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 주요 후보들의 교통정책은 모두 실종 상태다. 택시 정책, 일부 축선에 대한 전략적 접근 정도만이 눈에 띌 뿐이다. 유일하게 교통정책 전반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는 인물은 무소속 김순자지만, 이 역시 재정정책에 국한된 안이며 그마저도 급진적인 안으로서 실현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교통 정책을 평가하기 위해 택해야 할 기준으로 다음 몇 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 교통은 국가가 자신의 영토를 조작하는데 활용하는 핵심 수단이다. 교통망에는 전략 축선을 구축하려는 국가의 의도가 담겨 있다. 이 때 국가는 개발의 초기 방향을 만드는 선도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 이미 축선과 대도시가 형성된 다음에는 그것을 이용해 통행하는 사람들의 편익을 올려주기 위한 고려가 필요하다.
- 적정 규모의 투자를 통해 취약한 사회적 지위에 있는 자들의 접근권을 향상시켜주기 위한, 즉 기회 균등의 실현을 위한 투자 방침도 필요하다.
- 교통 시설에는 다양한 이권이 걸려있다. 주변 부동산 가치가 변하며, 다양한 산업이 교통에 연관되어있다. 이 덕분에, 다양한 이익집단이 지신의 이해관계를 교통망의 설계와 운영에 투사하려 하는 경우가 잦다. 국가는 이들 이익집단의 편협한 이기주의를 조절하여, 교통 자원을 공정하게 분배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
- 또한 교통은 속도 덕분에 위험하고,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며, 인프라 수명이 매우 길다. 인명의 안전 그리고 안전한 경제적 투자를 위해서는, 가능한 한 실증적 근거에 비추어 투자 의사 결정을 해야만 한다.
교통망을 설계하고 평가할 때에는 이들 기준에 비추어 적절한 정책이 집행되고 있는지 검토해야만 한다.
새누리당 후보 박근혜는 전국적 교통정책으로는 택시 지원책만을 언급하고 있다. 축선 구축에 대한 전략적 언급은 국가 전략 차원에서는 언급되지 않고, 지방 단위의 공약사항으로만 제시된다. 각 지방 공약으로는 다음을 제시하고 있다.
제목 | 내용 | |
서울 | 행복주택프로젝트 | 철도부지 상부 임대주택 건설 |
부산 | ||
대구 | ||
인천 | 경인고속도로 무료화, 지하화 | 경인고속도로 무료화, 지하화 |
광주 | ||
대전 | ||
울산 | ||
경기 | ||
강원 | 원주-강릉 복선전철, 동서고속철(춘천-속초) | 사업 적극추진 |
충북 | 오송을 중심으로 하는 통합교통체계망 | 적극추진 |
충남,세종 | 내포신도시 수도권전철 연장 | 도청이전지원 |
경북 | ||
경남 | 남해안 철도고속화 | 경전철 복선전철 |
전북 | 내부도로망 추가, 새만금-김천 내륙철도 건설 | 새만금 사업 지원 |
전남 | ||
제주 | 신공항 추진 | 신공항 추진 |
대부분 각 지역에서 바라는 정책들을 정리한 수준이다. 지방에서 바라는 사업들을 통합적 계획에 비추어 조절할 의도나, 사업간 조절에 사용할만한 원칙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이대로면, 국토부와 재정 관료들이 전반적인 방침을 주도할 것이다. 따라서 정당의 역할은 실종되는 한편, 지역민의 근시안적 이권투사가 횡행하여 적절한 투자가 이뤄지지 못할 수 있다.
사업별로 평해보자. 우선 한때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철도부지 위 주택공급안은 예상되는 양을 채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내 철도부지는 그 양이 6.92제곱킬로미터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특정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 게다가 대중교통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플랫폼에서 400m보다 먼 곳에 대해서는 집을 지어서는 안된다. 또 구조물의 안정성을 위해서는 토공 구조물이 기초를 이루고 있는 역사에 대해서만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 하지만 기존 구조물이 없으면서, 토공구간 위에 주택을 짓는 것이 가능한 역사는 별로 없다. 박근혜측 홈페이지에는 공급량이 생략되어 있는데, 이는 철도부지가 한정되어있다는 것을 깨닫고 취한 조치로 보인다.
경인고속도로 무료화는 도로공사나 인천시의 재정 모두가 좋지 않기 때문에 부적절하다. 게다가, 통행료가 없어지면 오히려 승용차 통행의 가격을 낮추어 승용차 통행을 유도하는 꼴이 된다. 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대안이다. (상세 논의는 다음을 참조하라. ‘경인고속도로 통행료 논란’.)
원주-강릉 복선전철은 이미 국가 전략으로 추진중인 사업인데, 총사업비가 4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게다가 타당성평가도 부정적 결과가 나오고 있다. 이 덕에 재정당국은 춘천~속초간 복선전철은 시행하기 힘들다고 보고 있다.
