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ion
올해 1년 차 팀장입니다. 상무님으로부터 공정거래법에 저촉될 수 있는 업무를 지시받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돼서 동료들에게 물어보니까 “시키면 해야지. 월급쟁이가 별수 있나”라면서 ‘뭘 그런 걸 갖고 고민을 하냐’는 식으로 얘기합니다. 다들 도덕 불감증에 걸린 건가요? 제가 이상한 건가요? 어떻게 해야 하죠?
Answer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언젠가는 한 번쯤 하게 되는 고민이죠. 회사를 위해서 과연 어디까지 해야 하나? 내 양심과 자존심을 어느 선까지 타협할 것인가? 먼저 월급쟁이가 회사에서 불법행위를 하는 경우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보통 다음 세 가지 중 하나입니다.
- 실적으로 심하게 쪼는 경우입니다. 지나치게 높은 목표를 받거나, 목표는 높은데 그만큼 회사에서 지원을 안 해줄 때 다급한 나머지 불법적인 수단에 의지하죠. 이때는 회사 경영진 모르게 부서 내에서 자체적으로 진행됩니다. ‘가라 수요’를 잡거나, 장부를 조작하거나, 고객에게 허위 정보를 제공하거나 등. 때로는 경영진에서 알면서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 회사 경영진에서 지시하는 경우입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지시하는 측도 실행하는 측도 모두 회사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죠. 계열사에 사업 몰아주기, 관계 기관 불법 접대하기, 비자금 조성하기 등. 때로는 회사가 아니라 개인을 위해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 개인 비리를 저지르는 경우죠. 구매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받거나, 거래업체로부터 불법 접대를 받거나, 회사 자금을 횡령하거나 등. 개인이 단독으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부서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자행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상사가 알면서도 ‘관행’이라는 생각에 눈감아주는 경우도 있고요.
이처럼 자의든 타의든 불법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당사자는 스트레스를 받죠. ‘내가 안 하면 그만이지, 뭐가 그리 대수야’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불법행위를 하느냐 안 하느냐가 충성도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불법행위를 수행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작은 불의에도 부르르 떨면서 비분강개했던 분들이 회사에 들어와서는 ‘유도리’가 지나치게 많아져서 웬만한 불의는 너그럽게 넘어가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봤습니다. “회사원이라면 응당 조직을 위해 충성해야지. 안 그럴 거면 회사에 왜 다니나?” “이런 거 저런 거 다 따지면서 일하면 결국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어”가 이들의 논리죠. 이런 사람이 회사에 많고, 또 인정 받는 경우가 종종 있어 ‘나 혼자 깨끗하게 독야청청하리라’는 절대로 쉬운 선택이 아닙니다.
‘뭐 이런 걸로 고민해’ 하면서 글을 쓴 사람은 물론 이 글을 읽는 사람까지 한심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저도 이 글을 쓰면서 욕 먹을까 봐 걱정 많이 했습니다. 지나치게 세속적인 분들로부터는 “순진하게 별 쓸데없는 고민을 다 한다”, 정말 청렴한 분들로부터는 “무조건 안 해야지, 이런 걸 왜 따지고 있어”라고 욕 먹고.
그럼에도 질문하신 분처럼 이러한 문제에 직면해 고민 중인 ‘침묵하는 다수’를 위해서 제 ‘51% 정답’을 말씀드리자면, 불법행위를 할지 안 할지를 고민할 때에는 여러 경우의 수를 놓고 면밀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1. 불법의 수위가 어느 정도인가?
제일 먼저 따져봐야 할 점은 ‘불법의 정도가 통상적으로 허용되는 범위인가‘입니다. 회사 동료들이 “위에서 시키는데 그 정도도 못하면 회사생활 못하지” 또는 “월급쟁이라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지”라고 하는 수준이라면 모르지만 그것을 넘어선다면 절대 하면 안 됩니다.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점은 ‘내가 불법행위를 했다는 사실은 비밀이 될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불법행위를 내 성과로 인정받게 되면 호사가들에 의해 내가 한 일은 금방 소문이 나겠죠. “누구누구는 이런 일을 총대 메서 한 뒤 승진했다”는 등.
이때 불법의 정도가 사내에서 통상적으로 허용되는 범위를 벗어날 경우, 잘못하면 ‘회사의 주구’ ‘파렴치범’ 심할 경우 ‘무뇌충’으로까지 간주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아무리 좋은 성과를 내도 ‘불법행위의 수혜자’라는 꼬리표는 절대 사라지지 않죠.
2. 내 커리어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먼저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십시오.
지금 이 회사가 내 평생직장인가?
내 궁극적 목표는 이 회사에서 성공하는 것인가?
만약 위 질문에 대한 답이 “예스”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절대 하면 안 됩니다. 지금 회사에서 불법행위를 한 사실이 알려진다면 타 회사로의 이직이나 다른 직종으로의 전환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특히 공직에 뜻이 있다면 더더욱 안 되겠죠.
3. 나의 성과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다음과 같이 바꿀 수 있습니다.
내가 한 일이 경영진에게까지 노출이 되는가?
