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부동산 대책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부동산 ‘투기 열풍’을 잠재우고, 실수요자의 주거 안정을 목표로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번 대책은 투기세력을 잡기는커녕, 성실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젊은 실수요자들이 서울 시내에 내 집을 갖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결과만 낳게 될 것이 명백합니다.
이번 대책은 수도권의 주택 수급 현황을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보고서는 ‘서울과 수도권의 최근 주택 공급량은 예년을 웃도는 수준으로 공급여건은 안정적인 편’이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수도권 입주 물량이 ’17년 28.6만 호, ’18년 31.6만 호에 달하고, 서울 입주물량도 ’17년 7.5만 호, ’18년 7.4만 호로 아주 넉넉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숫자를 활용한 장난입니다. 지금 공급 부족의 핵심은 서울에 신축되는 아파트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다세대 빌라와 도생 오피스텔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서울 시내에는 현재 162만 호의 아파트가 있는데, 이 중에서 입주 10년이 되지 않은 아파트는 불과 30여만 호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2000년 이전에 지어서 입주 20년을 넘었거나 바라보는 아파트가 97만 호로 전체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에서, 앞으로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는 연간 3만 호를 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서울 시내의 새 아파트를 원하는 사람은 너무도 많은데, 이것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넓게 잡아 입주 10년 차까지로 보더라도 1등에서 30만 등까지의 제한된 소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뉴타운 사업도 이제는 끝나고, 새로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땅이 제한적인 상태에서 재건축하더라도 그다지 일반공급 물량은 나오지 않아 서울 시내의 공급을 늘리기가 어려운 상태입니다.
물론 경기도로 눈을 돌리면 49만 호의 아파트가 ’19년까지 공급되리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서울 시내의 아파트 수급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습니까?
아파트에 관한 대책 발표라면 당연히 아파트 시장의 수급여건을 놓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서두에서부터 전혀 보고서에 맞지 않는 숫자를 가져와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피스텔과 다가구 주택, 빌라 등의 공급이 아무리 늘어나더라도 그것이 서울 시내의 아파트를 원하는 수요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서울 전 지역이 투기과열지구나 투기지구로 지정되어 온갖 규제가 따라온다고 합니다. 핵심은, 이것이 실수요자의 시장 내 지위를 강화할 것인가, 아닌가입니다. 소위 말하는 ‘다주택 투기세력’이 시장에서 한 발 뺄 것인가, 아닐 것인가만 판단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세부터 나옵니다. 현재 6~38%인 기본세율에서 2주택자는 +10%p, 3주택 이상이 +20%p를 더 물린다고 합니다. 집을 사서 1억 원의 양도차익이 발생했다고 하면, 원래 1,700만 원대의 세금을 내던 것을 3주택자는 4,000만 원 가까이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기보유 특별공제 적용도 배제한다고 합니다. 이 말만 들으면 엄청난 효과가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 속을 들여다보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앞쪽에서는 고율의 세금을 물려 다주택자를 때려잡겠다는 듯이 써 두었지만, 조금만 내려가면 <등록 임대주택은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및 장기보유 특별공제 배제 대상에서 제외 등>이라고 소심한 한줄을 추가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주택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이번에 올린다는 양도세 중과세가 적용되지 않고 종합부동산세도 내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앞으로 5년간 그 집은 무조건 임대를 하여야만 합니다. 만약 등록 하기 싫으면, 내년 4월 안에 팔면 중과세를 적용하지 않습니다. 사실상 실제 ‘투기세력’을 이처럼 친절하게 배려해 주고 있습니다. 그나마 양도세란 어차피 번 돈에서 내는 것이니 다주택자로서는 선택할 수 있는 옵션도 많습니다.
오히려 실수요자만 양도세의 덫에 빠집니다. 1가구 1주택 양도세 면제조건을 기존의 2년 보유에서 2년 거주로 상향 조정하기 때문입니다. 다주택 투기꾼은 어차피 양도세를 무조건 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투기세력과는 아무 관련도 없고 해당 사항도 없는데 1주택자에게 엉뚱한 유탄만 튄 꼴입니다. 게다가 다주택자는 정부가 시키는 대로 임대등록을 하면 최소 5년은 가져가야 종합부동산세를 피하니, 앞으로 5년간 집을 팔 일이 없어져 매물이 급감하는 결과만 낳게 될 것입니다. 실수요자가 집을 살 수 있는 찬스 자체가 줄어들고 전세를 택할 수밖에 없어지는 상황을 만들게 됩니다.
