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여행을 간다고 하면 꼭 듣게 되는 소리가 있다. “왜?”라는 반문과 “외롭겠다”라는 걱정의 말. 그러나, 혼자 떠나는 여행의 매력을 아는 사람들은 도리어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 좋은 걸, 도대체 왜 안 가?
한 번도 느낀 적 없는 자유와 해방감
가족이나 애인, 친구가 있어도 우리는 기본적으로 혼자 살아간다. 하지만 일상에서 혼자라는 사실이 곧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느끼게 하지는 않는다. 늘 비슷한 패턴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여행은 다르다. 낯선 환경이 새로운 느낌과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심지어 혼자라면? 자유로움과 해방감은 최고조에 이른다. 일단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 모든 건 당신의 선택이다. 숙소 안에서 늦잠을 자든, 도심의 인파에 섞여 종일 사람 구경을 하든, 온몸이 까맣게 그을릴 때까지 바다에서 수영을 하든 말이다. 이를 깨닫고 나면, 엄청나게 행복해진다.
혼자 후쿠오카에 갔을 때, 시간이 남아서 무작정 버스를 타고 계획에 없던 오호리 공원에 들른 적이 있다. 저녁 무렵의 공원에는 벤치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는 노인과 쇼트 팬츠를 입고 트랙 위를 달리는 학생이 많았다. 잠깐 어슬렁거리며 그들의 일상을 엿본 것뿐인데도 갑자기 그 풍경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는 게 이상하리만치 좋았다. 잊지 못할 저녁이 됐다.
오롯한 순간, 또렷한 기억이 되다
아무리 편한 관계일지라도 함께 여행을 떠나면 동행인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당연한 배려이다. 한데, 배려하다 보니 놓치는 것이 그토록 많은 줄은 혼자 떠나본 뒤에야 깨달았다.
우선 여행의 과정부터 다르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여행의 A부터 Z까지 준비하고 실행하려면, 무엇이든 꼼꼼하게 살피고 정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나의 관여 없이 진행되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여행지에서는 순간순간, 깊이 몰입할 수 있다. 나무 한 그루를 봐도, 음식 하나를 먹어도 오롯하게 느낄 수 있다. 상대방이 만족하는지, 어디가 불편하지는 않은지 살피거나 묻지 않아도 된다. 그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곳에 온 사람처럼, 오감으로 느껴지는 모든 것을 내 안에 차곡차곡 담으면 된다.
첩첩산중에 위치한 구마모토 온천마을에 갔을 때도 그랬다. 단풍잎이 드리워진 노천탕에 혼자 몸을 뉘었을 때, 부드럽고 따뜻하게 몸을 감싸는 물의 촉감이란! 저렴한 대중탕이었는데, 평일이라 사람도 거의 없었다. 산 고양이 한 마리만 우아하고 잽싼 몸짓으로 내 앞을 지나갔을 뿐. 아직도 생생하다. 바닥에 깔려 있던 납작한 바위 하나까지도. 혼자이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낯선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따스한 온기
새로운 사람을 사귈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혼자 떠나면, 홀로 여행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행자들이 거쳐 가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게스트하우스는 물론이고 길에서도 사람을 만나고 사귈 기회가 적지 않다. 다른 환경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일회적일지라도 ‘리프레쉬’하는데 적잖은 도움이 된다.
굳이 누군가와 관계 맺지 않더라도 여행지에서 필요한 작은 도움을 주고받는 일은 다반사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는 작은 호의는 여행을 기분 좋게 만든다. 모두가 혼자이지만, 혼자이지 않고, 서로 도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쩐지 가슴이 따뜻해진다.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다. 좋아하는 것을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하고, 무엇을 가장 중시하는지 고민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되지는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의지만 있다면 사색할 시간은 충분하다. 한 시간에 한 대꼴로 오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해 지는 풍경을 보면서, 낯선 잠자리에서 뒤척이면서. 평소 할 수 없었던, 자신에 관한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가 보자.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일정을 짜 봤다. 그랬더니, 여름에는 무조건 바다 수영을 하게 됐다. 심지어 늦가을에도 서핑 캠프에 참가했고, 스쿠버다이빙에 도전했다. 나는 내가 물을 그토록 사랑한다는 사실을 혼자 떠난 여행에서 깨달았다.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신감
이렇게 홀로 떠난 여행의 경험이 쌓이면, ‘나는 어디든 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이 생긴다. 씩씩해진다. 이런 자신감은 숨 가쁜 일상에 치이고, 작은 일에 일희일비할 때마다 내면의 단단한 중심이 돼 준다.
세상은 넓고, 다양한 삶의 형태가 존재하며, 마음만 먹으면 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삶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다. 모든 좋은 여행이 그렇지만, 특히 혼자만의 여행은 당신의 마음을 건강하게 살찌운다.
마무리하며
사람에 따라 혼자 하는 여행이 좋을 수도 싫을 수도 있다. 여행에도 각자의 스타일이 있는 법이니까. 그렇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한 번쯤은 홀로 떠나보길 권한다. 같은 장소를, 같은 기간 여행해도 혼자 하는 여행은 둘 또는 여럿이서 하는 여행과는 전혀 다른 색채를 띨 것이다. 즐거운 순간만큼 고되고 당황스러울 때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그조차도 그리워질 것이다. 지금 내가 그러하듯.
2016년 6월, 갓 제대한 동생을 위해 썼던 글
원문: 가끔 쓰는 이다솜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