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히치콕의 1960년 작 <싸이코>는 영화 역사상, 아니 대중문화 역사상 가장 거대한 영향력을 지닌 작품 중 한 편이다. 스릴러 장르의 판도를 바꿨음은 물론이고, 맥거핀의 활용과 스타 배우를 활용하는 방식까지 그야말로 ‘기존에 없던’ 작품이었다. 여러 측면에서 영향력을 끼친 작품이지만, <싸이코>하면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버나드 허먼의 소름 끼치는 현악과 굉장히 짧고 빠른 편집으로 이어 붙여져 만들어진 샤워 살인 시퀀스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점쟁이 문어 파울의 생애>, <최신좀비가이드> 등의 독특한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오던 알렉산더 O. 필립 감독의 신작 <78/52>는 <싸이코>의 전설적인 샤워 살인 시퀀스를 분석하고 찬양한다.
영화는 다양한 인터뷰이를 동원한다. 일라이저 우드와 같은 영화배우, 일라이 로스, 믹 게리스, 기예르모 델 토로, 카린 쿠사마 등의 영화감독, 대니 엘프먼 등의 영화 음악가, 그 외 영화 편집자, 영화 평론가, 영화 각본가 등의 인터뷰가 등장한다. 샤워 살인 시퀀스의 주역인 자넷 리의 딸인 제이미 리 커티스와 자넷 리의 대역을 맡았던 말리 렌프로 등이 영화를 회상하기도 한다. 다양한 직종과 경험을 지닌 사람들이 샤워 시퀀스의 전설에 대해 각자 알고 있고, 생각했고, 해석한 썰을 푼다.
91분의 러닝타임은 이러한 인터뷰로 가득하다. 당시 사용된 대본과 스토리보드의 영상이 지나가고, 시퀀스의 쇼트들을 해체해 하나씩 설명하기도 하며, <싸이코>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매체를 가리지 않고 보여주기도 한다. 평이한 구성이지만 <싸이코>의 명장면을 복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즐거운 관람이 된다.
<78/52>의 문제점은 영화 속에서 제목의 의미가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GV에서 알렉산더 O. 필립 감독은 제목의 의미가 78번의 카메라 셋업과 52개의 쇼트라고 설명했지만, 그의 설명을 듣기 전에는 ‘78초의 시퀀스와 52개의 쇼트’라고 해석한 리뷰가 있는 등 영화를 본 관객의 말이 모두 달랐다. 영화 속에서 제목의 의미에 대한 내용은 전혀 등장하지 않으며, 관객으로 하여금 의문만을 남긴다. 이는 <싸이코>에 대한 심층적 해석이나 분석 대신, 영화의 팬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을법한 이야기들을 당사자와 전문가의 이야기로 다시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되새겨준다.
영화가 공개된 지 70년이 지난 시점에서 장면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지 못한 채로, 시퀀스에 대한 찬양과 경배만을 바치고 있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게다가 영화 중간에 등장하는 강간 비유나 <돌이킬 수 없는>처럼 억지스러운 예시를 끌어오는 부분은 재미도 없을뿐더러 불편하기까지 하다.
결국 <78/52>는 <싸이코>와 샤워 살인 시퀀스의 위대함을 다시 리마인드 시켜주는데 그치고 만다. <싸이코>의 영향력은 지금도 유효하고, 앞으로도 이어질 것은 당연하고 분명한 일이지만, 영화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만을 이어가고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제공하지 못하는 다큐멘터리는 어딘가 아쉽다.
원문: 동구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