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게이츠가 그랬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의 차고에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밤을 새우고 있을 스타트업들이 제일 두려운 경쟁상대라고요. 그렇습니다. 오늘 간만에 긴 글 쓰게 된 주제는 바로 차고·창고로 대표되는 미국 스타트업의 요람과 우리네 스타트업의 창업 환경에 대한 차이입니다.
차고와 창고. 그냥 차고로 통칭하겠습니다. 차고… 사실 우리나라엔 차고가 그리 흔치 않습니다. 인구의 절반이 아파트 생활을 하거나 집합 건물에 살고 있다 보니 개별적인 차고 보다는 주차장이 익숙하죠. 창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창고를 두고 살만큼 우린 공간에 여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다들 영화를 보셨으니 그런 공간이 어떻게 생겼고, 어디에 붙어 있는지 정도는 아실 겁니다. 이 안에는 꼭 차와 관련된 물건이 아니더라도 잔디 깎기서부터 온갖 잡동사니들이 쌓여 있는 곳입니다. 즉,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차고란 일상의 작업장이지요.
차고를 치우고 정리를 조금 하면 이곳은 생활환경과 분리되어 즉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공간으로 언제라도 변신할 수 있습니다. 학교 친구든 동네 친구든 누구든지 모여서 함께 놀고, 무언가를 만들고, 열정과 시간을 불태울 수 있는 바로 그런 장소를 대부분의 미국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감성적인 면도 좋지만, 실리적인 이유로 들어가면 차고의 이점은 또 있습니다. 일단 소규모 팀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생각을 모을 수 있는 무료(!) 공간입니다. 거기다가 집주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는 생활과 분리된 공간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음식과 커피도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고, 밤새워 일해도 차 빼야 하거나 불을 꺼버리거나 난방을 날리거나 이런 잡다한 문제도 없습니다. 입지 좋은 곳을 찾기 위해 돌아다닐 필요도 없습니다. 보증금을 구할 필요도 없고, 매달 나갈 임대료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전기료, 수도료, 가스비, 인터넷 사용료 등등 잡다한 비용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적고 보니 꽤 되죠? 그냥 일만 집중하면 되는 겁니다. 덕후들이 모여 덕질하는데 이만한 곳을 찾기 어렵습니다. 덕 중의 덕은 양덕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를 얘네들이 차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도 절반은 맞는 얘기인 겁니다.
이 모든 비용은 그냥 애초에 미국인 부모가 자식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지불하는 기본 생활비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조금 더 들 수도 있지만, 자식이 뭔가를 한다는데 그 정도도 감수 못 할 부모도 드물 겁니다. 아무튼 스타트업의 시작에 있어서 차고란 이런 비용의 지출 없이 문제해결에만 집중할 수 있는 데 있어 최적의 공간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네 창업 현황은?
일단 공간을 구하는 문제는 꽤 큰 문제입니다. 대부분 학생창업 또는 재창업 희망자들이 제일 처음 겪는 문제가 바로 공간입니다. 이 지점에서 꽤 다양한 솔루션이 나와 있지만, 미국의 차고처럼 비용 제로의 공간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아파트에는 이런 공간이? 당연히 없습니다. 심지어 대학교에도 이런 공간이 없습니다. 대학에 공간이 없다니 싶겠지만 실제로 없지요.
비용이 들지 않는 공간을 구하기 위해 요즘 창업팀은 일단 각 지자체가 운영하는 스타트업 공간에 들어가기 위한 지원준비부터 하게 됩니다. 서류를 준비하고, 법인을 세우고, 팀원들의 이력서를 쓰고, 사업 설명을 위한 PPT를 만들고(때론 심지어 HWP 포맷…), 포트폴리오 프로젝트의 PT를 준비하고 이래야 합니다.
좋은 평가와 점수를 얻어 여기 들어가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은 각 지역에 있는 소호사무실을 얻어 삼삼오오 또 모여듭니다. 최근엔 공유오피스가 각광받고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공간을 얻어 각자 나름대로 해결하고자 했던 것들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역시나… 문제는 공간입니다. 비슷한 단계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해결책을 쏟아내는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을 여기서 마주하게 됩니다.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문제로 씨름하면 어쨌든 비교라도 안 할 텐데… 좋든 싫든, 우리는 공간에서 서로 비교를 당하고 하게 됩니다.
