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졌다
만약 깔끔한 패배 선언이 내려진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리고 그 패배의 사건은 우리 삶 속에 과연 어떤 의미로 남을까? 일단 패배라는 경험은 결코 유쾌한 것이 아니다. 온갖 안 좋은 말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우울, 불안, 박탈감, 실망, 절망, 슬픔, 분노, 비관 등 패배라는 사건은 여러 가지 부정적인 심리적 효과를 낳는, 우리 삶의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이 패배라는 녀석이 신분의 귀천이나 남녀노소를 따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돈 잘 벌고 소위 ‘잘 나간다’ 해도 언제든 패배자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안전지향적으로 운신의 폭을 좁혀본다 한들, 기습적으로 불쑥 찾아와 뒤통수를 후리고 마는 것, 그것이 곧 패배라고 하는 대상이다.
다시 말하자. 우리는 언제나 승자가 될 수 없다. 필연적으로 우리는 패배를 경험하게 되어 있다. 패배를 경험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겠다는 발상은 지극히 무모하고 오만한 일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 인생에 패배란 없다’ 식의 그릇된 환상에 젖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패배의 경험들을 어떻게 대처하고, 쓰디쓴 인생 교훈으로 남겨 훗날의 경계로 삼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일은 아닐까.
‘패배’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경쟁(Competition) 속에 놓여 있다면, 혹은 지금부터 누군가와 경쟁하고자 출발선에 서려 한다면 반드시 먼저 스스로에게 던져 봐야 하는 질문들이다. 그것은 패배의 경험을 감당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리고 패배를 딛고 ‘2차전’을 준비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패배감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발생하게 되는지 한 번 생각해보자.
먼저 패배감(敗北感)이란 우리가 추구하던 유/무형의 자극으로부터 멀어질 때, 혹은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던 지위나 역할 등이 상실될 때 찾아오는 느낌들이다. 분노와 연민으로 점철된, 스스로를 향한 양면적인 감정, 나를 패배시킨 상대에 대한 질투, 존경, 분노. 우울감과 상실감. 기대의 배신으로부터 오는 ‘씁쓸함’. 무기력과 절망. 체념 등 많은 느낌들이 패배의 대가로서 밀려들어 온다.
대한민국 사회는 경쟁을 통해 지탱되어 온 사회다. 말 그대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생애 매 순간 그 나잇대에 맞는 크고 작은 경쟁들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패배감이 무엇인지 인식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씁쓸하지만.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흔히 패배라고 부르는 사건들 자체가 무조건적으로 패배감을 낳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패배는 ‘패배’로서, 우리에게 의식적으로 지각되어야 한다. 자원으로부터 멀어지더라도, 상대와의 격차가 벌어지더라도 그것을 내가 ‘패배’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패배감을 경험하지 않게 된다. 다시 말해, 객관적으로 벌어진 사건 그 자체보다는, 사건에 대한 인지적 해석 결과에 따라 패배감의 지각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는 의미다(Gilbert & Miles, 2000).
이렇게 본다면 ‘세상일은 마음먹기 달렸다’라 하셨던 원효대사의 가르침은 패배감의 심리학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훌륭한 통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정신 승리’나 하라는 의미인가? 패배를 인정하지 말라는 것인가?
장기적으로 패배로 보이는 사건을 ‘패배’로 낙인찍지 않도록 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사실 의미 없는 패배란 존재하지 않는다. 끔찍해 보이는 패배 속에서도 분명히 한 줌 건질 것은 있는 법이다.
패배 속에서도 내가 무엇을 경험하고 깨달았는가에 주목하여, 그 경험을 ‘패배’가 아닌, 2차전을 위한 ‘교훈’으로 새롭게 프레이밍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았던가. 무릇 세상만사에는 일장일단(一長一短) 없는 것이 없다고. 정리하자면 패배를 ‘남는 장사’로 인정하는 것은 패배가 가져다주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매우 중요하므로, 평소 꾸준히 패배의 기억들을 꺼내어 보면서 각각의 사건들이 내 삶에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 모두를 공평하게 들여다보고 정리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한편, 패배를 딛고 ‘2차전’을 준비하기 위해 여러분이 해야 할 또 한 가지의 중요한 과제는 바로 패배감과 함께 은밀히 찾아오는 또 한 가지의 감정을 이해하는 일이다. 우리는 흔히 사건의 결과를 ‘패배’로 인식했을 때, 패배감 단 한 가지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숨겨진 불청객이 한 가지 더 있어, 결과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더 패배에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드니 그것이 바로 속박감(entrapment)이라는 존재다.
속박감이란 ‘현재의 어려운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주관적인 느낌’을 의미하는데 외적 속박감(external entrapment)과 내적 속박감(internal entrapment)으로 구분된다. 외적 속박감은 현재 내가 속해있는 이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느낌을 말하며, 내적 속박감은 현재 패배 사건으로 말미암아 경험하고 있는 부정적인 정서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느낌을 말한다.
기존 연구들에 의하면 속박감은 우울증, 불안장애, 자살 등 심각한 정신병리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Gilbert & Allan, 1998). 패배감과 속박감이 과연 다른 개념인가? 라는 문제 제기가 꾸준히 있을 정도로 두 개념은 상호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다시 말해 패배감이 찾아들 때면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 속박감이 으레 함께 따라오게 된다. 그리고 기존의 연구에 따르면 패배감 뒤에 숨은 속박감은 패배감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Taylor, Gooding, Wood, Johnson, & Tarrier, 2009).
마무리하며
정리해보자. 우리가 유독 패배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래서 패배를 쓴 약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로지 타인을 밟고 승리하는 것에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을 ‘패배감이 싫어서’라고만 이야기하기에는 어딘가 아쉽다. 바로 ‘속박감’에 대한 두려움이 더해졌기 때문은 아닐까? 한 번 패배하고 난다면, 다시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서, 패배의 구렁텅이에 갇혀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아서 패배가 유독 무서워지는 것은 아닐까? 정말 그렇다면 그것은 과연 개인 혼자만의 책임이라 할 수 있을까?
패배감과 속박감 간의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것. 패배로 말미암아 약간 뒷맛이 쓰리지만, 곧 다시 털고 일어나 ‘2차전’을 새롭게 준비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도록 하는 것.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다면 건강한 경쟁은 피어나기 어렵다.
츌처: 허용회의 브런치
참고 문헌
- Gilbert, P., & Allan, S. (1998). The role of defeat and entrapment (arrested flight) in depression: an exploration of an evolutionary view. Psychological medicine, 28(3), 585-598.
- Gilbert, P., & Miles, J. N. (2000). Sensitivity to Social Put-Down: it’s relationship to perceptions of social rank, shame, social anxiety, depression, anger and self-other blame.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29(4), 757-774.
- Taylor, P. J., Gooding, P. A., Wood, A. M., Johnson, J., Pratt, D., & Tarrier, N. (2010). Defeat and entrapment in schizophrenia: The relationship with suicidal ideation and positive psychotic symptoms. Psychiatry research, 178(2), 244-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