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나는 8개월간 중국에서 파견 근무(?)를 했다. 성인이 된 후 언제나 꿈을 꾸던 ‘외국에서 일하며 사는 로망’이 현실이 된 거다. 여행으로 잠시 머무르는 게 아니라 외국에서 사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막연히 상상만 했었는데, 우연치 않은 기회에 체류하게 된 거다. 내가 가게 된 곳은 중국이었다.
상상은 늘 현실에 못 미치는 법이다. 내가 머무르는 곳은 북경이나 상해 같은 대도시가 아닌 거대한 대륙 땅덩어리 한 귀퉁이 성(省)의 성도(우리나라로 치면 전라북도의 도청이 있는 전주 정도의 도시?)다. 외국인으로 사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중국어를 1도 못 하는 나는 통역 친구들이 없이는 외출도 쉽지 않았다. 퇴근을 하면 갈 곳이라고는 숙소인 호텔과 쇼핑몰뿐인 외로운 외국인 노동자였던 거다.
중국에 간지 근 석 달간은 하루의 휴무도 없이 일을 했다. 원래는 비자 때문에라도 한 달에 한 번은 한국에 들어가게 해주기로 약속했는데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어떤 용한 수를 썼는지 아니면 꽌시(關係, 중국 특유의 친분·인맥 문화를 의미)로 힘을 썼는지 불가능한 게 가능하게 되었다. 망할!!! 그렇게 외국인 노동자들은 일하는 기계가 되었다. 그래도 프로젝트의 특성상 초반에는 미친 듯이 달리고 후반에는 좀 여유가 있으니 그걸 위안 삼고 묵묵히 버텼다. (5개월째부터는 1달에 한 번씩 한국에 다녀올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체류 종료 한 달 반을 앞둔 시점이었다. 한 2주 전부터 입술이 붓기 시작했다. 새우를 먹어서 그런가 했다. 원래 갑각류 알레르기가 없긴 한데 컨디션에 따라 없던 알레르기도 생기고 스르륵 사라지기도 하니까 음식을 좀 가려 먹으면 괜찮겠지 싶었다. 게다가 여기서 약을 사서 먹기는 통 내키지가 않았다. 좀 참으면 한국에 잠깐 다녀오니까 한국에 가서 병원을 가자 마음을 먹고 참았다.
체류 종료 전 마지막으로 한국에 가는 날이 다가왔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짐만 집에 던져 놓고 바로 피부과 병원으로 직행했다. 내 증세를 들은 의사 선생님은 아무래도 음식 알레르기가 온 것 같다고 했다. 아직 한 달간 중국에 더 머물러야 했기 때문에 한 달치 약을 처방받아 중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한국에 있는 동안 약을 먹으며 지냈더니 잠잠해졌다. 역시 한국 사람에겐 한국 약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중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증세가 다시 악화됐다. 한국에서 가져간 약도 꼬박꼬박 잘 챙겨 먹었는데도 도무지 열도 내리지 않고, 얼굴은 두드러기가 더 올라왔다. 출근도 못하고 호텔 방에서 끙끙 앓기를 이틀째. 팀장님께 아무래도 안될 거 같다고 병원에 가야 할 거 같다고 말을 했다.
외노자들의 생활 전반을 담당하는 중국 직원분과 통역 친구가 나를 픽업해 근처의 병원으로 향했다. 통역 친구가 알아본 바 피부와 관련해 근처에 괜찮은 군인 병원이 있다고 했다. 군문화가 발달한 중국은 일반 병원보다 군인 병원이 더 시설이 좋고 신뢰를 한다고 했다. 뭐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니 현지인들이 이끄는 대로 병원에 갔다.
숙소에서 10분 거리의 우리나라로 치면 중대형 병원쯤 되는 곳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70년대 병원 풍경이 펼쳐진다. 쇠창살로 막힌 접수대, 하얀 간호사 모자를 쓴 간호사, 사방이 회색 시멘트 벽으로 이뤄진 삭막한 인테리어. 다시 한번이 곳이 공산주의 국가구나 느꼈다. 접수 창구에서 증상을 말하고 예치금을 넣은 카드를 구매한다. 구매와 동시에 진료 대기… 난 거의 2시간을 기다렸다. 열이 펄펄 끓는 환자가 의사를 만나기 까지 두시간이 걸린 거다.
여군 같은 포스의 여의사 선생님이 와서 이리저리 진료를 하더니 아무래도 알레르기 같다신다. 그리곤 알레르기 검사를 해서 정확한 원인을 알아봐야 할 거 같다고 한다. 여기에서 주사 바늘이 들어가는 게 도무지 내키지가 않았다. 난 피를 뽑는 거면 안 하고 싶다고 통역 친구에게 말했다. 그랬더니 피검사 말고 자신들이 개발한 신개념 알레르기 검사가 있다고 한다. 걱정반 기대반 검사실로 들어가니 알레르기 물질을 주입한 쇠막대기 같은 것을 손에 쥐고 전기 자극을 주면서 알레르기의 원인을 찾는 검사였다. 생체실험의 대상자가 된 기분이었다. 과연 이걸로 제대로 된 검사가 될까? 의심스러웠다.
검사를 한 지 30분 후 검사 결과가 나왔다. A4 용지 4장에 빼곡히 알레르기 유발 물질들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음식, 환경, 약 등등 앞 장에는 체크된 부분이 없었는데 검사지 후반부 체크된 항목들이 있었다. 그것들의 이름이 뭐냐고 통역친구에게 물으니 곰팡이, 먼지, 진드기 등등이란다. 아 제길!
의사 선생님과 함께 증세의 원인을 유추한 결과 생활환경의 문제라고 했다. 한국에 갔을 때 잦아들었는데 중국에 돌아오니 다시 재발하는 알레르기. 그래, 숙소의 문제다. 체류하고 있는 곳이 중국 지도에서 중남부 지방에 위치해 있으니 날씨가 덥고 습기도 많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호텔의 청소 상태가 양호하더라도 습기 때문에 곰팡이가 쉽게 올라오기도 한단다. 그런데 내가 느끼기에 내가 묵고 있는 호텔의 레벨상 그다지 꼼꼼하게 청소를 하지 않는다.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약해져 있는 상태에서 그런 호텔에서 묵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원인을 알았으니 이제 해결할 일만 남은 거다. 중국 스태프에게 호텔을 바꿔 줄 수 있는지 물어봤더니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며 한 발 물러 선다. 윗분들과 상의 후 알려주겠다고 했다. 병원을 나온 내 손에 들린 건 약은 양약과 중약(우리나라의 한의학처럼 중국 전통의학)을 섞어 담은 커다란 약봉지 한 뭉텅이. 한 달 치냐고 물어봤더니 3일치라고 했다.
이 대륙에서 내가 다시 돌아갈 곳이라고는 그 먼지와 곰팡이가 가득한 호텔뿐이다. 호텔을 옮기기 전까지 방이라도 바꿔 달라고 했더니 남은 방이 없으니 청소를 더 깨끗하게 해준다고 했다. 여러 감정들이 휩싸였다.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거지??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건 얼른 낫는 것뿐이었다. 밥보다 더 많은 약을 먹고, 빨리 이 지긋지긋한 먼지+곰팡이 천국 호텔을 떠날 날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날 밤, 시간이 지나도 열이 더 난다. 붓기는 가라앉지 않는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 「중국 병원 탐방기(記): 대학병원 응급실 편」으로 이어집니다.
원문: 호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