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만약 어떤 선착순 행사의 주인공이 된다면, 당신은 오늘 행운이 따르는 날이거나 일생의 운을 여기에다 모두 써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만일 당신이 오늘 선착순 행사의 주인공이 되었다면, 오늘 복권을 사거나 남은 하루를 행복하게 보내길 바란다. 당신은 축복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라고 할 줄 알았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우리가 참여하는 선착순 행사는 사실 우리에게 선착순으로 혜택을 주기 위한 자선 수단이 아니다. 이 글이 아닌 다른 글에서도 늘 강조하듯 기업은 우리에게 절대로 자선사업을 할 사람들이 아니다. 특정한 넛지를 통해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오늘은 ‘선착순’이라는 세 글자의 말에 숨겨진 넛지들을 알아본다. 사실 선착순이라는 제도는 다양한 방면에서 각종 설계를 심어 놓으며 소비자들이 뜻밖의 소비를 유도하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우선 ‘선착순’이라는 단어의 본질을 먼저 알아본 후, 선착순 속에 숨겨져 있는 것들에 대해 파헤쳐 보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선착순 ; 공정성과 희소성
선착순은 일종의 경주와 같다. 즉, 모든 사람을 경쟁자로 두고 달려야 하는 달리기 시합과 흡사하다. 선착순이란 먼저 온 사람대로 순서가 정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집안의 내력, 재력, 사회적 상황 등의 외부적인 요인을 모두 배제하고 오로지 목표에 빠르게 도달한 사람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가져갈 수 있는 꽤 독특한 시스템이다. 결국, 목표에 빠르게 도달하는 ‘능력’ 이 다른 것보다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 바로 선착순의 매력이다.
그렇다고 해서 선착순에 외부적 요인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선착순’ 제도의 능력에는 외부적 요인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수강신청을 하는데 컴퓨터의 성능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는 것, 달리기 경주를 할 때 운동화의 탄력 등 고유의 능력이 아니라 외부적 요인이 결합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외부적인 요인이 선착순의 결과에 전적으로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컴퓨터의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남들보다 행동이 굼뜨다면, 운동화가 아무리 탄력이 좋아도 달리기를 하는 고유의 능력이 좋지 않다면 외부적 요인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론은 외부적인 요인이 선착순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부적 요인이 제일 중요한 요소는 아니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선착순 제도는 외부의 영향을 차단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외부의 영향은 선착순 제도의 운영에 있어 큰 걸림돌이 된다.
왜냐하면 외부의 영향이 개입하게 되면 행사가 공정하지 않다는 인식을 줄 수 있고, 희소성이라는 가치도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컴퓨터의 성능이 좋음으로써 누군가가 선착순의 주인공이 된다면 사람들은 행사의 공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것이며, 컴퓨터의 성능이라는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순수하게 선착순의 주인공이 되는 것보다 희소성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외부 요인을 배제하는 것은 기업이 안고 가야 할 문제였다. 선착순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희소성을 살리면서 외부요인을 드러내지 않고 소비자들이 행사 자체에만 집중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수많은 회의 끝 다음과 같은 전략으로 선착순 행사를 운영하게 된다. 지금부터 보여줄 내용은 선착순 행사를 진행할 때 기업이 어떤 전략을 사용하면서 공정성과 희소성이라는 선착순의 핵심 가치를 지키려고 하는지 알아본다.
입구를 좁게 만드는 이유 ; 줄 세우기 전략
선착순 행사를 진행할 때, 그대가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긴 줄의 행렬을 기다렸던 것을 기억하는가? 왜 선착순 행사를 하면 줄을 서는지 알겠는가? 그 이유는 그들이 입구를 일부러 ‘좁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입구를 왜 좁게 만들었는가? 바로 줄을 세우기 위해서다. 줄을 세우는 것은 단순히 사람들을 질서정연하게 배치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발휘한다. 줄을 세우는 것은 어떤 효과가 있는 것일까?
- 왠지 참여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사회적 동조 이론’이라는 심리학 이론이 있다. 이 이론은 사람들이 똑같은 행동을 할 때 개인은 사회가 하는 행동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고 그 행동을 자연스럽게 모방하게 된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줄을 서게 되면 줄을 서지 않은 사람이 줄이 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고 때에 따라 행사에 참여하는 또 다른 고객이 될 수 있다. 즉, 기업이 의도하지 않은 고객들까지 끌어들여 더 많은 노출을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 기다린 시간이 아깝다.
