business Model)
위 항목 중 42%라는 압도적인 비율로 실패 원인 1위를 차지한 요소가 있다. 답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는가? 보고서에 의하면 ‘4. 필요가 없음’이 답이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수많은 제품이 이 위기에 직면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도전해 보지 않고 이 제품이 필요가 없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
전적으로 동의한다. 도전해 보지 않고선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 알 길은 없다. 그렇지만 지혜롭게 도전해야 한다.
4. 직관
잡스가 혁신의 아이콘이 되고 나서부터 세상에서 직관 혹은 통찰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요즘은 그로스 해킹 등 데이터를 통해 제품을 진단하고 방향을 조정해 성장시키는 방법론도 대두한다. 간혹 직관이 좋다, 데이터를 보는 게 좋다 하며 논쟁이 일기도 하는데, 직관과 데이터는 어느 쪽이 좋다 나쁘다로 말할 만한 것이 아니다.
직관의 대부격인 잡스도 데이터를 보지 않고선 직관력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데이터도 직관에 의해 좋은 가설을 만들지 못한다면 쓸 곳이 없는 데이터만 생산될 것이다.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는 2016년 주주들에게 보내는 레터에 이런 문장을 넣었다.
유능한 디자이너나 발명가는 고객을 이해합니다. 이 직관을 함양하는 데 엄청난 에너지를 쏟습니다. 공부를 많이 하고 스토리들을 체화합니다. 안고 사는 거죠. 시장조사나 고객 서베이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직관력은 중요하다. 직관을 키우는 방법은 현장에서 직접 뛰는 것만 한 게 없지만 그럴 수 없다면 여러 방법이 있다. 이슈가 되는 킥스타터 제품의 잘한 부분, 문제가 될 것 같은 부분 등을 평가해보고 1-2년 후 결과를 보면서 내 생각이 맞았는지 체크해 보는 것은 직관력을 키우는 데 도움 된다.
관심 있는 제품에 1만 달러 정도 후원해 놓으면 크리에이터의 후원자용 비공개 뉴스레터도 열어볼 수 있고 댓글도 달면서 소통할 수 있다. 1년만 지나면 댓글난의 수많은 반응을 통해서 결과를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직관도 위험하다. 잡스 정도 되는 사람의 직관력조차 실패할 때가 꽤 있다. 마지막 퀴즈다. 잡스는 한 발명품을 보고 “PC가 발명된 이래로 가장 놀라운 기술 제품이다”라며 시제품에 마음을 뺏겼다. 시제품만 보고서 이 제품은 당장 시장에 나가면 끝이라며 회사 지분 10%에 6,300만 달러를 투자하게 해달라고 했다.
현대의 에디슨이라고 불리기도 한 이 발명가는 제안을 거절했다. 획기적인 제안을 거절할 만큼 발명가도 자신이 있었다. 이 발명가는 한 주에 1만 개씩 이 제품이 판매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제품은 6년 동안 3만 대 팔리는 데 그쳤고 10년이 지난 후에도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어떤 제품일까?
세그웨이 이야기다. 애덤 그랜트의 『오리지널스』에 나오는 이야기다.
5. 검증
좋은 직관력과 아이디어를 갖고 제품을 기획해 만들었다면 검증을 해야 한다. 실제 타깃 유저가 직접 제품을 써보고 반응하는 걸 관찰해야 한다. 이 부분이 모든 단계 중 가장 중요하다. 거듭 강조하지만 광고 영상을 보고 고객들이 열광한다고 해서, 킥스타터에서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한다고 해서 오랫동안 사랑받는 제품이 되지는 않는다. 직접 사용해 보고 실제로 일어나는 리텐션을 확인해야 한다.
개인 개발로 기대 이상의 수익을 거둔 첫 번째 앱을 출시한 후 큰 꿈을 갖고 2년에 걸쳐 개발한 두 번째 앱은 이지테스킹(ez Tasking)이라는 노트 앱이었다. 일본 앱뱅크(AppBank)에서 오늘의 앱으로 소개해서 하루에 몇만 다운로드가 발생한 적이 있긴 하지만, 결과부터 말해 완전히 망했다.
이상했다. 분명 내 페이스북에 가족들과 지인들은 좋아요 엄청나게 눌렀고 멋지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나중에 친구들 모임에서 친구들의 스마트폰을 일일이 확인해서 앱을 열어봤고 경악했다. 단 한 명도 내 노트 앱을 사용한 흔적이 없었다(친구들도 내 행동에 경악했다).
몇 년 전 린 스타트업이라는 용어가 세상에 큰 이슈가 되었다.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서 출시할 생각을 하지 말고 최소 기능 제품(Minimum Viable Product, MVP)을 만들어 출시해 고객의 반응을 확인하고 검증하는 작업을 작은 단위로 쳇바퀴 굴리듯 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이야기지만 사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당연한 변화다.
게임을 예로 들면 예전에는 게임을 출시하는 것은 쉽게 할 수 없었다. 무언가 세상에 내놓기 위해서는 반드시 퍼블리셔와 계약을 맺어야 했고 퍼블리셔와 계약하기 위해서는 완성도 높은 제품을 만들어야 했다. 지금은 중학생도 자기 방에서 앱을 만들어 전 세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시대다. 린 스타트업의 과정은 물 흐르듯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하드웨어 스타트업은 여전히 전통시장과 같이 린 스타트업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일단 기기를 공짜로 줄 수는 없기 때문에 팔릴만한 완성도를 만들어야 한다. 100달러 제품을 팔아놓고 “그거 최소 기능 제품이라 매뉴얼은 없어요. 패키지는 나중에 만들 테니까 일단 택배박스로 보낼게요” 할 수 있겠는가?
