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밥을 먹고 나면 다 먹은 밥그릇과 수저, 젓가락은 싱크대에 갖다 놓았습니다. 자기가 식사한 자리는 깨끗이 치워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제 기억 속에, 식사예절에 대한 가정교육은 주로 집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안에서 잘해야 밖에 나가서도 잘한다라고 부모님이 말씀하셨으니까요.
저는 한 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상식적으로 자기가 식사한 자리를 정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요즘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서비스와 가정교육의 경계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소비자의 권리인가 기본적인 예절인가
편의점, 패스트푸드점에서 일을 해보았던 분들은 많이 공감하실 텐데요. 이것에 대해서는 찬반 의견이 확실하게 엇갈립니다. 돈을 받고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의 업무 중에는 매장 관리도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손님이 먹은 자리를 스스로 치워야 할 이유는 없다. 소비자의 권리다. 이것은 서비스업의 업무 범위를 논할 게 못 된다. 상식적이라면 어느 정도까지는 정리하고 가는 게 맞다. 이것은 가정교육의 차이다. 사람이 갖춰야 할 예절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어떤 블로거 분은 실제로 프랜차이즈에 문의를 하셨습니다. 그에 대한 답변은 이렇습니다. (이미지, 내 용 출처: HARU님 블로그)
KFC
안녕하세요. KFC입니다. 먼저 국내 패스트푸드는 Self-service로 고객님께서 주문하고 제품을 받아, 마지막으로 처리까지로 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서 경험하신 매장뿐만 아니라 KFC 매장은 라운드 정리 시 고객님의 편의를 위해 최대한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미숙한 근무자와 매장 운영상 빠르게 정리를 할 때는 Self-service 방침으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든 문의 사항이 있으시면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맥도날드
안녕하세요? 00 고객님, 맥도날드 CS CENTER입니다. 저희 맥도날드에 관심을 가지고 문의하신 점 감사드리며, 문의하신 내용에 대한 답변을 드립니다. 당사는 패스트푸드 업종의 특성상 셀프서비스의 형태로 운영, 고객분들의 원활한 매장 사용을 위해 매장 내 설비되어 있는 분리수거함을 이용하실 수 있도록 안내드리고 있으며 테이블 정리 및 매장 청결 환경의 유지를 위해 매장 내부 직원들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당사에서는 많은 고객분께 빠르고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늘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에 맞는 업무역량과 책임감을 키우기 위해 지속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맥도날드에서는 더 나은 서비스와 품질 좋은 제품을 제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버거킹, 롯데리아 – 답변 X
정리해보자면, 패스트푸드 업계는 셀프서비스 형태로 매장을 운영 중이며, 고객이 음식을 먹은 것에 대해 스스로 처리를 하는 것도 SELF의 범위에 해당한다고 얘기합니다. 물론, 매장 청결을 위해 직원들을 배치하고 있지만, 우선적으로는 고객이 직접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음을 대답하고 있습니다.
답변이 오지 않은 버거킹, 롯데리아도 비슷한 방침으로 운영 중일 거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문제는 우리나라에만 해당이 될까요? 외국에서는 어떠한 방식으로 운영되며, 외국인들은 어떠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을까요? (오차를 줄이기 위해 이미지는 맥도날드로 통일했습니다.)
미국
패스트푸드점에서 음식 먹고 쟁반 테이블에 그냥 두고 나가? 아니면 나가는 길에 치워? 라는 질문에 대해 대부분의 미국인은 자신이 먹은 차리는 자기가 치운다.라고 대답합니다. 아래는 실제 댓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 패스트푸드점 좋으라고 테이블 치워주진 않아. 내 뒤에 앉으려는 사람들 생각해서 치우는 거지.
- 식당 화장실에서 똥 누고 물을 안 내려도 언젠가는 누군가 와서 너 대신 내리겠지. 그렇다고 그렇게 해도 되는 건 아니잖아?
- 기본 상식과 타인에 대한 예의는 시간 지난다고 없어지는 게 아냐. 자기가 먹은 거 자기가 치우는 건 당연한 일이야.
- 매장 안에 1.5미터마다 쓰레기통이 하나씩 놓여 있는 걸 보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오잖아?
중국
보통 치우지 않는 게 암묵적인 룰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테이블만 치우는 직원이 따로 있기 때문이라는군요. 치우면 일거리가 없어진다고 싫어한다고 합니다. 물론, 이러한 마인드가 해외에서도 동일하게 적용합니다.
일본
처음부터 왔던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깨끗하게 정리하고 간다고 합니다. 진정 겐지(닌자)의 나라가 맞는 것 같습니다.
동남아
치우지 않습니다.(현지인 기준) 인건비가 저렴하기 때문에 중국과 비슷하게 테이블 담당 직원이 따로 있다고 합니다.
유럽
테이블 전담 직원 여부에 따라서 달라지긴 하지만, 대부분은 치우고 간다고 합니다.
외국의 사례를 정리해보자면, 인건비가 싼 나라(중국, 동남아)에는 대부분 테이블을 치우는 직원들이 따로 있습니다. 이 곳들에서는 먹은 자리를 스스로 치우는 것 자체가 ‘일거리를 빼앗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치우지 않는 것이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 유럽에도 테이블을 치우는 직원이 있는 곳도 존재합니다만, 대부분은 자신이 먹은 자리를 치우고 갑니다. 일본은 예상했던 그대로입니다. 왔던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먹은 자리를 치우지 않거나, 지저분하게 하고 가는 사람에 대해서는 흔히 ‘가정교육을 잘못받았다’라고 얘기합니다. 따라서 오늘날 ‘가정교육’에 대한 정의는 ‘인간이 사회에서 생활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에티켓’ 이라고 보는 게 맞겠습니다. 물론 자신이 먹은 자리를 치우는 것은 에티켓의 일부분이 되겠고요.
마케팅적으로는,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치열한 논란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주제에 대한 토론과정에서, 소비자들의 잠재적인 의식이 드러나더군요. 그러한 측면에서 패스트푸드의 시발점이 되는 맥도날드는 굉장히 마케팅을 잘하는.. 회사입니다.
참, 마지막은 이렇게 마무리할까 합니다. 여러 커뮤니티, 구글링을 통해 관련 자료를 찾던 중, 공감이 높은 댓글 중, 동일한 내용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 저는 제가 먹은 자리를 치웁니다. 매장을 위해 치우는 게 아닙니다. 내 뒤에 올 사람을 생각해서 치웁니다. 전 상식이 있는 사람이니까요.’
원문: 용진욱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