경제학에서는 ‘매몰 비용’이라는 용어가 있다. 매몰 비용은 이미 지출되었기 때문에 회수 불가능한 비용을 이야기하는데, 사람들은 줄을 서며 차례를 기다리며 시간을 소비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차례가 오는 것을 보며 조금만 더 기다리는 것이 차례를 포기하는 것보다 다 낫다고 판단하여 사람들이 떠나지 않게끔 만드는 수단이다. 또한, 기다린 시간으로 인해 굳이 생길 필요가 없었던 희소성이 더 생길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냥 산 물건보다는 내가 시간을 투자해 얻은 물건이 더 희소성이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줄을 세우는 전략은 선착순 전략의 가치인 희소성을 강조하여 사람들이 행사에 몰입하고 참여하는 하나의 수단이기 때문에, 선착순 행사에서는 일부러 수량을 제한함과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입구를 좁게 만들어 놓는다. 이는 비단 선착순행사뿐만 아니라 놀이기구, 서점의 계산대 등에도 적용된다.
선착순 행사 시간은 고객이 잘 들어오지 않는 시간에 진행된다
선착순 행사는 보통 사람이 잘 들어오지 않는 시간대에 진행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기업의 입장에서는 고객이 잘 들어오지 않는 시간대를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도 소비하게끔 유도해야 하는 것이 옳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대는 자연스럽게 사람이 많은 시간대가 아니라 사람이 적게 오는 시간대에 진행된다.
만약 선착순 행사가 진행된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물건의 질과 가용 시간을 점검하는 것보다, 무료와 선착순이라는 두 단어에 현혹되어 굳이 들어오지 않아도 될 시간대에 오프라인 매장이나 온라인 사이트를 방문하는 행위를 하게 되는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도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한가로운 시간대인 3시에서 5시 사이에 행사가 진행되는 이유로 한가로운 시간대에 잘 열리지 않는 소비자의 지갑을 열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소비자들은 똑같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싸게 살 수 있다는 것에만 반응한다.
또한, 위의 사례에서도 선착순 쿠폰의 시간대는 대부분의 사람이 일어나지 않았거나, 일하거나, 혹은 하루를 정리하기 때문에 소비율이 낮아지는 시간대이다.
위의 사례에서도 마찬가지로 소비가 잘 일어나지 않는 시간에 선착순 행사를 배치하여 해당 시간의 소비율을 높이겠다는 의지가 돋보인다. 이처럼, ‘시간’ 이란 변수를 설정함으로써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유입될 수 있는 전략도 선착순에서 자주 이용하는 전략 중 하나이다.
선착순을 숨기는 사람들 ; 티켓팅(Ticketing)
앞선 사례에서 선착순 행사를 강조했다면, 이번 사례는 선착순이라는 단어를 생략하여 외부요인이 주는 문제점을 삭제하고 기업이 진행하는 행사를 자연스럽게 홍보할 수 있는 전략이 있다. 대표적인 것은 선착순이라는 말을 삭제하고 판매 시작 시각만을 명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우리는 흔히 ‘티켓팅’ 이라고 한다. 티켓팅은 대개 가수의 콘서트, 항공권 등 특정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싸게 팔거나 희소성이 높은 제품에서 적용되는 선착순 전략 중 하나다. 우리가 흔히 했던 수강신청도 티켓팅 전략에 포함된다.
티켓팅에서 판매 시작 시각만을 명시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굳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홍보하지 않아도 될 만한 가치가 있는 제품이거나, 혹은 외부요인으로 인해 공정성이 저해되는 상황이 연출되지 않으며 고객들이 구매한 희소성 있는 제품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티켓팅 일정이 공유될 때 우리가 하는 행동은 크게 두 가지다. 티켓팅을 준비하기 위해 자금을 준비하고 티켓팅을 할 수 있는 팁을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내에서 공유하는 것이다. 우리는 티켓팅을 성공하기 위해 글을 올리고 생각을 공유하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행사가 홍보되고 행사가 잘 된다는 자연스러운 느낌을 줄 수 있다.
티켓팅이 끝나면 티켓팅을 시도했던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티켓팅을 성공한 사람들의 집합, 또 하나는 티켓팅을 실패한 사람들의 집합이다. 그들은 티켓팅의 후기를 남기며 환희를 하거나 탄식하며 자연스럽게 행사에 대해 이야기 한다.
티켓팅에 성공했든 실패했든, 중요한 것은 후기를 남기는 것 또한 행사를 홍보하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시작 시각만을 명시했을 뿐인데, 실제로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이 입소문을 퍼뜨리는 긍정적 효과를 불러온 것이다.
결론 ; ‘고객 이벤트’ 라는 이름으로 ‘브랜드를 홍보’ 하는 넛지
선착순 전략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결국, 선착순은 고객에게 혜택을 준다는 이름으로 실제로는 고객들이 기업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하고, 입소문을 유발하는 등 브랜드 홍보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넛지 전략인 것.
기업은 우리에게 브랜드를 홍보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하지 않았다. 단지 그들은 당신이 능력만 있다면 당신도 언제든지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구사하면서 소비자들이 참여하여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알릴 수 있게 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브랜드를 홍보한 홍보대사가 되어 버렸다.
원문: 고석균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