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단계 한국 출판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대형서점의 매대 판매와 중고서점이다. 둘이 문제인 이유는 출판업이 존속될 수 없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출판인들은 왜 가만히 있었을까? 자신만 매대를 사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었을까?
그러나 대형서점이 중요한 자리부터 팔다가 구석 자리까지 팔면서 한국의 출판은 처절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한 대형서점의 한 지점에서는 1주일에 세 부만 팔려도 매대를 사면 팔릴 가능성이 있다고 출판사를 협박하고 있다. 정말 대한민국의 출판은 처절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형서점은 애초부터 책을 팔 생각이 없다. 그저 책은 문구, CD, 커피, 음식 등을 팔기 위해 손님을 끌기 위한 미끼(집객)상품에 불과했고, 심지어 지역 부동산을 띄우기 위해 내건 풍선에 불과했다. 책이 팔리지 않는 손실은 출판사들을 협박해 매대를 팔거나(오프라인서점) 이벤트 비용을 부담시키면(온라인서점) 그만이었다.
어떻게 그들과 함께 공생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대형서점에 찍히면 망한다고 생각해 절절매면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그나마 목숨을 유지한다는 노예근성으로 살았기에 백주대낮에 버젓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대형 출판사는 매출액의 10~20%를 홍보비를 쓸 수 있다. 그러니 좀 팔아보겠다는 전략상품을 매대를 사서 진열했을 것이다. 대신 신문광고를 비롯한 다른 광고는 하지 않기 시작했다. 총 비용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그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 한 해를 잘 넘기는 것이고, 베스트셀러에 오르지 못하면 한 해를 허덕이게 되는 셈이다. 구간 스테디셀러는 대헝서점에서 밀려나 독자의 눈에 띄지 못하니 판매가 크게 떨어진다. 그러니 늘 팔리는 신간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이런 구조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출판사가 살아남기 위해 직원을 줄이고 신간 종수를 줄인다. 그렇게 줄여나가다 결국 한두 사람만 남게 될 것이다. 신생 출판사가 베스트셀러를 갖게 되어도 직원 수를 늘리지 않는다. 이러다가는 언젠가는 모두 1인 출판사만 남게 될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신간은 넘치지만 신간이 없다. 정말 손에 잡히는 신간을 찾아보기 어렵다. 일간신문의 책 담당 기자들을 만나면 대뜸 하는 질문이 “요즘 괜찮은 신간이 너무 나오지 않아요? 그 이유가 뭔가요!”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이런 출판이 얼마나 갈까?
어제 합정역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차를 마셨다. 식당에서, 찻집에서, 거리에서 출판인들을 너무 만났다. 다들 매대 판매에 대해 내가 올린 글들을 읽고 있었다. 잘 읽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 끝인가? 아니다. 분노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이 서서히 달궈지는 철판 위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좀더 뜨거워지면 모두 타 죽을 것이다.
이제 그런 현실을 제대로 알았으면 공론을 통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것은 당장 매대 판매를 없애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두가 매대를 사지 않겠다는 결의부터 해야 한다. (중고서점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따로 이야기할 생각이다.)
하지만!!!
어제 『책을 직거래로 판다』(이시바시 다케후미)의 출간을 계기로 역자인 백원근 형과 발행인인 내가 한 기자와 인터뷰를 가졌다. 이 책을 펴낸 이유를 물었다. 이런 책을 펴내서 이익이 나지 않는다. 20년 경험을 했으니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데 왜 펴냈을까? 이 책의 모델이 된 트랜스뷰는 2001년 4월에 창업했다. 첫 책이 나올 때쯤 일본의 2대 도매상인 도한과 닛판을 찾아갔다. 도매상에서 내건 조건으로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는 서점과의 직거래 방식을 선택했다. 모두들 그게 가능하냐고 말했지만 지금도 잘 버티고 있다. 지금은 2,232개 출판사와 거래하면서 54개 출판사의 거래업무를 대행해주고 있다.
트랜스뷰가 선택한 방식은 일본 출판유통업계에서 가장 충격을 준 것이었다. 남들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을 해냈기 때문이다. 트랜스뷰는 서점에 이익을 더 주기 위해 직거래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도매상을 통하는 것보다 정가의 10% 정도를 서점에 마진을 더 주게 된다. 나는 이것을 공생의 철학으로 보았다. 혼자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겠다는 공생의 철학 말이다.