집값의 몇 퍼센트까지 돈을 빌려줄 것인가를 정하는 LTV는 40%까지 강화됩니다. 주택 유형, 대출만기, 대출금액과 관계없이 서울 전역이 해당합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을 1건 이상 보유한 세대는 10%p 추가 강화되어 사실상 신규 대출이 막히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투기세력’을 잠재울 수 있는 카드인가요?
아파트 갭투자를 하는 경우라면 전세금이 앞순위로 잡히기 때문에 담보대출은 어차피 받을 수가 없습니다. 반전세를 끼고 담보대출을 받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은행과 이자 스프레드 싸움을 할 것이 아니라면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어차피 다주택자들은, 격차에 해당하는 금액을 자기자본으로 가지고 덤벼듭니다.
그러나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어떤가요? 대출을 끼더라도 집을 산다는 것이 만만치 않은 세대가 대부분입니다. 장기 상환계획을 가지고 대출을 내서 원리금을 갚아 나가는 것이 일반적인 풍경입니다.
1억 원을 3%의 이자로 30년 원리금 균등분할상환으로 빌린다고 했을 때, 이자가 월 25만 원, 원금이 17만 원 수준이니 2억 원을 빌린다고 하더라도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고, 3억 원을 빌리더라도 맞벌이 가정이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원금 상환은 사실상 저축으로 볼 수 있으며, 3억 원에 대한 월 75만 원의 이자는 실상 월세보다는 훨씬 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집값의 40%까지밖에는 대출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2억 원의 순자산을 가지고 5억 원짜리 집을 어떻게 한 번 사 볼까 고민하던 사람들은, 이제는 대출가능액이 줄어서 4억 원짜리 집을 살펴봐야 합니다. 그러나 서울에서 4억 원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이란 대단히 제한적입니다. 한순간에 경기도로 나가서 긴 통근시간을 감내하며 살거나, 아니면 서울 시내 전세를 알아봐야 할 처지가 된 것입니다.
고작 실수요자를 배려한답시고 내놓은 예외조항이란 부부합산 연 소득 6000만 원 이하인 무주택자가 5억 이하 집을 살 때 LTV를 고작 10% 더 주겠다는 것인데, 큰 의미도 없어 보이지만 맞벌이 가정이라면 이미 연소득 규정에서 다 걸려 버립니다. 오히려 연 소득이 적을수록 대출을 많이 준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모순적이기도 합니다.
적용 시점도 문제입니다. 이미 은행 창구에서 어제부터 LTV 40%를 일괄 적용해 버리면서, 60%의 대출을 생각하고 매매계약서를 이미 쓴 실수요자들이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9월, 10월의 잔금 일을 앞두고 대출이 생각한 만큼 되지 않으니 자칫하면 계약금을 떼일 상황에 부닥쳐서 신용대출을 알아보고 있는 마당입니다.
내년에 입주를 생각하고 전세를 끼고 미리 사 놓은 집이 있는데 대출규정이 바뀌어 이제는 입주하지 못하게 된 사람도 많습니다. 이들이 과연 투기세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다주택자를 잡겠답시고 이것저것 ‘강력 규제’를 내놓았지만, 실제로는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만 어렵게 만들어 놓고 있지 않습니까?
신규 분양도 마찬가지입니다.
중도금 대출 보증을 세대당 통합 2건으로 제한하고, 가점제 비중을 100%까지 올립니다. 1순위 자격도 2년으로 상향합니다. 청약 포기세대가 나오면 그 예비물량도 가점제로 우선 배분한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전문 투기꾼들이 청약하는 것이 더 어려워질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실이 어떻습니까? 지난달, 5억에 분양한 가점제 100%에 등기 전 전매가 불가능한 지축 푸르지오는 서울도 아닌데도 만 몇 천명의 수요자가 몰렸습니다.
