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Economist의 「The rise of childlessness」를 번역한 글입니다.
‘포켓 리빙’은 2005년부터 런던에서 소형 아파트를 지어온 회사입니다. 자전거 거치대처럼 젊은 싱글에게 필요한 시설을 갖춘 반면 큰 책장이나 넓은 주방은 없는 아파트를 집중적으로 지었습니다. 애초에 겨냥한 고객층은 20대였지만 포켓 리빙 아파트 입주민의 평균 연령은 32세고 꾸준히 올라가는 중입니다. 아이를 낳지 않고, 앞으로도 가질 계획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죠.
이는 유럽의 많은 도시에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1946년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태어난 여성 가운데 아이를 낳지 않은 사람은 단 9%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40대 초반 독일 여성 가운데 아이를 낳은 적이 없는 사람은 22%에 달합니다. 함부르크시만 떼어놓고 보면 그 수치는 32%로 치솟고요.
유럽이 스스로 소멸의 길을 선택한 것일까요? 덴마크의 한 보수성향 저널리스트는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나약하고 불치의 병에 걸린 문화”가 보이는 증상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아이를 낳지 않는 현상은 인구 붕괴의 전조가 아니며, 심지어 새로운 현상도 아닙니다. 오히려 선진국들이 오랜 전통을 업데이트하는 중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독일과 이탈리아 같은 나라에서는 출산율이 낮고 아이를 갖지 않는 것이 흔한 일입니다. 반면 영국과 아일랜드는 유럽 기준 출산율이 높지만, 동시에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도 많죠. 한편 동유럽을 보면,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은 드물지만 출산율은 낮습니다. 여성들이 주로 아이를 하나만 낳는다는 뜻이죠. 이렇게 출산율과 아이를 갖지 않는 것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거의 없습니다.
오늘날 평생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이 많은 나라의 과거, 20세기 초반에는 그 수가 더 많았습니다. 오히려 다들 아이를 낳아댄 20세기 후반이 특수한 시기처럼 보일 지경이죠.
이는 사회적인 규범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산업화 전의 서유럽에서 남녀는 하녀나 도제 시절을 거치고 자기 가정을 꾸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출 때까지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결혼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경제적 실패의 증거로 여겨졌지만, 그 자체로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엠마』의 여주인공도 이렇게 말했죠.
“독신을 경멸하게 만드는 것은 가난이다.”
이와 같은 태도는 여전합니다. 독일 서부에서는 아이가 없는 사람이 느끼는 낙인이 미미한 수준입니다. 설명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구구절절 변명할 일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는 워킹맘에 대한 가혹한 시선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최근까지만 해도 아이를 탁아소에 맡기는 엄마는 “까마귀 엄마(Rabenmutter)”라는 멸칭으로 불렸으니까요. 그러니 일하는 게 좋은 여성은 자연스레 아이를 낳지 않는 삶을 택했습니다.
가장 명확한 예는 일본입니다. 일본 기업들이 아이를 가진 여성을 쫓아내지는 않지만, 모두가 예외 없이 가혹한 기업 문화에 시달리죠. 서로 눈치 보며 야근하는 분위기가 일상이니 그런 환경에서 회사를 다니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어떻게든 직장에 남으려는 여성은 차일피일 출산을 미루게 되죠. 일본에서도 1953년생 여성 가운데 아이가 없는 사람은 11%였지만 1970년대생 여성 사이에서는 그 수치가 27%에 달합니다.
아이를 갖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고 복잡하며 종종 중복됩니다. 일부는 아이를 평생 전혀 원하지 않습니다. 함께 아이를 갖고 싶은 짝을 찾지 못하는 사람도 있죠. 이미 아이가 있는 사람과 사랑에 빠져서 그걸로 만족하는 사람도, 건강 문제로 아이를 갖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수는 아이를 갖기를 ‘영원히 미루는’ 부류에 해당합니다. 공부가 끝나면, 안정적인 직업을 갖게 되면, 집을 사면 아이를 갖겠다면서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죠.
세계 어디든지 교육 수준이 높은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이 없는 비율이 가장 높은 집단은 직업과 관련 없는 분야에서 학위를 하는 여성들입니다. 스톡홀름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1950년대 후반에 태어난 스웨덴 여성 가운데 사회과학 학위를 한 여성의 33%가 아이를 낳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교사 가운데서는 그 비율이 10%, 조산사 가운데서는 6%로 떨어졌죠.
