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전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 이제 영상의 시대라고, 유튜브의 시대가 온다고 했다. 귀차니즘이 더 강력한 나는 당연히 무시했고 영상 안 보고 블로그 읽는다고 대꾸했다. 음악은 멜론에서 듣고 블로그는 네이버 보고, 유튜브는 잘 보지도 않았다. 굳이 찾아서 보는 영상 따위는 없었다.
‘어떤 유튜버가 몇 억을 벌었네’ ‘이제 1인 미디어 시대네’ 해도 솔직히 영 와 닿지 않았다. 그러나 2년 동안 세계를 둥둥 떠돌아다니면서 알게 되었으니… 일단 해외에서는 속 터져서 네이버에 아예 안 들어갈 정도로 인터넷이 느리다. 멜론 월정액도 해지하고 나니까 남은 친구는 구글과 유튜브였다.
보아하니 세상은 이미 유튜브 월드였다. 음악은 당연하고 드라마, 시리즈, 유머, 뉴스, 정보, 운동, 언어 공부까지 유튜브로 안 되는 것이 없었다. 나만의 음악 리스트를 업데이트하다가 이래저래 얻어걸린 재미난 채널들을 구독하기 시작했다. 구독하고 있는 채널을 몇 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Jeremy Jahns: 영화 추천해주는 청년. 어쩌다 한번 리뷰 영상을 봤는데 나랑 취향이 비슷해 신뢰하고 있다. 이 아저씨가 비추하는 영화를 체크하는 용도로만 사용해도 훌륭하다.
- FightMediocrity: 책 추천해주는 청년. 처음에는 흔한 자기계발 유튜버구나… 했는데 올리는 영상을 계속 보니 수준이 어어? 구독하게 되었음. 워낙 짧고 임팩트 있게 설명을 잘해줘서 보고 나면 해당 책을 안 읽어도 되겠구나 호호호 하면서 책을 안 읽게 되는 부작용(?)이 있다. 유튜브로 본인이 얼마 버셨는지 아래 영상을 통해서 시원하게 까발리기도 하심. 강추.
- Yoga with Tim: 요가 알려주는 청년. 허리 망가지고 체력이 계속 고갈되면서 나이 탓만 하다가 ‘운동해야지!’ 하는 순간 찾는 채널. 수많은 요가 비디오의 홍수에서 그나마 가장 추천한다! 운동 잘못하고 허리 나가서 2주일 고생했음. 여러분은 저처럼 고생하지 마시고, 이 청년 비디오를 보면서 천천히 따라 하세요.
이렇게 유튜브로, 즉 영상으로 새로운 정보를 얻는 것에 익숙해졌다. 어느 나라를 갈지 고민할 때 영상으로, 저녁 요리 레시피도 영상으로, 와인을 코르크 따개 없이 여는 방법도 영상으로. 당연히 내가 아는 걸 소개하는 방법이 글로는 택도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레 영상 제작에 호기심이 생겼다.
‘영상 제작’이라고 하면 뭔가 어렵고 복잡할 것 같은 느낌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일단 난 성격이 급하고, 참을성이 없기 때문에 단기간에 폰으로 찍은 1분짜리 비디오를 만들고 싶었다. 재빠르게 아이폰 앱스토어를 뒤지니까 몇 가지 앱이 있었다.
- Splice: 이게 꽤 훌륭하다. 사진이랑 영상을 손으로 그냥 긁어서 붙이고, 간단한 타이틀을 탁탁 치고, 화면 사이사이 트랜지션도 넣을 수 있으며, 배경음악도 깔 수 있다. 간단한 소개 영상 만들기에 적합하다. 이 앱을 사용해서 만든 영상이 바로 ‘제주 코딩 캠프 1분 소개 영상‘이다. 최초로 만든 영상인데 지금까지 조회 수가 거의 1,000회에 육박한다. 만드는데 실제로 딱 30분 걸렸고 덕분에 제주 코딩 캠프를 멋지게 홍보할 수 있었다. 30분 투자하고 이런 효과를 보다니! 당연히 신이 나서 더 만들고 싶어졌다. 마침 코딩 캠프 후기 영상이 필요하다 싶었다.
- InShot: 이 앱은 더욱 심플하다. 영상 하나라도 그냥 업로드하기는 싫고 조금은 치장해서 이쁘장하게 다듬고 싶을 때 쓰기 적합하다. 이 앱을 사용해서 캠프 후기 영상들을 만들었다. 여기까지 만들고 나니까, 더더욱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코딩 캠프가 진행되는데 강의 내용을 조금이나마 찍어서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일단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찍기엔 이제 역부족이니 이마트에서 삼각대를 샀다. 그냥 싼 거 샀다. 2만 원짜리 (…) 당시 내 컴퓨터는 LG 기종, 3년 사용한 포토샵을 돌리면 가끔 버벅거리는 그런 컴퓨터였다. 해당 컴퓨터로 어도비 등은 꿈도 못 꾸기에 나 같은 허접이가 쓸 수 있는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찾았다.
- 뱁믹스: 똥컴도 영상편집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훌륭한 소프트웨어. 게다가 있을 건 다 있음. 유치한 효과음, 타이틀, 자막, 트랜지션이지만 그래도 다 있기 때문에 낄낄 웃으면서 만들어낼 수 있다. 뱁믹스로 만든 영상은 무려 200회 넘는 공유를 찍었다.
나도 놀람. 뭐지? 똥컴으로 이루어낸 기적 같았다. 똥컴으로 겨우겨우 3-4시간 편집해서 올리며 다시는 안 하리 퉤퉤 했는데 좋아요 올라가는 거 보니까 무슨 뽕 맞은 것처럼 더더욱 영상 편집에 열 올리기 시작했다. 근데 똥컴 때문에 편집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것이다. 드디어 새로운 컴퓨터를 장만할 때가 되었구나. 그래서 눈 딱 감고 질렀다. 맥북 프로.
- 파이널 컷 프로: 드디어 영상 좀 만진다는 사람들은 다 갖고 있다는 그 소프트웨어를 나도 건드리게 되었다. 간지 작살. 파컷이 최고예요! 못하는 게 없고 생각만큼 어렵지도 않다. 꽤 쉬운 듯? 그냥 하다 보니까 배워지더라는? 파컷으로 만든 영상이 ‘프로그래밍에 대한 오해와 진실 5가지’다.
그렇게 만들어낸 영상은 잘 긁어모아 유튜브에 탈탈 담아 넣어서 나도 채널을 만들었다. 그렇다. 나도 이제 유튜버다. 여러분 구독은 사랑입니다. 공유는 애정입니다. 눌러주세요. 누르는 것. 어렵지 않습니다.
게다가, 더 나아가서 이 영상들을 잘 모아서 강의 시리즈를 만들어야겠다는 야심 찬 생각까지 했다. 그리고 실제로 했다. 무려 동영상 강의 60여 개를 찍어서 올렸다. 편집하다가 중간에 울 뻔하긴 했다.
이 모든 영상을 2년 전에 구입한 아이폰 6+로 찍고 있다. 삼각대는 제주도 이마트에서 구입한 2만 원짜리. 편집은 파이널 컷 프로! 혼자 2달 동안 독학했다. 이 영상들 덕분에 제주 코딩 캠프도 성공적으로 끝났고 노마드 아카데미도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맥북 프로 구입 등 영상 제작에 투자한 금액은 다 회수했다!
그렇다. 기술을 배우자. 짧고 얇게 하더라도 말이다. 조한이 형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기술 배우라고. (응?)
원문: Lynn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