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배달의민족에서 주최한 ‘치믈리에 자격시험’이 화제가 된 바가 있다. 배달의민족은 ‘배민다움’이 정말 무엇인지 고객의 마음속에 착착 잘 쌓아 나가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한국에 있지 않은 탓에 마치 딴 나라 이야기 같이 들린다. 대신 영국에는 배달의민족과 살짝 비스무리한 스타트업이 있다. 바로 딜리버루(Deliveroo)이다.
하루 최소 한 번은 딜리버루 유니폼을 입은 라이더(Rider)를 볼 수 있다. 그만큼 영국에서는 배달 음식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업계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도서관에서 집에 오는 길에 딜리버루 라이더를 보았고 문득 우버 잇츠(Uber Eats), 저스트 잇(Just Eat), 그리고 최근에 알게 된 아마존 레스토랑(Amazon Restaurant)까지 점차 치열해지는 영국의 배달 시장 속에서 어떻게 우위를 가져가는지 궁금해졌다.
전직 투자은행 애널리스트의 스타트업 도전
창업자인 윌리엄 슈(William Shu)는 모건 스탠리와 헤지 펀드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다가 2013년 딜리버루를 창업했다. 처음에는 함께 하려는 라이더를 찾기가 어려워서 직접 하루 6시간씩 자전거를 타고 런던을 돌아다니면서 배달했다. 한 번은 자신이 헤지 펀드에 근무하던 시절 상사가 피자를 주문했다고. 당시 상황을 그리면 다음과 같다.
상사: (윌리엄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놀라며) 너 도대체 뭐 하고 사는데 이 모양이니?
월: 피자 배달하는데요? 잘 지내요. 다음 배달이 있어서 먼저 갈게요.
그렇게 어려운 시절을 이겨내고 지금은 12개국 84개 도시에 진출했으며 1만 3,000명의 직원과 2만 명의 라이더를 거느린 거대 기업으로 거듭났다. 2017년 7월 딜리버루의 기업가치는 약 15억 달러(약 1조 7,000억 원)로 평가받으며 유럽의 대표적인 스타트업 중 하나가 되었다.
단순한 비즈니스 모델
『스타트업 바이블』을 쓴 배기홍 스트롱벤처스 대표는 심플한 비즈니스 모델의 중요성을 언급한 적이 있다. 딜리버루의 비즈니스 모델은 매우 단순하다. 말 그대로 음식 배달 대행이다. 음식을 조리하는 식당과 그 음식을 먹고자 하는 소비자 사이의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주문 및 결제 대행을 하는 배달의민족 및 요기요와 다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바로고’라는 스타트업이 유사한 비즈니스 모델인 듯하다.
딜리버루는 이 단순한 비즈니스 모델에서 우위를 갖기 위해서 데이터를 활용한다. 즉 데이터를 통해 음식별로 배달시간을 최적화한다. 창업자가 직접 배달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음식의 퀄리티에 배달시간이 미치는 영향을 잘 아는 듯하다. 한국에 있을 때 짜장면을 주문했는데 배달시간이 오래 걸린 나머지 불어버린 짜장면을 받아본 경험이 종종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슈는 라이더가 식당에 도착하는 시간, 음식을 고객에게 배달하는 시간을 데이터에 기반 두고 최적화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 특정 고객이 A라는 음식을 B라는 레스토랑에서 주문했을 때 근처 라이더 중 ‘누구에게 음식 배달을 요청하는 것이 최적의 시간을 보장할 수 있을까’ 예측 분석하는 것이다.
이 시도는 작지만 고객의 만족도를 한층 높여주었고 딜리버루가 3년 만에 5,000명의 라이더를 거느린 기업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주었다.
고객의 경험을 디자인하는 마케팅
배달의민족만큼은 아니지만 딜리버루가 하는 마케팅도 꽤 재미있는 구석이 있다. 일반적으로 플랫폼 비즈니스는 진입장벽이 낮아서 경쟁이 치열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나 배달대행 서비스는 수수료로 얻는 수익이 너무 적다.
이런 상황에서 딜리버루는 고객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하면서 고객 스스로가 ‘배달음식=딜리버루’라는 형태로 브랜드를 인지하도록 유도했다. 그런 시도 중에 몇 가지를 소개한다.