물론 아이를 원하는 성향의 여성이 초등학교 교사나 조산사가 될 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직업마다 다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차이는 결국 직업적 안정성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사학위를 가진 인류학자에 비해 자격증을 가진 교사가 어린 나이에 안정적인 직업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죠.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헤어날 수 없는 절망에 빠지는 사람도 있지만 많지 않습니다. 공산권이었던 동유럽에서 아이가 없는 40세 이상의 사람들은 아이가 있는 비슷한 처지의 동년배에 비해 약간 덜 행복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아이 없는 사람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과 관계가 있죠. 리버럴한 앵글로색슨 국가에서는 반대로 부모들보다 아이 없는 중년이 약간 더 행복하다는 것이 같은 연구에 의해 밝혀졌죠. 젊은 사람의 경우 부모들이 아이 없는 동년배에 비해 훨씬 불행하고요.
평일 저녁과 주말을 아이 축구 교실과 피아노 학원 일정으로 보내는 부모에게는 놀라운 사실이겠지만 아이 없는 사람도 모두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있습니다. 좋은 일에도 많은 시간을 쓰죠. 독일에서는 자선 재단의 42%가 아이 없는 사람들에 의해 설립됩니다. 아이 없는 사람들이 기부도 훨씬 많이 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죠. 실제로 이 사실을 파악한 미국 대학이 잠재적 기부자인 동문들의 자녀 유무에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남성에 비해 여성의 경우가 파악이 쉽습니다. 남성의 생식능력은 노화와 함께 떨어지지만 여성의 경우보다 예측이 어렵죠. 45세 여성에게 지금 아이가 없다면 앞으로도 아이가 없을 가능성이 높지만 남성의 경우는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아이를 낳아놓고도 모르는 남성도 있을 수 있고요.
두 가지는 분명합니다. 1. 아이 없는 남성도 많으며 2. 이들은 여성과 다르다는 점입니다. 어떤 남성은 여러 명의 파트너와 많은 아이를 갖지만, 아이를 갖지 않는 남성은 오히려 여성보다 많습니다. 1958년생 영국 남성 가운데 46세에 아이가 없는 남성은 22%로 여성 16%보다 많았습니다. 많은 나라에서 아이 없는 남성은 주로 노동자 계급에 속했습니다. 프랑스와 독일 등에서는 대학 학위 소지 여부나 직업 종류에 따라 아이 유무가 크게 갈립니다.
이는 남녀 간 아이를 갖지 않는 이유가 다르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아이를 갖지 않는 여성은 20-30대에 공부와 일에 우선순위를 두었을 가능성이 높은 반면 아이를 갖지 않은 남성은 여성의 눈에 좋은 남자친구, 좋은 남편감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이런 차이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독일 서부에서는 교육 수준이 낮은 여성 사이에서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핀란드에서는 이미 역전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교육 수준이 높은 여성이 낮은 여성에 비해 아이를 갖는 경우가 더 많아진 것입니다. 아마도 맞벌이가 흔해지면서 점점 더 많은 남성이 “여성들이 남성을 평가하던 기준”으로 여성 파트너를 고르게 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안정적인 직업을 갖지 못한 여성에게는 아이를 낳을 기회도 줄어들게 되는 것이죠.
앞으로 아이를 갖지 않는 사람이 늘어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그 숫자가 늘어나지만 스위스 같은 나라는 또 예외니까요. 한 가능성은 경제 상황에 따라 수치가 왔다 갔다 하는 시나리오입니다. 결혼하는 시점이 늦어지고 30대 중후반에야 출산을 하다 보니 경제적인 충격에도 취약합니다. 경기 침체나 주택 시장 위기에 사람들은 출산 계획을 미루게 되고 그러다 보면 안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가임기가 금방 지나죠.
미국의 상황도 비슷합니다. 아이 없는 45세 여성의 수는 21세기 초반경 꾸준히 줄어들고 있었지만, 2007년 금융 위기가 닥치자 아이 없는 30-35세 여성의 수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그때 임신을 미룬 여성들은 이후 자신의 희망과 상관없이 아이를 갖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끔찍한 일은 아닙니다. 아이를 원하는데도 갖지 못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고 특히 서구에서 아이가 없는 것은 불행과 거리가 멉니다. 누구나 당연히 아이를 낳던 20세기 중반, 그 특수한 시기가 지나가고 있으니까요.
원문: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