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영향인지 여건의 영향인지 요즘 내 삶의 모토는 ‘애쓰지 않기’다. 그동안 무엇이 되기 위해, 무엇을 이루기 위해 무던히 애쓰고 종종거리며 살아왔다. 너무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서 휩쓸려 가지 않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이렇다 할 끼도 재능도 없었지만 이 바닥에서 10년 넘게 꾸역꾸역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열심’이었다. 저임금, 고노동, 무보장에 시달리는 프리랜서의 “乙 of 乙” 인생에서 유일한 무기였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잠재적 백수인 비정규 일용직 노동자는 일을 안 할 때면 아무것도 안 한다. 아니 손 하나 까딱할 힘이 없다. 일을 할 때면 골수 속 한 방울의 에너지까지 쪽쪽 뽑아 쓰기 때문에 늘 일이 마무리될 때면 번아웃 직전이다.
그럴 때 다시 에너지를 채우는 가장 쉬운 방법은 ‘여행’이었다. 투자 대비 만족도도 높고, 고민할 거리가 없다. 하기 싫은 거 투성이인 일상과 비교해 여행을 떠나면 하고 싶은 것만 골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돈을 벌어서 또 떠나야지”라는 마음을 갖게 해 준다. 그 다짐 때문에 여권 도장이 채 마르기도 전에 다음 여행 비용을 벌러 일터로 나가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좀 달랐다. 지난번 프로젝트가 마무리된 후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더 멀리, 더 다양하게 여행을 갔다. 늘 목말랐던 여행에 대한 갈증은 풀렸지만, 인생의 실마리는 풀리지 않았다. 인생의 권태기 혹은 뒤늦은 육춘기가 찾아온 것이다. 음식을 만들어 먹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단조로운 일상을 반복했다. 사람들도 거의 만나지 않고, 내 마음속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였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일을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 10년 하고도 몇 년이 훌쩍 지났다. 같이 시작했던 동기들은 하나둘 업계를 떠났고 결국 남은 사람은 10명 내외 정도? 강한 사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이 강한 거다. 남아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니 공통점이 보인다. 하나같이 독한 사람들이다.
일이 시작되면 모든 것에 일이 1순위인 사람. 일을 위해서라면 24시간 스탠바이인 사람. 새벽까지 떡이 되도록 술을 마셔도, 사무실로 돌아와 마무리 짓지 못한 업무를 마무리하는 사람. 누구를 제치고 앞서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버티기 위해 택한 방법이다. 자신에게 가혹하리만큼 혹독한 사람들이다. 조금씩 상황이나 강도가 다르긴 하겠지만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독하게 버텨왔다.”
이 한 마디로 십수 년간의 내 사회생활이 정리된다. 언젠가 한 TV 강연 프로그램의 강연자가 말했다. “대한민국은 죽도록 노력해서 평범해지는 사회”라고.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사는 난 죽도록 애써서 버텨야 겨우겨우 중간이 된 거다. 누구보다 앞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내 삶을 오롯이 유지하기 위해 애쓰며 아등바등 살았던 것이다.
지난 십수 년 동안 그렇게 애를 쓰고 살아서 그런지 애가 다 소진되었다. 더 쓸 애가 없다. 없는 애를 바닥까지 다 긁어 썼으니 그 애가 채워지기 전까지는 움직일 수가 없다. 그렇게 애쓰고 사느라 정작 애 쏟아야 할 나 자신을 내팽개쳐 두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조금’ 살아 보니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되는 놈은 되고 벌어질 일은 벌어진다.
잡으려고 하면 도망가는데 애쓰지 않고 할 일 하며 지내다 어느새 원하던 것이 가까이 와 있었다. 모래를 잡으려고 움켜쥘수록 스르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삶의 포커스를 남이 아닌 나에 맞춰야 할 때다. 누군가에게 멋지게 보이는 삶이 아닌 내가 원하는, 내가 만족하는 그런 삶.
그래서 애쓰지 않고 산다. 애쓰지 않는다는 건 무기력하다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다만 “무엇을 위해”라는 목적이 없을 뿐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 그동안 이룬 것들을 살펴보면 적지 않다. ‘하루에 10km 걷기’ ‘나쁜 탄수화물 줄이기’ ‘1일 1글 쓰기’ ‘일주일에 한 번은 엄마랑 데이트하기’ 등 나를 채우고 나를 다지는 시간을 꾸준히 가져왔다.
애쓰지 않고 살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 조급함이 사라졌다. 용암같이 끓던 마음속 ‘화’가 사라졌다. 늘 의식하던 남들의 눈빛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 않게 되었다.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었다. 소소한 즐거움을 찾게 되었다. 피부 트러블이 잦아들었다. 배변 활동이 원활해졌다. 살이 빠졌다. 알레르기가 잦아들었다. 편두통이 없어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단번에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작은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게 애쓰며 살지 않기로부터 시작된 나비효과다. 뭔가 만병통치약 복용 후기 또는 사이비 종교 간증 같은 느낌인데 실제로 내가 겪은 바다.
어깨에 힘 빡 주고 어디 나한테 덤벼 봐! 물고 뜯고 맛보고 즐겨 줄 테니… 같은 날 서고 전투적인 마음이 사라졌다는 게 가장 큰 변화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강요하는 사회에서 ‘애쓰지 않고 살기’는 어쩌면 더디고, 비합리적인 삶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 번쯤 속는 셈 치고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이제부터 애쓰지 말고 살아 볼까?”
원문: 호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