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시간이 되면, 막히지 않아도 될 거리가 가끔 막히는 경우가 있었다.
우리 집 앞 거리가 그랬다. 우리 집 앞은 전형적인 베드타운으로써 차보다는 지하철의 이용이 압도적으로 높은 동네였다. 그런데도 매일 7시에서 8시 사이에는 갑자기 교통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신호를 2번이나 넘게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왜냐고? 그 이유는 우리 집 앞에 로또 명당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복권을 사기 위해 세워진 긴 행렬로 인해 차를 세우는 사람들이 많아 자연스럽게 한 차로가 막히면서 차량이 정체되는 것이었다.
나는 참 궁금했다. 우리가 관심을 조금만 기울이면 복권이라는 극히 희박한 확률에 나의 돈을 걸진 않을 것이다. 참고로 로또에 당첨될 확률은 45개 중 6개를 고른 것 중 1개의 가짓수가 선택될 확률이다. 번개를 직격으로 맞을 확률보다 더 낮은 확률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희박한 확률에 자신이 포함되어 있을거라 생각하면서 복권을 산다. 그렇다면 우리는 복권을 왜 사는 것일까?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앞선 내용과 모순적으로 불확실성보다 확실한 것을 선호한다. 만약 삶이 안개 속 모습과 같다면 사람들은 행복함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안정된 것을 더 꿈꾸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들은 희박한 확률에 대한 기대심리가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복권을 구매하는 이유가 대박을 내겠다는 기대심리로 의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확률이 극히 희박한데도 불구하고, 즉 불확실성이 확실성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상태에서 우리는 왜 불확실성을 선택하는가? 어떤 넛지가 있길래 우리는 복권을 사는 것인가?
오늘 알아볼 내용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일주일에 한 번 구매하는 로또가 어떻게 많은 사람에게 복권 구매를 유도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로또 1등 당첨 확률을 다른 곳에 적용해 보자
땅 위에 820여만 명을 세운다고 가정해 보자. 한 사람당 한 평의 땅 위에 서 있다고 가정했을 때 여의도 약 92개(여의도는 90만 평)를 꽉 채울 수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로또에 당첨되는 것은 여의도 92개분의 땅 위에 서 있는 사람 중 단 한 사람만이 선택될 확률이다.
그리고 주마다 당첨자가 바뀌고 순서대로라고 할 때 최대 820만 주 뒤, 약 154,716년 뒤에나 순서가 돌아올 수 있다. 다시 말해 복권에 당첨되는 확률은 엄청나게 희박하다는 것이다.
이야기하기 쉽게 생사에 관련된 문제에 로또의 당첨 확률을 적용해 보자. 그대는 현재 엄청나게 큰 섬에 갇혀 있다. 살아 있는 사람 중 단 한 사람만이 살아서 육지로 갈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인원이 820만 명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을 제외한 약 820만 명과 싸워서 이길 자신이 있는가? 혹은 그들을 단 한 사람도 모르는 입장에서 내가 제일 강하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대개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는 굳이 살아보겠다는 의지보다는 엄청나게 희박한 확률이라는 수치적인 느낌이 먼저 오기 때문에 위험한 도박에 목숨을 걸진 않는다. 만일 내가 그대에게 2명 중 1사람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다면, 당신은 앞서 820만 명과 달리 그대는 어려운 도전을 해야 한다면 행할 것이다. 왜냐면 자신은 단 한 사람을 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게임에 적용해 보자. 어느 게임 아이템이 있는데 게임 아이템에서 유니크 아이템이 나올 확률이 로또 확률과 같다고 했을 때 그대는 이 게임 아이템을 구매하겠는가? 당연히 그 돈으로 다른 걸 살 확률이 더 높다. 왜냐고? 확률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우리는 두 가지 사례를 통해 사람들은 확률이 낮은 것을, 그것도 그냥 낮은 수준이 아니라 희박할 정도로 낮은 확률이 제시되었을 때 이를 망설이거나 대개 거절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복권은 구매하는가? 물론 목숨은 인간의 생사가 갈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제외한다 쳐도 게임 아이템 또한 잘만 한다면 정말 비싼 현금으로 아이디를 주고받아 돈을 벌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왜 복권의 확률에는 그리도 무감각한가? 도대체 어떤 전략이 숨어 있는 것인가?
45개 중에 6개, 2/15?
복권은 희박한 확률에 사람들이 마주했을 때 구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실질적인 확률을 숨기고 명시적으로 확률을 높이려고 하는 시도를 하거나, 1등과 2등의 당첨금을 높게 잡는 넛지 전략을 쓴다.
그 이유는 확률이 높아지면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그곳에 걸려는 경향이 있으며, 1등에게 프리미엄을 주면 그 1등이 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달려들 것이기 때문이다! 복권은 어차피 사기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복권을 살 때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일은 잘 하지 않지 않는가).
과거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로또는 6/45 이라는 분수를 굉장히 강조한다. 대략 당신이 45개의 숫자 중에서 6개를 골라서 그게 맞으면 당첨된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1등에 당첨될 확률이 6/45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는데, 6/45은 45개 중 6개를 ‘고를’ 확률이지, 그게 ‘맞을’ 확률은 아니다.
고를 확률과 그게 일치할 확률이 같다고 생각하는 건 다르다. 당신의 2/15는 당신이 로또에 새긴 숫자들이 선정될 확률일 뿐이다. 그렇다면 고르는 확률을 전면적으로 내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희박한 확률 대신 고르는 확률을 선택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당첨 확률이 2/15라고 말은 하지 않지만(그렇게 하면 사기다) 실질적으로 내가 당첨될 가능성이 있는 확률을 마주하게 되면 그 확률에 돈을 거는 습성이 있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45개 중 6개를 맞추면 1등’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1등에게만 프리미엄을 주는 이유
또한, 우리는 복권의 당첨금의 차이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세히 보면 1등과 2등의 차이는 엄청나다. 1위는 억 단위의 당첨금을 받아가는 데 비해 2등은 천만 원 단위, 3등은 1백만 원 단위, 그리고 4등부터는 몇만 원, 몇천 원 단위로 떨어진다. 우리는 얼핏 보기에 당첨금을 균등하게 배분해 놓으면 더 많은 이들이 복권을 구매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의 선택은 그렇지 않다.
A : 1등 상금 3억, 2등 상금 4천만 원, 3등 상금 1만 원
B : 1등 상금 1억 3천 1만 원, 2등 1억 1천 원, 3등 1억 원
두 가지 복권이 있다. 여러분은 어느 복권을 구매하겠는가? 1, 2, 3위의 차이가 명백한 A? 1, 2, 3위의 차이가 그렇게 많지 않은 B? 놀랍게도 전체의 86%가 B를 선택했다. (200명 중 172명)
A에 더 많은 사람들이 돈을 거는 이유는 두 가지다.
- 어차피 복권은 안 되면 그만인데 이왕 되면 더 많이 가져가는 것이 좋지. 라는 심리.
- 1등과 2등, 3등의 차이를 두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복권은 공모전과 다르다. 돈을 투자하는 순간 복권은 희박한 확률의 당첨과 매우 높은 확률의 반대가 조만간 결정되는 상황이다. 그들은 그저 얼마의 돈만 투자하면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에선 당첨자에게 더 많은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부담 없는 가격, 그리고 1, 2 등의 차이를 부여해 복권은 지극히 낮은 확률임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의 일과 중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복권에 당첨된다는 생각, 어느 날 운이 우리에게 오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복권의 넛지에 홀렸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원문: 고석균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