“(일본의) 서점계가 다른 업종보다 성실한 지급을 상식으로 생각하는 경영자들이 모인 곳인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도매업체에 미지급금을 둔 채로 몇 년, 몇 십년간 영업하는 서점도 많다.
이는 고도 경제 성장기와 거품경제 기간을 중심으로 도매업체들이 시장 쟁탈전을 하면서 서점의 개점 장벽을 낮추고 개점 시 초기 재고의 지급 기한을 연장하거나 기존 점포의 미지급분에 대해 눈감아주는 조치를 여기저기서 해왔고, 그 부정적인 유산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도매업체들의 오랜 골칫거리 중 하나다.”
(98쪽)
일본의 도매상은 대주주이기도 한 대형출판사에게는 입고분에 대해 다음 달에 바로 지불한다. 그러니 신간을 펴내 입고하기만 하면 바로 수금을 할 수 있다. 책이 바로 돈이라 ‘위폐’라고 말한다. 그런데 반품이 문제다. 40%가 넘는 반품. 그래서 신간을 내는 속도를 더욱 높여야 한다. 자전거 페달을 돌리듯 신간을 펴내야 하는 ‘자전거식 조업’은 헬리콥터를 돌려야 하는 ‘헬리콥터식 조업’으로 바뀌었다. 그런 구조에서 살아남기가 쉽겠는가?
문제는 소형 출판사다. 소형 출판사는 ‘신간 위탁’의 책이 입고된 이후 7개월이 지나서야 구매 대금을 지급한다. 게다가 5%의 수수료까지 뗀다. 서점이 ‘주문’(우리의 매절 같은 것)한 책도 배본 금액의 70%만 다음 달에 지불하고 30%는 반년 후에 지급한다. 트랜스뷰는 이런 조건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직거래 방식을 택했다.
“‘트랜스뷰 방식’이란 ‘모든 서점에 32%의 마진을 준다’, ‘모든 서점에 원하는 부수를 보낸다’, ‘모든 서점에 주문 당일 배송한다’는 3원칙이 모두 적용되는 것을 가리킨다. 이처럼 자신 있게 출판사가 서점의 능동적인 주문에 의존하기 위해서는 좋은 책(팔리는 책, 서점이 팔고 싶은 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역자 후기 중에서)
‘트랜스뷰 방식’을 우리가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출판이 안고 문제를 타개할 힌트는 주고 있다.
“우리 책을 가져다 팔고자 하는 서점이 있으면 원하는 책을 원하는 만큼 가능한 한 빠르게 보내고, 팔린 책에 적절한 이익을 주는 것”
이라는 트랜스뷰의 출판정신만 잘 실천한다면 우리 출판도 해볼 수 있다. 책은 르포의 형태로 썼기에 너무 술술 읽힌다.
나는 일본의 대표적인 그래픽 디자이너인 스시우라 고헤이 선생의 배려로 트랜스뷰의 나카지마 사장과 구도 이사, 『편집이란 어떤 일인가』의 저자인 와시오 켄야 선생과 함께 저녁을 함께 한 적이 있다. 도쿄의 한 식당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놀기도 했다. 그때 그들은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그런 경험이 있기에 누가 이 책을 권했을 때 나는 출간을 주저하지 않았다. 나하고 함께 일하고 있는 아직 경력이 1년도 안 된 편집자가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는 이야기만 듣고도 나는 만족했다. 어제 그 친구는 약속도 미루고 나와 백원근 형의 인터뷰를 지켜보았다.
곧 우리도 우리 출판이 살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도시재생과 연결한 새로운 모델을 논의 중이다.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출판은 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궁즉통(窮則通)이라고 했다. 우리 출판이 바닥을 치고 있기에 새로운 모델이 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나는 이를 위해 도매거래 없이 8개월째 버티고 있다. 반품은 제로에 가까워졌고, 현금 흐름은 좋아졌다. 이것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그래서 새로운 모델을 논의 중이다. 그러나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다. 충분히 논의한 이후 실제로 적용해볼 생각이다.
원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