오송역을 중심으로 하는 통합 교통체계망은 이미 세종시 방면으로는 대략적인 인프라 구축이 끝난 사업이다. 청주 방면으로 망을 추가하는 정도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추가적인 안이 필요하다.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예산, 홍성까지 수도권전철을 연장하겠다는 안의 경우, 경부선(천안~조치원)의 예로 볼 때 복선전철을 공급하는 것은 가당하다. 그러나 현격히 밀도가 떨어지는 장항선 일대에 수도권전철과 동일한 열차를 공급하는 것은 부적절한 일이다. 현재 철도공사는 장항선 천안~신창 구간에 10량 전동차를 집어넣고 있으나, 30분에 한 편 이하로 배차간격이 떨어져 주변 수요를 성공적으로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 배차간격을 좁혀 승객의 편익을 올려줄 별도의 안이 필요한데, 지역의 근시안적 안을 받아 옮겨 적은 듯한 모양새다.
남해안 철도 고속화의 경우 이미 대부분의 사업이 진행중인 상태다. 사업 전망이 불투명한 전남 일대의 망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지만 그에 대한 논의는 없다. 전북지역 도로망은 남북 도로망은 서해안, 호남, 전주순천 3개 고속도로(동부 산간의 중부고속도로까지 합치면 4개)가 완비되어 큰 문제가 없다. 동서 도로망은 비록 고속도로는 미완이나(20번 고속도로가 전주~장수 구간을 잇고 있음) 국도 투자가 충분히 되었기 때문에 시급하게 투자할 필요는 전혀 없다. 새만금~김천간 철도는 중간 수요가 부족하고 국가 전략 축선에서도 비껴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실현되기는 어려운 노선이다. 버스나 기존 철도망을 활용한 환승망 구축이 차라리 낫다. 제주 신공항은 지역에서 강력히 요구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확장과 같은 대안을 검토하고 나서 시행해도 늦지 않다.
택시 정책 가운데,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택시의 버스전용차로 진입 허용>이다. 이 조치의 핵심 목표는 택시 속도 증가다. 이 조치가 과연 택시 속도를 올려줄 수 있을지에 대해, 서울시 도로 속도조사 보고서를 참조하여 판단할 수 있다. 중앙 버스전용차로의 속도는 시속 21.8km이다 . 중앙 버스전용차로가 주로 구축되어있는 가로 유형인 간선도로의 평균 주행속도는 시속 21.9km이다. 결국 중앙차로 진입으로 인한 택시 속도 증가 효과는 기대하기 횜들다.
가로별로 살펴 보더라도, 서울시내 대표적인 간선도로인 경인로의 낮시간 주행속도는 시속 23km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비첨두시간대 중앙차로 진입으로 인한 실질적 속도 증가 효과는 없을 것이다. 또는 오히려 택시의 유연한 운행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잦은 차선 변경으로 인해, 버스전용차로 및 나머지 도로 용량에 악영향을 끼치고 속도와 안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시운전을 거쳐서 적어도 안전과 도로 용량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밝혀져야만 이 안을 정책으로 택하는 것이 적절하다.
대중교통 운전시각표, 특히 철도시각표는 여러 차례의 시운전과 실제 운전실적에 근거하는 것이다. 교통체계 조작을 위해 통상적으로 요구되는 절차인 시운전조차 해 보지 않은 안을 대선 공약으로 내놓는다는 것은 대단히 무책임한 태도다.
전체 평을 해 보자. 박근혜는 국가나 지역개발상 전략 축선 구축의 일환으로 교통 투자를 보고 있다는 것을 공약으로 보여주지 못했다. 또한 지역에서 요구하는 교통시설을 여과 없이 공약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어, 지역의 이권투사가 이뤄질 것처럼 말하고 있다. 무책임한 약속을 하는 모습이다.
또 실증적 평가 없이 버스전용차로에 택시를 진입시키려 하고 있으며, 인구 일반의 편익이 교통 투자 평가에 필수적이라는 것도 전혀 강조하고 있지 못하다. 철도부지를 이용한 주택 공급 정책은 교통과 기회 균등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행할 수 없는 정책이긴 하지만, 그 양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내놓은 안이라는 것이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박근혜는 내가 제시한 어떤 기준에 비춰보더라도 나쁜 교통정책만을 내놓았다.
민주당 후보 문재인은 차후 착수할 SOC 사업의 전면 재검토를 공약의 첫 머리로 삼고 있다. 국가 재정을 불요불급한 토건사업보다는 사람에 먼저 투자하겠다는 복안인 듯하다. 구체적인 안을 검토하면서 평가해 보자.