문제 해결의 결과와 피드백은 언제나 제품과 서비스로 고객에게 받아야 하는데… 이 공간에 입주한 사람들은 그때부터 공간에 함께 있는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정보도 교류하지만, 자신들이 제대로 하는지 못하는지 개발하는 사람들끼리의 직접적인 비교를 합니다.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 가지 방법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수많은 다른 방법들로 각자의 효율을 가지고 해결하면 그만인 겁니다. 때론 먼 길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겪을 일은 겪고서 해결하는 것이 맞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능력 있고 유능한 팀들의 해결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문제를 겪는 경우도 생깁니다. 몰랐으면 그냥 노가다로 해결했을 일을 유행하는 수많은 문제 해결론과 소프트웨어 설계론을 들이대고 비교하며 개발자가 못나서 해결을 못 하네, 디자이너가 후졌네, 기획이 문제네 등의 입씨름으로 시간만 보냅니다.
결국 그사이 크게 비용 나갈 일도 없다 보니 이런저런 이유로 입주 기간을 채우고 나면 큰 데미지 없이 다른 곳으로 옮겨 사업을 계속하겠지만, 보통 이때를 기점으로 3년 안에 다수의 팀이 사라집니다. 그때부터는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이 먼저 위에 적었던 비용들이 줄줄 새기 시작하거든요.
총론으로만 보자면
좋은 팀은 장소가 어디건 간에 알아서 잘할 겁니다. 비용을 많이 썼건 적게 썼건 얼마가 들건 해결할 문제도 알아서 잘 해결하고 그럴 겁니다. 하지만 좋은 팀은 결과적으로 좋은 팀이지, 모든 과정을 걸쳐 볼 때 정말 좋은 팀이라고 스스로 자부할 수 있는 팀과 기업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다수의 잘된 경우는 제가 항상 얘기하는 ‘운’이 거의 99%라고 생각하거든요. 결국, 평균에 대한 얘기는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99%는 노력하다가 끝납니다. 내 노력이 성공에 기여하는 바는 단 1%에 불과합니다.
스타트업을 지원하려면 바로 이 지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창업에 들어가는 많은 비용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공간과 관련된 비용을 제로로 수렴시키면 스타트업을 만드는데 드는 큰 허들을 하나 치우게 되는 겁니다. 스타트업은 뭔가 거대한 뜻을 품고 이런 게 아니라. 그저 장난하듯. 편하게 이거 한 번 해볼까… 안 되면 접지… 정도의 기분으로 쨉 날리듯 편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네 창업문화는 미국 스타트업과는 좀 다르게, 매우 절박하고 현실적인 문제를 안고 시작하는 경우가 꽤 됩니다. 은퇴 후 치킨집을 세우는 것 같은 경우겠죠. 스타트업은 그렇게 시작하면 안 됩니다.
이쯤 읽고 나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각보다 더 많다는 걸 느낀다면 눈치가 빠른 분일 텐데요. 그렇습니다. 성공한 스타트업의 대부분은 절박해서 시작했던 사업이 아닌 겁니다. 빌 게이츠도 그랬고, 잡스도 그랬고, 주커버그도 그랬고, 구글도 그랬고, 가깝게는 네이버도 그랬고, 안렙도 그랬습니다.
이들 회사 창업자들의 부모는 흙수저가 아닙니다. 이들은 오늘 하루 먹고 사는 게 급급했던 우리네 삶을 살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차고도 있었고, 그 차고에서 자식들이 히피 같은 친구들 불러모아 뭔 짓을 하건간에 야식으로 피자를 사주며 몇 날 몇 달을 그 일을 해도 밥 굶기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네 스타트업은 진짜로 척박합니다. 힘들게 학교 다니고 힘들게 회사 다니고 힘들게 창업합니다. 사무실 임대료조차 스타트업의 시작을 가로막습니다. 돌아갈 퇴로도 없는 경우가 흔합니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공유 오피스는 그래서 총론으로 볼 때 대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현실을 가만 둘러보면 최근에 삼성전자가 실행한 씨렙이 제법 실적이 좋습니다. 위에 적시한 이런 문제들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기승 전 씨렙 홍보가 되었네요. 그러나 제 생각은 그렇다는 것일 뿐입니다. 스타트업을 준비하시는 분들은 위의 내용을 잘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절박함의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뤄보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원문: ajmind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