불법행위는 자칫 잘못하면 회사의 잘못을 옴팡 뒤집어쓰고 감옥에 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잘 수행하고 이 사실이 경영진에게까지 알려진다면 로열티를 인정받아 ‘패스트 트랙’을 탈 수도 있죠.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 직급을 따져봐야 합니다.
일개 팀원에 불과하다면 불법행위는 절대 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잘 해도 로열티를 제대로 인정받기 힘듭니다. 로열티를 사는 경영진과 로열티를 바친 팀원 간의 간격이 너무 크기 때문이죠. 팀원이 몸 바쳐 이룬 불법행위의 열매를 경영진과의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임원과 팀장들이 따먹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 마디로 ‘죽 쒀서 개 주는’ 꼴입니다.
4. 행위에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가?
경영진에서 내 성과를 인정은 해줬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과연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모 회사에서는 사장님께서 이런 역할을 도맡아 하셨죠. 그런데 사장님은 절대로 일을 직접 하지 않으세요. 만만한 차·부장급을 불러다가 일을 지시합니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점은 사장님께서 절대로 일을 명확하게 지시하지 않으세요. 굉장히 두리뭉실하게, 하지만 바보 천치라도 알아듣게끔 말씀하시죠.
가령 “사업부를 해체하고 해당 인원을 구조조정해라”라고 말씀하시는 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기준을 세워 회사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업부를 선정해라”라고 하신 뒤 자신이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선정 기준을 계속 바꾸라고 지시합니다. 자신의 의도를 넌지시 전달하는 경우도 있죠.
결국 지시를 받은 담당자(오 부장이라고 하죠)가 마침내 사장님께서 원하시는 사업부를 선정해오면 주요 회의체에서 발표하십니다. “오 부장이 모 사업부를 다른 사업부에 통폐합할 것을 제안했다”고. 그러고 나서는 인사팀에 지시하죠. “오 부장의 제안에 따라 모 사업부 인력을 재배치하라”고. 오 부장은 속으로 ‘헉’ 하겠죠. ‘통폐합’이라는 말은 오늘 처음 듣는 말이거든요. 그런데 사장님께서는 그것을 오부장이 제안했다고 하시니.
한 달 후 오부장은 다른 조직으로 배치받았고 인사팀장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대기 발령 조치가 났습니다. 아마 인사팀장은 사장님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겠죠. 불법이니까. 사장님 의도를 모르고 이를 충실히 따랐던 오부장은 여하간에 살아남았지만 사장님의 의도를 간파했던 인사팀장은 팽당한 것이죠.
오 부장이 담당했던 역할은 보통 외부 컨설팅 회사에 의뢰하지만 사장은 그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직원 한 명을 완전히 바보로 만드셨죠. 오 부장도 끝내 챙겨주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이런 사장 같은 사람에게 불법행위를 지시받으면 절대 하면 안 됩니다. 이용당한 뒤 야멸차게 버림받습니다.
5. 또 시키면 또 할 수 있는가?
많은 사람이 간과하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조직의 특성상 한 번 불법행위를 하면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일단 불법행위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믿을만한 사람으로 인식합니다. 비슷한 일이 생기면 또 지시받죠. 만약 두 번째에 못한다고 거부하면, 그동안의 신뢰가 깨지고 심할 경우 ‘배신자’로 낙인 찍힙니다.
불법행위를 한 번 하면 아무래도 계속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맨 처음 지시받았을 때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질문은 “이번 딱 한 번만 할 수 있는가?”가 아닙니다. 이때 해야 하는 진짜 질문은 “불법행위를 이번 한 번 하는 것은 물론 앞으로 비슷한 행위를 지시받아도 계속할 수 있는가?”입니다. 만약 자신 없다면 절대 하면 안 됩니다.
6. 내 양심과 배짱이 허락하는가?
아마 이 마지막 질문이 가장 결정적인 질문이 될 것 같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 양심과 배짱이 허락하는가?”입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과연 내가 이 일을 하고도 떳떳하게 살 수 있는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불법행위를 내 성과로 인정받으면 호사가들에 의해 내가 한 일이 알려질 뿐 아니라 오히려 더 과장돼서 소문날 것입니다. 따라서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는 것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배짱이 두둑한가?’도 함께 답해야 합니다. 양심이 없고 배짱이 많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절대 하면 안 됩니다.
결론
국내에서 월급쟁이로 직장생활을 하는 이상 불법행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운전대를 잡는 순간 도로교통법을 100% 지킬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만약 도로교통법을 100% 지키면서 운전할 경우 하루에 수십 번 욕 먹을 각오를 해야 할 겁니다.
문제는 다음이겠죠. 과연 어디까지 할 것인가? 내 양심과 배짱은 이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저는 기준만 제시했지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참고로 저는 예전에 고민할 일이 한 번 있었는데 2번에서 바로 쫑냈습니다. 만약 2번에서 어찌어찌 통과됐다고 하더라도 6번에서 다시 쫑났겠죠. 배짱이 없으니까…
Key Takeaways
- 회사에서 불법 행위를 지시받으면 여러 경우의 수를 놓고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 불법의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 커리어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성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또 시키면 또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양심과 배짱이 허락하는지…
- 직장생활을 하는 이상 불법행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실행 여부는 여러분의 몫이다. 양심껏 판단해라!
원문: 찰리브라운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