문재인은 주로 축선 구축과 함께 교통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우선 동해안에는 철도 등 대규모 인프라 구축을 해서 부산에서 블라디보스톡에 이르는 축선을 구축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외에 서해안, DMZ가 축선 구축 대상으로 언급되고 있다. 서해안에 대해서는 축선 구축을 위한 추가 투자를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DMZ에 대해서는 새롭게 고속도로망을 공급하겠다는 발언을 최근 한 바 있다.
다른 언급이나 지역별 인프라 현안에 대한 언급은 찾기 힘들다. 10대 공약 가운데 아홉번째 공약에서 “네트워크형 국가 인프라”가 언급되기는 하지만, 지금도 국가 인프라 구축은 하나의 네트워크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인 만큼 이는 실질적인 개선책은 전혀 담고 있지 않다.
문재인의 공약에서는 축선 구축을 위한 시설물로서의 교통망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나머지 평가 기준에 비추어 보면, 그가 교통 정책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고 있다고 볼 어떠한 증거도 홈페이지에는 없다. 특히, 동해안이나 DMZ에 새로운 축선을 구축하는 시도가 불러오는 가능한 위협에 대해서는 어떠한 고려 사항도 홈페이지상에는 더 제시되어 있지 않다. 교통 투자는 가능한 한 실증적 증거에 비추어 해야 한다는 원칙을 어기고 이뤄진 결정이라면, 아무리 놀랍고 웅대한 기획이라도 일국의 대통령이 해서는 안 될 모험주의적인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문재인의 교통 공약은 잘 해봐야 모험주의적일 뿐이다. 또한, 불요불급한 인프라가 무엇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구체성이 부족하다.
나머지 후보들 가운데, 교통에 대해 유의미한 안을 내놓은 후보는 무소속 김순자가 유일하다. 김순자는 대중교통의 국유화와 무료화를 골자로 하는 급진적인 안을 내놓았다. 유류를 비롯한 다양한 에너지원에 대해, 현 수준보다 좀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한편 자동차에 대해서도 환경부담금을 추가적으로 징수하여 재원으로 삼는다. 또 연 20조 원을 투입하여(실제 철도, 버스업의 매출액은 약 10조원이다. 실제보다 훨씬 많은 수준이다) 대중교통의 전면 무상화를 시행하는 한편 관련 권리 역시 모두 국유화하겠다는 것이 김순자의 복안이다.
대중교통을 둘러싼 현재의 권리체계를 모두 없애버릴 수 있을 정도로 막대한 재원이 오가는 호쾌한 계획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다음 사항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상세한 논의는 1), 2) 를 참조하라. )
1. 재원 계획상, 에너지 가격이 대폭 상승한다. 현재 휘발유에 대해 이미 교통세와 주행세가 700원 이상 붙는다. 이것을 지역과 무관하게 올리는 안은 대중교통이 잘 운행되기 힘든 저밀도 지역 주민의 이동권을 침해하는 조치일 수 있다. 전력의 경우 세금의 확대보다는 자체 수익의 증대가 필요한 상황이다. 가스는 수송과 거의 무관한 연료이며, 또 비교적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은데도 효율적인 수송을 위한 목적세를 부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2. 대중교통은 규모의 경제가 보장되는 지역에서만 효율적인 수단인데 그런 고려 없이 일률적으로 대중교통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장날이 아닐 때 운행되는 농어촌버스의 상당수는 단 한 명의 승객도 싣지 않고 운행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택시 역시 차고지에서 사람을 태울 곳까지 공차 운전을 해야 한다. 이를 감안하면, 저밀도 지역에서는 승용차가 훨씬 효율적일 수도 있다. 실제로 고밀도 지역인 수도권에서 기록되는 대중교통의 효율성 역시 승용차보다 다섯 배 수준 정도다. 많은 경우 중소도시에서는 대중교통이 효율적이지 않을 수 있다. 이 경우, 승용차의 효율 개선을 위한 지원을 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또한 산간 도서지역의 대중교통은 도시에서처럼 경직된 운행형태를 유지하기 보다는 수요 대응형으로 재편하는 것이 좋다.
3. 가격의 정보 전달 기능을 무시하고 있다. 두 가지 하부 사항이 있다.
3.1 대중교통 운영 조직의 방만한 운영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효율을 생각하지 않은 채 저밀도 지역에 대한 과잉 공급이 계속될 수 있다. 수요자들의 가격 통제 요구, 그리고 최대한 독립적 회계를 운영하라는 제도적 압박 이 두 가지는 대중교통 운영자들이 제한된 재원으로 최대한 효율적으로 교통망을 운영하도록 행동을 제약하는 제도적 요소다. 이 가운데 소비자들의 가격 통제 요구를 제거한 채, 관료적 관리에만 대중교통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라는 책임을 맞기는 것은 부적절한 제도 설계라고 생각한다. 적정 수준의 가격 부과와 이에 근거한 운영은 방만한 운영을 막는 일종의 다중 안전 장치 가운데 하나다.
