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홍상수의 영화들은 이야기적으로 매끄러워지고 형식적으로 안정화되고 있으며, 감정적으로 진해지고 있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서는 반성을,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서는 존경과 존중의 고백을,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는 자기 파괴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의 21번째 장편영화인 <그 후>는 사랑이라는 테마를 정면으로 대하며 믿음이라는 태도로 이를 대한다. 홍상수 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플래시백, 캐릭터로 등장하는 유부남 주인공의 아내 등의 요소는 이러한 태도와 변화를 반영한다. 출판사 사장 봉완(권해효)의 꼬여버린 하루는 투명하게 자기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인물들에 의해 홍상수의 태도를 대변한다.
첫 쇼트는 오프닝 크레딧이 등장하기도 전에 음악과 함께 시작된다. 새벽에 일어나 아내(조윤희)가 차려준 밥을 먹고 출근을 준비하는 그는, 아내와 대화하던 중 바람피우던 상대가 있다는 것을 들킨다. 회사에 출근한 봉완은 그 날 첫 출근한 아름(김민희)을 맞이한다. 중국집에서 함께 점심을 먹은 뒤 아내가 갑자기 회사로 찾아와 아름에게 “네가 그 년이지?”라면서 욕설을 퍼붓는다. 봉완이 도착하고 괴상한 3자 대면 끝에 아내는 집으로 돌아간다. 봉완은 저녁 자리에서 일을 그만두겠다는 아름을 달랜다. 그러던 중 봉완의 불륜 상대인 창숙(김새벽)이 찾아오고, 봉완은 다시 창숙과 함께하려 한다.
이전의 홍상수에서 볼 수 없었던 플래시백의 활용은 굉장히 새롭게 다가온다. 특히 영화의 쇼트 순서와 실제 촬영의 순서가 동일한 홍상수의 작업방식을 생각해보면, 그의 영화 속 플래시백은 영화의 시제를 어그러트린다. 이런 어그러짐은 영화의 전체의 이야기가 온전히 설명되지 못한 초반부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가령 화장실에서 나온 봉완이(첫 번째 쇼트) 아내가 차려준 밥을 먹다 불륜 사실을 들키고(두 번째 쇼트) 출근을 위해 아파트를 나선 뒤(세 번째 쇼트) 영화는 갑자기 다른 옷을 입은 술 취한 봉완과 그를 부축해주는 창숙을 보여주고(네 번째 쇼트) 지하주차장에서 애정을 나누는 둘을 보여준다(다섯 번째 쇼트). 그리고 다시 돌아와 출근을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는 봉완(여섯 번째 쇼트)가 등장한다.
출근하는 봉완의 머릿속에서 벌어진 플래시백으로 보는 것이 보통의 영화문법이겠지만, <그 후>를 보는 관객은 저 플래시백이 과거인지 출근 이후 봉완의 모습인지 단박에 이해할 수 없다. 극 중 시간이 밤인지 새벽인지 분간할 수 없는 흑백의 영상은 플래시백과 함께 영화의 시제를 어질러 놓는다. 지하철에서의 플래시백이 숏-리버스 숏을 통해 출근길의 봉완으로 돌아오는 쇼트, 아름이 출근한 모습을 보여준 이후 출판사에서 일하는 창숙을 보여주는 플래시백 역시 계속해서 시제를 어그러트린다.
물론 영화 속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은 하루 동안의 사건이다. 봉완은 새벽에 출근해 첫 출근한 아름을 맞이하고,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고, 아내가 회사에 찾아오고, 닭볶음탕을 저녁으로 먹고, 창숙과 재회한다. 그러나 영화의 쇼트 순서대로 진행되는 촬영은 배우들에게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연기하는 것으로 다가왔을 것이고, 영화 속 인물들의 몇몇 행동, 가령 봉완의 손을 잡는 아름 등은 그 속의 시제를 다시 한번 어그러트린다.
영화 속 인물들은 그 시간 속을 살아가는 투명한 인물들이고, 홍상수는 그 시간을 지나 남은 잔존물을 실존이라 부르려 한다. “만질 수 없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으세요”라고 봉완에게 물으면서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종교적 믿음을 고백하고 기도를 올리는 아름의 모습은 홍상수가 바라는 믿음 그 자체를 드러낸다.
과거-현재 그리고 그 후를 관통하는 감정의 잔존물이 중국집에서 아름과 봉완이 논하던 실존이고, 에필로그에서 봉완이 아름에게 준 소세키의 소설 『그 후』는 눈에 보이는 물질로 치환된 믿음과 경험의 잔존물이다.
봉완과 아름이 만나는 에필로그로 마무리되는 <그 후>는동명의 나쓰메 소세키 소설에서 제목을 따왔다. 책을 읽어보지 않아 여기에 덧붙일 코멘트는 없지만, 영화는 ‘그 후’라는 제목이 누구의, 어느 사건의, 어느 시점의 그 후인지 궁금해지게 만든다. 홍상수와 김민희가 함께 한 세 편의 겨울 영화 그 후일까, 봉완과 창숙의 작당모의 그 후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제목의 그 후가 어떤 시간을 말하는 것인지는 홍상수만이 알고 있겠지만,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진행시키는 <그 후>의 그 후는 영화를 만들고 관람한 모두에게 다른 시점으로 남는다. 홍상수는 그 시간을 뚫고 남은 것을 사랑이라고 부르려 한다.
원문: 동구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