킥스타터에서 선주문한 고객들은 배송 일자가 다가오면 귀신같이 돌아와 아우성을 친다. 제작자는 배송 일자를 어떻게 맞추느냐에 혈안이 되어 있다. 배송 일자를 맞추기 위해서 제조과정을 꾸리고, 공장과 계약하고 패키지도 만들고 앱도 만들어야 하고 신경 써야 하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마지막 단계인 금형 제작에서 제작비의 절반 이상이 들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검증이란 게 없다. 금형을 파면 끝이다. 나가야 한다.
그렇다고 금형 없이 수제 목업을 만들자니 한 개 생산하는데 100만 원씩 든다. 10개만 만들어도 1,000만 원이다. 3d 프린터가 있다지만, 우리도 3d 프린터로 참 많이 만들었지만 3d 프린터로 만든 목업과 실제품은 또 천지 차이다. 아기용 제품이기 때문에 필라멘트 재질의 모형으로는 실 테스트를 할 수도 없었다. 우리 올비도 이런 이유로 이 검증 과정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
너무나 당연히 모든 노력을 들여야 할 것 같은 이 검증 작업. 이 제품이 정말 고객에게 사랑받는 제품이 될 것인지, 어떤 점 때문에 사랑받는지, 사랑받기 위해서 어떤 것이 필요한지 너무나 중요한 이 검증을 많은 회사가 이런저런 이유로 충분히 하지 못한다.
특히 웨어러블 기기 같은 신제품은 항상 카피의 위험이 도사린다. 베이글 줄자는 킥스타터에서 엄청난 기록을 달성한 후에 제품 배송 시기와 동시에 카피 제품이 출시됐다. 퍼스트 무버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퍼스트 무버가 꼭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가 많지만 웨어러블 기기에서는 역시 퍼스트 무버가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한다.
각각 엄청난 선판매를 기록한 본 컨덕터 스피커 정글과 시그널보다 1년 후에 킥스타터에 나온 ZEROi는 똑같은 기술을 갖고 시장에 내놓았지만 판매량은 그들의 기대와는 큰 차이가 있어 보인다. 언론들이 움직이지 않는 탓이다. 댓글에는 “다른 본 컨덕터 웨어러블 제품들이 그렇게 좋은 평가가 없는데 ZEROi는 어떻게 이점을 해결할 수 것인가?”라고 물어보는 고객의 댓글이 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골치 아프다. 퍼스트 무버가 휩쓴 다음이기에 기자들이 기사를 쓰지 않는다. 새로운 것에 대한 기사를 써야 기자들도 쓸 맛이 날 것 아닌가. 이런 이유로 검증이 힘든 상황이다. 그럼에도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쉽지 않다. 돈도 굉장히 많이 들어간다.
시제품을 수십 개 이상 만들어서 직접 고객들이 써보며 리텐션 데이터를 확인해야 한다. 그러면 새로운 것이 보일 것이다. 닷(Dot)이라는 시각장애인용 밴드는 엄청난 숫자의 선판매를 기록하며 연쇄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이 회사는 놀랍게도 계속해서 출시 시기를 늦추면서 완벽한 제품을 위해 수백 명의 테스터를 돌리고 있다.
올비는 킥스타터에서 약속했던 7월 배송일보다 3개월 늦은 11월에 배송을 시작했다. 개발 일정이 더 필요해 지연이 되면서 불안해하던 팀원들에게 항상 위로 삼아 했던 말은 “디아블로 3도 10년이 지연됐다”.
디아블로가 10년이나 지연된 것은 만드는데 10년의 시간이 더 걸린 것이 아니다. 블리자드는 모든 직원이 게임 러버인데 이 사람들의 눈높이를 통과하지 못해서 다시 만들기를 10년을 다시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1년에 한 번씩 10번의 다른 디아블로 3을 만든 것이다. 말이 쉽지 대단하지 않은가.
마치면서
여기 여러분의 목표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창업해서 세계에 내 이름을 한번 내보고 싶은지, 연구를 하고 싶은지,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은지, 각자 다양한 목표가 있을 텐데 내 이야기가 재미있었는지 모르겠다.
조금 비관적인 이야기로 거의 진행해 온 것 같다. 나도 아쉽지만 그것이 내가 현장에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100개의 팀 중 1개만 살아남는 곳에 있다. 과거 인디 게임 개발자로 앱스토어에 게임을 판매할 때는 1달러짜리 게임을 팔았다. 1달러 제품을 팔 때도 그렇게 재미있고 신났는데 올비를 처음 만들고 159달러 제품이 판매될 때의 희열은 말로 하기 힘들다. 그리고 그만큼의 책임감도 더 느껴진다.
1달러 제품은 어쩌다 운이 좋아서 잘 팔릴 수도 있다. 그러나 159달러 제품이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다양한 부분에서 깊고 끈질긴 노력이 필요하다. 흥행에 실패한 영화가 “어 이 영화는 CG는 좋은데?” 혹은 “이 영화는 음악은 좋은데?” “배우는 좋은데?” 하는 경우는 많다. 그래도 성공한 영화는 모든 점을 다 잘한 영화다.
팀의 경영, 아이디어, 개발, 디자인, 마케팅 각 분야의 팀원들이 다양하고 끝없는 노력이 시너지를 낼 때 그 가능성이 있다. 오늘은 아쉬웠던 이야기들을 많이 했지만 우리 팀이 잘했던 점도 굉장히 많았다고 생각한다. 시장에 안착하고 나서 그 이야기들을 할 기회가 오면 좋겠다.
원문: Bright Lee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