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석 복권, 로또 복권, 다단계, 누군가의 성공 이야기,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 주식으로 400억을 번 청년 워렌 버핏
지난주에 뭔가 운수가 좋은 느낌이 들어 우연히 손에 넣은 번호로 적은 수동과 기계의 자동으로 로또 복권 만 원치를 구매했다. 하지만 그 운수 좋은 느낌과 달리, 나는 로또 복권에 당첨되지 못했다. 1등은 바라지도 않고 그저 내년까지 대학 등록금을 해결할 2등을 바랐을 뿐인데.
흔히 사람들은 복권에 거는 희망을 지푸라기 같은 희망이라고 말한다. 오늘처럼 빈부 격차가 커지고,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다른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복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일확천금을 지푸라기 같은 희망으로 여긴다. 그래서 금요일 밤 복권방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나도 미리 집에서 용지에 기재해온 종이 한 장과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들고 줄을 서 있는데, 앞에서 무려 10장에 가까이 되는 복권을 구매하는 사람도 있었다. 필시 여러 복권 번호 패턴 분석 사이트를 이용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그 아저씨가 구매하는 복권을 보면서 과연 당첨될까 궁금했다. 바로 내 앞의 아저씨는 지난주 복권 한 장과 오천 원을 들고 만 원치 구매하셨는데, 지난주 복권이 낙첨된 복권이라 순간 당황해하셨다. 아저씨는 “어, 내가 집에서 확인했을 때는 5등 당첨이었는데….”라며 말을 흐리셨고, 아르바이트생이 번호를 하나씩 확인해드리며 낙첨된 복권임을 전했다.
이런 풍경 또한 종종 복권 판매점에서 볼 수 있다. 제법 연세를 드신 듯한 그 아저씨는 이미 새하얀 머리와 수염이 듬성듬성 난 데다가 생기가 없는 얼굴이 절대 편한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걸 엿볼 수 있었다. 생활이 편한 사람이 이곳 복권 판매점에 들리는 일은 거의 없을 테니까. 줄을 서 있는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로또 복권 만 원 치와 2,000원짜리 즉석 복권 두 장을 구매했다. 14,000원이면 제법 맛있는 밥 한 끼를 먹거나 책 한 권을 아슬아슬하게 구매할 수 있는 돈이지만, 매주 구매하는 지푸라기 같은 희망은 역시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지푸라기 같은 희망의 결과는… 당연히 지푸라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지푸라기 같은 희망으로 당첨이라는 행운을 얻은 사람은 손에 쥔 종이가 금으로 바뀌었겠지만, 나처럼 5등조차 당첨되지 못한 사람은 그저 지푸라기에 불과하다. 지난주에도 1등이 무려 8명이 나왔고, 2등만 하더라도 41명, 3등이 1,734명이 나왔다.
분명히 적지 않은 인원임에도 내가 거기에 속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왠지 분하다. 하지만 사실 당첨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크게 품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지푸라기 같은 희망은 정말 그 정도의 확률에 불과하며, 지푸라기 같은 희망은 희망이 아니라 지푸라기일 가능성이 크다는 걸 알고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청년들에게 지푸라기 같은 희망이라도 손에 쥐고, 더 잘 살기 위해서 노력하라고 한사코 가르친다. 그런데 그 지푸라기 같은 희망을 바라보며 사는 청년 세대는 이후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나는 몇 번이고 그 질문을 나 자신에게 해보지만, 도무지 강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다.
분명히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은 그냥 막 되는대로 사는 사람보다 지푸라기 같은 희망을 손에 쥘 확률이 높다. 요즘 청년 세대의 트렌드인 ‘적당히 벌고 잘 살자’는 내 삶을 살기 위해서 이 지독한 사회에서 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선택이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길 또한 그런 길이다.
그러나 우리 경쟁 사회는 좀처럼 그런 사람을 응원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야망이 없다거나 큰 꿈을 그리지 못한다며 비판하기도 한다. 흔히 이렇게 ‘하여튼, 요즘 청년 세대는…!’이라며 비판하는 사람들은 예전에는 모두 못 살았어도 더 살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나도 그 점은 인정한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한국이 이토록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더 살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 기성세대 덕분이다. 그런데 지금 시대는 변해버렸다. 당시 모두가 한마음으로 노력했어도 이미 어른들 세대에서부터 메꿀 수 없는 커다란 계급 차이가 생겨버렸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그때의 계급이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이름으로 세습되는 시대다. 이미 평범한 사람이 평생을 벌어도 가질 수 없는 부를 소유한 재벌 2세는 시작지점부터 너무나 다르고, 새로운 재벌로 떠오른 슈퍼스타 연예인 집안도 일반 사람은 고개를 90도 꺾어도 쳐다볼 수 없는 곳에 있다. 오히려 돈 없는 사람들은 서로의 돈을 갈취하는 다단계의 유혹과 쉽게 돈 벌 수 있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걸로 몇 천만 원을 벌었다. 니도 해봐라.”라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그렇게 해서 누구나 돈을 벌 수 있다면, 왜 자신은 그렇게 벌지 못했는지 생각지도 못한 채 말이다.
또한, 기성세대는 아주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돌연변이처럼 성공한 사례를 예로 들면서 “쟤 봐라. 겨우 저 정도로 400억대 주식 부자가 됐다. 맨날 그렇게 부정적으로 살면 될 것도 안 된다.”라고 말한다. 그러한 특이한 사례가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으면 과연 못사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사람들은 그렇게 모두 지푸라기 같은 희망을 손에 쥐려고 한다. 그 희망이 복권인 사람이 있는 반면에, 정체를 제대로 알 수 없는 업체가 홍보하는 다단계인 사람도 있다. 증거를 대보라고 하면 증거를 대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주 특별한 사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
과연 오늘 이 글을 쓰는 나와 이 글을 읽을 독자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지푸라기 같은 희망은 그냥 지푸라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매주 복권을 구매한다. 내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일이 절대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내 삶의 방식을 고집한다. 어쩌면 나는 지푸라기로 집을 구한 동화를 믿는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일지도 모른다.
원문: 노지의 소박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