1. 캥거루는 딜리버루입니다
캥거‘루’는 기업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딜리버‘루’의 메인 캐릭터다. 딜리버루 싱가폴 지사는 매주 금요일마다 직원들이 캥거루 옷으로 갈아입고 도시를 돌아다닌다. 그들은 각자 다른 길을 통해 돌아다니면서 사람들과 인사하고 전단과 함께 딜리버루의 로고가 크게 그려진 포스트잇, 펜, 노트를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가끔은 직원들끼리 얼마나 많이 전단을 뿌렸는지 경쟁하기도 한다. 싱가포르의 더운 날씨 특성상 1시간 정도만 진행하는데도 매주 규칙적이기에 그 시간을 통해 싱가포르의 고객들은 딜리버루가 어떤 브랜드인지 명확하게 인식한다. 심지어 포스트잇, 펜 등을 받기 위해 기다리기도 한다.
2. 런던 한가운데 정원을 만들다
2016년 6월 딜리버루는 런던의 혹스턴 스퀘어(Hoxton Square)에 정원을 만들고 고객들을 초청했다. 고객은 딜리버루가 만든 정원에서 주문한 음식들을 먹으며 잠깐이나마 나들이 온 듯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바깥에서 자연 풍경과 함께 음식을 먹기 점차 힘들어지는 대도시의 특성을 잘 공략한 마케팅이었다.
해당 행사를 진행하는 동안 딜리버루는 음료 및 주류 브랜드와 파트너십을 맺고 고객들에게 무료로 제공해주었다. 파트너 입장에도 이번 행사는 한창 분위기에 취해 있을 고객의 감성적인 부분을 공략하기 좋은 행사였다.
여전히 치열한 시장, 판을 넓히려는 딜리버루
이런 노력에도 시장의 판도가 한 번에 바뀌진 않는다. 본질적으로 판을 키우지 않는 이상 경쟁은 더욱더 치열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우버나 아마존 같은 곳이 기존 플랫폼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시장에 진입하는 상황에서 과거처럼 폭발적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파이낸셜 타임스가 선정한 주목할만한 1,000개 스타트업(2012-2015년 기준)에서는 딜리버루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딜리버루의 전략 중 주목할만한 것은 다음과 같다.
1. 이동식 부엌의 탄생, 루박스(RooBox)
지난 4월 딜리버루는 200개의 식당과 협력해서 10여 개 도시에 음식 조리 기능만을 위한 30여 개의 이동식 부엌 ‘루박스(RooBox)’를 오픈했다. 루박스는 기존 식당의 배달용 음식을 조리하기 위한 허브로 사용될 예정이며 배달 및 기타 모든 서비스는 딜리버루가 담당할 예정이다.
7월 시점으로 루박스는 160개까지 늘어났다. 슈는 이 부엌을 통해서 각 레스토랑이 더 많은 음식을 배달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며 연말까지 30여 개 도시에 지원을 확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 트립 어드바이저(Trip Adviser)와 협력
7월 12일 딜리버루는 트립 어드바이저와의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이제 고객은 트립어드바이저에 등록된 식당에 직접 방문할 필요 없이 딜리버루로 주문할 수 있다. 물론 딜리버루의 기존 식당 네트워크에 포함되어 있던 식당에 한해서만 가능하다. 이로써 딜리버루는 세계 최대 여행 사이트의 네트워크에 자사 비즈니스를 심어 넣었다.
결론
파이낸셜 타임즈에 따르면 전 세계 음식 배달 시장의 규모는 약 830억 유로(약 109조 원)에 달한다. 이 시장에서 딜리버루는 현재 1위를 달리는 기업이다. 단순한 비즈니스 모델의 한계로 차별화를 두기 어려운 시장이기에 언제 1위를 뺏길지 모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딜리버루는 치킨 게임 대신 나름의 독특한 방법으로 1위의 위치를 굳건히 지켜나가고 있다(딜리버루의 수수료는 업계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언제까지 지속할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더욱더 흥미진진한 스타트업의 모습을 그려 나가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원문: Re-conside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