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시작하는 이유야 전 세계에서 실시간으로 이륙 대기 중인 비행기 좌석 수만큼 많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올 초에 떠난 ‘나의 첫 유럽 배낭여행 이유 및 목적’ 항목에는 ‘철저한 도피성’ 이 기입되어 있다.
한국의 대학교 4학년 생. 학기상 4학년 1학기를 마치고도 36학점이나 더 남아있는 기현상에, 이토록 준비되지 않은 내게 슬슬 다가오는 ‘취준생’ 이란 꼬리표는 그야말로 공포였다. 그래서 그 꼬리표가 내 꽁무니에 질척하니 들러붙기 전에 잠깐이라도 도망치기로 했다.
물론 당시에는 절대 ‘도망’ 따위의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비싼 돈 들여 여행 간다고 말하는 건 스스로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나약함을 인정하는 꼴이었다.
출발 2주 전이던가, 자극적인 색깔로 광고하던 겨울방학 특강 토익 강좌와 여행 중에 저울질하다가 덜컥 런던행 티켓을 끊었다. 이제라도 부랴부랴 스케줄을 짜며 여행으로 내가 얼마나 바뀔까에 대한 허황된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라도 해야 남들 취준 시작할 방학에 훌쩍 여행을 떠나는 내 모습을 회피가 아니라고 합리화할 수 있었으니까. 원래 사람은 여행을 통해 성장한다니까, 왠지 이 여행이 끝나면 나는 어마어마한 어른이 돼있다거나, 음, 그 정돈 아니어도, 불안하고 불행한 나의 20대의 고민들이 마법처럼 사라질 거 같은. 그러니 지금 이 여행은 도피라는 단어와 상관없는 미래에 대한 엄연한 투자일 거야!
사실 여행이란 게 그런 거 아닌가. 남들 여행기 읽어보면 일탈적이고, 극적이고, 그래서 인생이 뒤바뀐다거나, 게다가 난 글과 사진에 어느 정도 관심도 있기 때문에, 유럽에 발을 딛는 순간 글에 대한 영감이 쏟아져서, 술술 적어내면 책이 나와버릴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직업란에 여행 작가라고 쓸지도 모르고, 다음 여행 경비는 책 인세로 대는 무한 선순환이 시작될 수도 있고, 아니면 카메라만 들이대도 그림이 나오는 곳이니까, 필름 카메라 하나 들고 뛰 들어가서, 내가 사진 에세이집이라도 낸다거나, 응, 누가 알겠어.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물론 결론부터 적자면 유럽 여행을 다녀온 대부분이 그렇듯 내 삶에 그런 극적인 변화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여행 후 2016년이 슬슬 끝이 보이는 지금 난 여전히 학생, 이제는 5학년 1학기를 18학점으로 채우고 있는 객관적으로 꽤나 비참한 처지의 학생이다. 어른이란 내적 성숙과 관련된 단어는 아직도 나에게 먼 미래다. 감히 쉽게 봤던 글과 사진 또한 이번 여행으로 영 어려운 것으로 밝혀졌다. 그저 나의 한계를 한 번 더 인식하게 될 뿐이었달까.
글에 대해 얘기하자면, 여행의 주관적 감상과 객관적 경험을 하나의 글로 재단해내기가 엄청나게 어렵다는 것을 체감하고 속이 좀 많이 쓰린 상태다. 사진은? 첫 여행지였던 런던에서 아이폰을 제대로 소매치기당한 후로는 내가 찍은 사진은 단 한 장도 남은 게 없다.
