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라도 아이들 사진을 찍고 싶다던 그 사람
얼마 전 어떤 아빠 분을 온라인에서 보았어요. 크고 무거운 카메라로 사진 찍으려 할 때마다 아이들이나 와이프가 어찌나 짜증을 내는지 도무지 사진을 못 찍겠으니, 작은 미러리스로 몰래 찍으면 어떻겠냐는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기를, 가족들이 싫어한다면 안 찍는 것이 맞지 돈을 들여 새 카메라까지 구입해가며 몰래 찍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했더니 화를 내시더군요.
“가족이 어디 놀러 갔으면 사진 좀 남겨야 하는 거 아니냐, 그거조차 가족들이 짜증 내고 싫어하다니 이해가 안 된다, 그 정도는 찍어야겠는데 모르면 조용히 해 주시라….”
이 시점에서 그냥 죄송합니다 아무 말 안 할게요 하고 물러났습니다. 애초에 이분은 작고 가벼운 미러리스 카메라가 사고 싶으신 거예요. 가족은 핑계고 거의 답정너 상태에서 자기 합리화에 동의해 줄 사람들을 구하는데 사지 말라는 의견을 제시하는 제가 미우신 거죠(…)
이런 광경은 최근 들어 매우 흔히 보입니다. 가족들은 말합니다. 사진 말고 가족에게 집중해달라고. 그놈의 사진이랑 커다란 카메라에 진절머리가 난다고. 그러면 아빠들은 말합니다. 그럼 추억 하나조차 담지 말란 거냐고. 내가 나만 좋으려고 무거운 카메라로 찍는 줄 아느냐고. 주변 사람들은 말합니다. 아이 사진 찍는 것도 한철뿐이라고. 머리통 조금만 커도 안 찍히려고 발악하고 다닌다고.
사실 제 생각은 그래요. 가족을 위해 추억을 담는다는 것도 아빠의 자기 합리화일 뿐입니다. 추억의 단순 기록이면 폰카로도 충분합니다. 애초에 나들이가 즐거워야 추억이 되는 겁니다. 좋은 카메라와 렌즈를 사용해 사진의 화질이 올라간다 해서 추억의 행복도가 올라가느냐?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확률이 훨씬 높아요.
왜 가족들은 화를 낼까?
가족사진의 근본적인 목적은, 가족의 추억을 기록으로 남기고 같이 즐김으로써 행복에 보탬이 되게 하기 위해 찍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가족 구성원 상호 간의 이해 위에 이뤄져야 그 의미가 있습니다. 사진이 행복을 저해하는데도 억지로 남겨야 하냐면… 전 아니라고 봅니다.
애초에, 왜 가족이 진절머리를 낼까요? 왜 와이프들은 카메라를 들이대기만 해도 화를 내고 아이들은 조금만 커도 아빠 카메라에 안 찍히려 들까요? 정작 SNS를 보면 친구들끼리는 폰카 셀카 실컷 찍으면서?
이 경우, 문제는 사진이 아닙니다. 문제는 아빠예요. 가족을 위한다는 미명 하에 가족에게 자신의 취향을 강요하는 아빠가 문제인 겁니다. 가족사진을 고화질로 남기는 것도 가족이 다 같이 보고 즐기지 않는 한은, 가족 구성원들의 충분한 이해를 얻지 않은 채로 이게 옳은 거니까, 니들이 뭐라든 난 좋은 카메라로, 심지어는 니들 몰래라도 사진을 담아야겠다고 한다면 그건 결국 자기 욕심 채우기일 뿐인 거예요.
작은 미러리스로 파인더 안 보고 몰래 찍으면 된다…? 아무리 가족사진이라 해도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이건 이미 추억도 뭐도 아니예요. 얼마나 가족과 커뮤니케이션이 하기 싫으면 설득하지는 않고 ‘도촬’을 하겠다는 겁니까?
사실 저한테 그런 말씀 하시는 분들 정말 많아요. 아이들 예뻐서 좋겠다, 크기 전에 많이 찍어라 크면 못 찍는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제로가 아닙니다. 제가 잘 못 하면 당연히 아이들이 사진 찍는 거 싫어하게 되겠죠. 그분들이 그랬듯이.
근데 제 생각에 그런 아이들은 그런 아빠의 자기욕심 채우기용 사진에 질린 겁니다. 또래 친구들끼린 잘 찍잖아요. 왜? 사진은 원래 즐거운 것이니까. 별별 장난 다치고 별별 곳에서 사진 찍고 예쁜 척하고 인스타하고 페북하고 할 거 다 합니다. 딱 하나, 아빠만 빼고. 아빠랑 찍는 건 하나도 즐겁지 않으니까. 아빠는 자기 욕심만 채우니까.
제가 원하는 것은 그렇게 되지 않는 겁니다. 아이들이 크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많이 찍는 게 목적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사진이 얼마나 즐거운지를 시간을 들여 잘 말하고 그 즐거움을 공유함으로서 커서도 아빠와 사진 찍는 것을 즐거운 가족 놀이의 하나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게 제 목적이에요. 가족사진을 더 잘 찍는 것보다 그게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전 그게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중요한 건 사진 너머에 있다
물론 엄청나게 힘든 일일 거예요. 사진에 국한되지 않고 아이들이 커나가도 사이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소리인데, 그게 쉬운 일일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힘든 길의 첫걸음은 아이들에게, 가족에게 집중하는 것 아닐까요? 나만 좋으려고 찍는 거 아니다 하는 식으로 자기 합리화 하지 말고요.
누차에 걸쳐 말씀드리는 중요한 사실이지만, 저 같은 아마추어 가족 사진사는 잘 찍는 것이 제 1목적이 아닙니다. 제 1목적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사진을 같이 보고 웃어줄 가족 없이는 의미 1도 없어요.
그 가족을 지키는 것,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 가족에게 충분한 이해를 구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우선임을… 가족의 행복에 보탬이 되는 수단의 하나로서 사진을 담는 것이 가족사진의 제1의 목적임을 새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담은 아이들 사진의 제1 독자는 인터넷상의 불특정 다수가 아닙니다. 생판 남들 보여주기 위해 내 아이들의 공주처럼 아리따운 모습 담아 올리려고 억지로 애쓰실 필요는 없어요. 아빠 사진사 여러분, 여러분 사진의 제1 독자는 바로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이 보고 웃고 즐거워할 사진을 담으세요. 아이들이 커서 미소지을 사진을 담으세요.
그 점을 새삼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원문: 마루토스의 사진과 행복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