3.2 현재 대중교통은 승용차 통행에 비해 비싸지 않다. 오히려, 수도권전철의 경우 극단적인 저운임으로 인해 급행 투자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고, 따라서 외곽으로 나갈수록 승용차에 비해 속도가 느리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수도권전철보다 상당히 비싼 운임을 주고 광역버스를 이용한다. 아마도 김순자 측은, 급행 투자 재원이야 대중교통 재정에서 얻으면 된다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적절하지 못하다. 대규모 토목공사와 고가의 차량도입이 필요한 대중교통 급행화에 필요한 재원을 수요로부터의 어떠한 피드백 없이 정해서는 안 된다. 수요에 따르지 않은 대중교통 투자는 대중교통의 밀도가 낮을 수 밖에 없는 저밀도 지역 주민들에 대한 차별이자, 과잉투자의 가능성이 있는 투자 태도다. 급행화 투자는 수요자들의 가치평가에 따라 이뤄져야 하며, 이를 측정하기 위한 가장 좋은 도구는 물론 가격이다.
나는 문제의 계획이 나왔던 구 사회당 측에 대해, 2012년 연 초에 트랙백을 보내어 답을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답변은 얻을 수 없었다.
결국 김순자 측은 교통의 여러 측면 가운데 기회 균등에만 주목했을 뿐이다. 대중교통은 기본적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김순자 측이 강조하는 대중교통의 친환경성도 사실 이 수단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다시 말해, 단위 차량킬로(운행량 단위)당 에너지 소비는 당연히 덩치가 큰 대중교통 차량이 많지만, 사람이 훨씬 많이 타기 때문에 대중교통이 개인 차량보다 효율적인 것이다.
그러나 김순자측의 안에서는 규모의 경제는 거의 강조되지 않고, 기회 균등의 측면만 강조되고 있다. 고밀도 개발과 같은 대중교통 친화적 도시개발 방식과 함께 무상화가 논의되었다면 그나마 두 면을 고르게 인식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겠으나, 고밀도 개발이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김순자 측의 교통체계 인식은 아직 편협하다고 하겠다.
또한 대중교통 무료화를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 가격 변동의 함축에 대해서도 그리 상세한 취급은 없다. 에너지 가격에는 수많은 이익집단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것이 뻔한데도 말이다.
결국 김순자 측의 교통 정책은 오직 기회 균등의 측면에서만 뛰어나다. 반면 효율성, 개발과 교통의 관계, 이익집단의 이해관계 조절 측면에 대해서는 제대로 사고하지 못하고 있으며, 또 실증적 근거에 따른 교통정책 평가 역량 역시 부족해 보인다.
결국 현재 제시된 모든 18대 대통령 후보의 교통정책은 교통이 가진 여러 측면 가운데 극히 일부만 반영한 것이거나 일부 이익집단의 요구에만 응하는 방향을 취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누구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박근혜의 교통 관련 정책은 어떠한 기준에 비추어 보아도 적절한 교통정책이 아니다. 오히려 지역의 이권투사로 인한 분란을 불러올 수 있는 잘못된 약속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 문재인은 교통망의 축선 구축 기능에 대해서는 알고 있으나 오직 그것 뿐이다. 축선 구축이 불러올 위협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전혀 없다. 김순자는 교통이 기회 균등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으나 동시에 효율적이어야 하고, 개발을 주도해야 하며, 관련 체계가 이익집단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나머지 후보들은 제대로 된 정리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교통에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완전히 무지하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선거에서 정책을 논의하는 것은, 그것을 실제로 실현하는 데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과연 어떤 정책적 조작이 우리 사회에서 상상가능한지를 논의하는 데, 그리고 그것을 평가할 기준을 논의하는 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선거를 빌미로 우리 사회의 자기 조작 및 평가 능력을 점검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번 선거에서는 적어도 교통 정책의 측면에서는 이런 목적을 전혀 달성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한때 운하, 철도망, 대중교통 준공영제 등이 공직 선거의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던 때에 비하면, 현 대선에서 교통 정책에 대한 관심 수준은 실로 미약하다. 그나마 질적 개선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각 후보들은 모두 편협한 안을 내놓고 있을 뿐이다. 교통 관련 논의에서는 현 대선이 어떠한 개선도 가져오지 못한 것이다.
이 상황이 과연 우리 사회 전반의 자기 조작 및 평가 능력 전반을 보여주는 것일지에 대해서는 독자 여러분께서 판단할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교통정책에 대해 우리 사회 전반은 무능력해졌다. 아마도 이런 상황에서는 지금까지 실무를 담당한 관료들만이 모양새를 갖춘 주장을 할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울한 진단이 아닐 수 없다. 이 상황에 대해, 나는 <교통정책 실종사건>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