그러나, 누군가 ‘유럽 여행 어땠어?’ 라 나에게 물을 때면 나는 언제나 ‘내 인생이 바뀌었어’라고 대답한다. 고작 3주라는 시간에 의해 인생이 바뀌다니, 다들 눈이 똥그래진다. 그러나 그들 기대에 못 미치게도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유럽 여행 이후 내가 변했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걱정 보부상마냥 한국에서 인생의 근심 걱정을 바리바리 싸가져 간 유럽은 자꾸 멍청한 일만 벌이는 내게 어쩐 일인지 한없이 너그러웠다. 런던 시장 한복판, 폰을 소매치기당하고 허공만 응시하던 나에게 런더너들은 다가와 폴리스 스테이션을 안내해주고, 지도 한 장 없는 나에게 하루 종일 펍 투어까지 시켜줬다. 까탈스럽다던 파리지앵들은 헤매는 나에게 먼저 서툰 영어로 길 안내를 도왔다. 폰 없는 나 대신 구글맵을 켜 길을 찾아주는 이가 있어 고마웠고, 그네들 카메라로 날 찍어서 사진들을 한국에 돌아와 백여 장 받았다. 바르셀로나 숙소에서는 수도가 고장 나 6일 동안 머리를 못 감는 참사가 발생했는데, 그 더러운 몰골로 모자를 뒤집어쓰고도 유럽에서 만난 친구와 좋다고 깔깔댔다. 한국에서 만약 내가 2주 동안 폰도 없는 채로 6일, 아니 이틀만 머리를 안 감는 일이 생겨도 난 남이 지적하기 전부터 스스로가 극도로 예민해졌을 거다. (상상도 못 하겠다)
이제껏 한국에서의 삶은, 굳이 헬조선이란 껄끄러운 단어를 입에 머금지 않더라도, 그냥 너무 좁았다. 나의 시야가. 매사에 알게 모르게 남들 눈치를 끊임없이 봤다. 4학년 2학기 안에 졸업을 해야 하는데, 아니면 스스로 잘못된 길에 놓였다 생각했고, 심지어 유럽여행조차도, 남들은 20대 초반에 가는 데 나만 ‘늦게 간다’ 생각했다. 고작 3주 여행을 선택하는 데도 남들과의 비교 선상에서 ‘늦다’라는 기준으로 괴로워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자기 속박이다. 어쨌든 원래 사람이 힘들면 허황된 기대에 괜히 목을 매듯, 질식 직전이었던 나는 그 속박이 다 눈 녹듯 사라지는 엄청난 변화를 간절히 바라며 유럽 여행길에 올랐다.
그랬던 내가 유럽에서 21일째 되던 날, 귀국행 비행기를 기다리다 떠올린 생각은 ‘변하지 않아도 괜찮다’였다.
마지막 여행지였던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새벽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공항 창문으로 보이는 바르셀로네타 해변에서 해가 오르더라. 예상치 못한 일출 풍경에 순간 훅-하고 상념들이 몰려들었다. 3주가 지났구나, 3주 전에 나는 어땠나, 그리고 지금 나는 여행 전의 기대처럼 무언가 변했나, 문득 나 자신을 되돌아보니 정말 우스울 정도로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공항에 홀로 앉아 비행기를 기다리는 꼬락서니는 오히려 첫날보다 좀 더 더러웠다. 머릿결은 유럽의 석회수 때문에 푸석해졌고, 피부관리도 똑바로 못해서 트러블도 나있었다. 너무 많이 걸어서 다리도 살짝 절었던 것 같고. 화장품도 다 떨어져서 거의 쌩얼이었다. 갑자기 즐거워 웃음이 났다.
미친 게 아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생각해보니 그렇더라. 고작 3주의 여행인데, 3주의 여행 이후로 내 삶의 외연이 드라마틱하게 바뀐다면, 그것이 오히려 여행 전 나의 삶에 대한 부정이었을 것이라는 생각. 3주 동안 부족해도 한참 모자란 배낭여행자로 지내며 주위 사람들이 내게 베푼 선심과 친절로 목숨을 연명한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면서 내가 조금은 불완전해도 주위 사람들과 함께라면 괜찮다는 것 너무 상투적인 표현인가, 지금껏 살아온 나도 나쁘지 않다, 나는 이대로 나여도 괜찮은가보다, 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여행 후로는 웬일인지 한국 거주하시는 20대 김모 양의 불안전한 일상이 그렇게 옥죄지 않게 됐다. 물론 지극히 현실적 스트레스들은 지금도 나를 끊임없이 툭툭 건들고 찌른다. 하지만 내 선택에 대해서 남들과 다른 점을 굳이 꼽아가며 바들바들 비틀거리는 게 많이 줄었다. 여행 내내 온전히 내 선택과 주위의 도움으로 여행길을 채웠던 기억이 쌓여, 내 의지의 선택에 대한 신뢰감이 약간 붙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만큼 내 내면적 욕구에 대한 인식도 분명해졌다. 예전 같으면 대학교 수업을 들어가지 않는 나는 일반적인 기준에 따라 그저 ‘의지박약’ 이었다. 하지만 내가 오늘 대학 수업을 들어가지 않은 이유는 그저 내가 대학 수업을 선택하지 않아서다, 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수업 대신 다른 식으로 날 발전시킬 수 있는 방식을 찾아낼 거다. 지금껏 그랬듯이!
그래서 오늘은 3, 4교시 대신 이 글을 적어 보았다. 쩝. 물론 학점을 받으면 후회하겠지.
원문: 김연수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