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매니저들을 만나 술을 먹다 보면 한결같이 생각하는 게, ‘무슨 주식 사야 되냐?’ 보다는 ‘매니저 일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액티브 매니저’ 과거 영광의 재현 보다는 앞으로 망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크다. 미리 말해두자면 나는 액티브 매니저들을 매우 존경하고, 최근 액티브의 추락은 매우 마음이 아프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하여도 주식에 투자한다는 것은 선택받은 몇몇 전문가의 영역이라 여겨졌다. 대박을 꿈꾸며 일단 지르기식 투자를 했던 부모님 세대들은 어김없이 설거지를 담당하기 일쑤였고, 자신의 실수를 인식한 후 칼을 갈기다는, ‘역시 주식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는 그릇된 가르침만 얻은 채 소위 안전한 은행 예·적금에 전 재산을 묶어 두었다. 그래, 우리 부모님 얘기다.
다른 모습도 있다. ‘역시 투자는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믿음에서 커진 시장이 바로 공모 펀드이다. 국내 환경이 미친듯한 고성장이었건, 과거 주식시장이 노다지였건, 내부자 정보로 수익을 냈건 말건, 어찌 됐건 본인들이 직접 투자해서 망하기만 하던 주식이 펀드에 투자하면 그래도 은행 이자보다 훨씬 높은 수익을 안겨다 주니 신통치 않은가! 이때부터 소위 ‘액티브 펀드’의 전성시대가 시작되었다.
이제는 시장이 효율적이어서 액티브가 패시브를 못 이기니 마니 하는 아카데믹하고 고리타분한 얘기는 사실 별 관심이 없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Regime Change’의 핵심은 소비자들이 똑똑해졌다는 것이다. 증권사 리서치도 몇 번만 구글링하면 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이며, 기업들의 실적도 실시간으로 무료로 받아보는 시대이다.
애널리스트들이 팟캐스트로 무료 과외까지 친절하게 해준다. 전문가라 불리던 펀드매니저들의 무기를 소위 개미투자자들도 모두 가지고 있기에, 굳이 그들에게 돈을 맡길 필요가 없다. 오히려 ‘내부 가이드라인, 투자 가능 종목 제한, 각종 법규, 리스크 한도’ 등 여러 제약에 묶인 매니저들보다 훨씬 유연하게 투자를 할 수 있다. 실제로 공모 펀드 자금은 매해 줄어들고 있지 않은가?
또한, 똑똑해진 투자자들은 ETF의 성장과 더불어 시장의 판을 바꾸고 있다. 일반 투자자가 굳이 국내 주식이 아닌 해외 지수, 환율, 원자재 등에 투자하려면 ETF를 통해 손쉽게 할 수 있다. 소위 ‘다이나믹 베타 플레이’가 가능해진 것이다.
펀드매니저에게 찾아가 ‘제 돈을 모두 드릴 테니, 돈 좀 잘 굴려주십시오’ 가 아닌, ‘공부는 내가 알아서 하고 투자도 알아서 할 테니, 투자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나 빨리빨리 내놓으시오’로 투자자들이 스마트해졌다. 매니저 혹은 운용사에게 자판기 마냥 패시브 상품(ETF)을 내놓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액티브 매니저는 사라질까? 글쎄다. ‘이렇게 손쉬운 로직으로 돈을 쉽게 버는데 뭐하러 매니저들에게 돈을 맡깁니까!’라는 글을 보면, ‘랩만 해도 수백억은 금방 버는데 뭐하러 머리 아프게 주식 따위를 합니까!’라고 도끼가 비웃겠지. 자기가 잘한다고 남들도 잘해야 한 다는 건 폭력이다. HTS나 MTS를 켤 시간도 없고 투자 공부 따위 할 시간도 없이 바쁜 사람도 있다. 그들은 어찌 됐건 투자의 아웃소싱이 필요하다.
그러나 공모 펀드 내에서 액티브 매니저의 자리는 확실히 줄어들 것이다. 시장에 있어 보면 정말 귀신같이 주식을 잘하는 매니저들이 존재하고, 그런 분들은 점점 헤지펀드처럼 수익 공유가 확실한 곳으로 점점 옮겨갈 것이다.
반면 나머지 시장은 소위 패시브, 퀀트 등의 역할이 확대될 것이다. 내가 퀀트 매니저라서가 아니라 액티브 매니저들도 동의하는 내용이다. 알파고 이후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로보어드바이저가 지금 시점에서는 분명 과도기이기도 하고, 대다수가 유행에 편승하는 마바라(뇌동 매매꾼)라고 생각은 들지만, 분명 대다수 시장을 장악할 요소라고는 느껴진다. 안정적으로 매해 6~8%만 벌어줘도 누가 투자를 마다하겠는가?
또한, ETF의 성장, 그리고 저성장 환경에서 자산 배분의 중요성이 커지는 만큼, 소위 ‘매크로 매니저’의 역할이 커질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로보어드바이저도 이거지만…) 원래 ‘펀드 매니저’의 공식 명칭은 ‘포트폴리오 매니저’ 가 아니던가.
예전에는 한 펀드 내에서 주식 혹은 채권만 죽어라 패면서 투자했다면, 앞으로는 더욱더 매크로한 관점에서 포트폴리오 투자를 할 것이다. A라는 국가의 시장 내에서 무슨 주식이 좋을까 죽어라 고생하는것 보다, A’, B’ 중 어떤 자산이 더 좋을지 판단하는 게 사실 더 쉽고 리스크도 낮으니까.
굳이 알주식, 알채권 보다 ETF만으로 펀드나 자금을 운용하는 EMP (ETF Managed Portfolio) 매니저의 역할도 더욱 커질 거라 본다. 혹은 매니저들의 메사끼를 불신하는 투자자들을 위해 매우 합리적이고 투명한 투자 로직을 제공해주는 ‘Rule Provider’의 역할도 커질 것이라 본다.
결국, 매크로를 엄청 잘 보는 ‘시장의 마법사’가 되거나, 코딩을 죽어라 해서 ‘퀀트의 마법사’가 되거나, 그나마 커질 시장은 이 두 가지가 아닐까 한다. 지금 시대에 ‘저는 졸업하고 피터 린치와 같은 훌륭한 액티브 매니저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하는 건… 글쎄다… 거듭 말하지만, 투자는 Return과 Probability의 게임 아닌가. 그냥 가지고 있는 돈 투자를 훌륭하게 하라고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