이제는 적어도 가점 55점 이상을 장착하지 않으면 당첨 자체를 노려볼 수도 없습니다. 하물며 서울 내 분양이라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집니다. 최소한 아이가 셋 있고, 무주택 15년을 넘어섰고, 소득은 낮아야 청약 당첨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런데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내년 1월에 시행하면서 조합원거래도 막아놓으면, 재건축을 생각하는 30년을 바라보는 그 많은 아파트의 재정비에 당장 태클이 걸리게 되고, 그나마 얼마 나오지도 않는 일반분양 숫자는 더 줄어들게 됩니다.
뉴타운 사업도 이제는 사실상 끝나서 서울에는 아파트 공급이 늘어날 방법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냥 서로 뺨 때리면서 누가 누가 점수가 높고 그동안 무주택을 오래 했고 자녀가 많고 가난했는지를 겨루라는 것이 적당한가요?
오히려 이제 사회생활을 한창 하면서 내 집 마련을 꿈꾸는 30대 맞벌이 무자녀 무주택자는, 아예 서울권 청약에는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전세만 7번 옮겨 다니며 15년을 세입자의 마음으로 사신 장관님의 지난 기억들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서울의 집 문제를 투기의 프레임만으로 가져가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좋은 집이 부족하다는 질적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실수요자는 그런 집에 살고 싶어 합니다. 생각보다 소득도 높지만 맞벌이인 가정이 흔합니다. 1년에 벌고 있는 돈 자체도 많고 저금리 10년이 시장에 쌓아놓은 유동자금 자체가 넘쳐흘러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서울 부동산 가격은 이제야 10년 전 고점을 살짝 넘어선 수준이고요.
그리고 그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사람들이 ‘앞으로 세상이 더 나아질 것이다’ 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몇년간을 살아오면서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반 정도는 접고 버텨왔습니다. 도무지 더 나아질 구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 정권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기대가 어떤가요?
임금도 오르고, 공정한 시장질서가 잡힐 것이며, 그동안 잘못되었던 관행들이 바로잡히는 시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압도적인 국정지지율로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이제는 사람들이 몇 억의 대출을 내면서도 우리 경제가 망하지 않을 것이고, 내 직장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며, 그래서 안정적인 캐시플로우로 이 주택담보대출을 내가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올라붙는 가격에도 집을 사겠다는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수요자들의 희망과 꿈을 꺾지 않았으면 합니다. 마치 지금의 분위기는, 집을 사는 것이 대단히 잘못된 행위인것처럼 죄악시되고 있습니다. 집을 사면 다 투기이고, 가계대출 폭탄이라고 장관부터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중산층으로 편입되어 보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벌어서 모으고 내집마련을 하는 것이 언제부터 잘못된 일이었습니까?
젊은 사람들이 성실히 일하고 내집마련을 꿈꾸는 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당연하고 건전한 경제적 활동입니다. 지금의 ‘부동산 대책’은, 투기세력을 잡겠다는 미명하에 실제로는 실수요자만 희생시키고 있습니다. 가장 서울에 집이 필요한 이들이, 엉뚱하게도 떠밀려서 경기도로 이사를 가거나 아니면 주택임대사업자가 전세를 놓은 서울시내 집에 세입자로 거주하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30대는, 사회 진입이 늦어서 현재 축적한 자산이 부족한 죄 하나밖에는 없습니다. 월급을 모아서 목돈을 만들어 놓으면 서울 집값은 더 멀리 달아나 있을 것이며, 그때는 지금보다 더 많은 대출을 내더라도 집값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악순환에 빠지게 생겼습니다.
정작 잡겠다고 한 다주택자는 임대등록만 하면 모든 부담을 다 덜어주고, 대출 규제로 실수요자들이 집을 살 수 없도록 제한해서 세입자도 안정적으로 보장해 주며, 실질적으로는 차명의 무이자부 대출인 전세자금대출이 ‘투기세력’의 집을 지탱하게 하도록 하는 구조 가 되어 버렸습니다.
30대 월급쟁이로서 제발 부탁입니다. 우리도 서울에 살고 싶습니다. 내 집을 갖고, 미래를 설계해 나가고 싶습니다. 투기세력을 잡겠다는 부동산 대책이 실수요자를 덮쳐오는 지금, 이것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대책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원문: 구피생이와 부동산 공부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