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상반기에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근교에 있는 ‘버클리’라는 도시에서 방문학생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나는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 버클리의 1월~6월을 잊지 못한다. 잠시 머물며 공부하던 UC버클리, 피어 39, AT&T 파크, 유니온 스퀘어, 소살리토, 금문교, 롬바르드 스트리트… 아직도 도시의 곳곳이 눈에 선하다. 너무나도 맑은 태양과 더운듯 쾌청한 날씨가 때로는 그립다.
하지만 Bay Area라고 불리우는 샌프란시스코만 주변의 항구 지대는 오클랜드의 상종가 범죄율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상당히 위험하고도 음침한 그늘을 품고 있다. 비단 샌프란시스코만의 문제는 아니다. ‘메트로폴리스’라고 불리우는 거대 도시에는 산업지대 주변이 우범지대/슬럼을 형성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외관/내부 기능 모두에서 노후화가 진행되는 산업 창고들은 애물단지처럼 취급을 받는 경우가 있다.
창고의 기능이란? 당연히 물건을 적재하는 장소다. 나와 같이 평범한 지방 거점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20대에게는 사진 속에서 볼 수 있는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규모의 창고조차도 상당히 거대한 스케일로 다가온다. 물론 울산과 같은 도시에 살았던 사람에게는 “에이, 이 정도 창고야 널려있지!”라는 생각이 당연할지도 모르겠지만 물건이 차있지 않은 경우에는 그 텅 빈 느낌이 나에게 상당히 생경했다.
또한 창고는 산업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활용된다. 그러므로 창고가 사용되는 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면 창고 역시도 물건으로 가득차서 제 기능을 양껏 수행하게 된다. 반면 창고를 사용하는 산업이 쇠퇴하고 있거나 사양화가 된다면, 창고는 다른 용도를 찾아야 하지만 노후화가 겹쳐지면서 버려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의 국제 무역 활성화와 맥을 같이 해온 태평양 연안의 대도시다. 항구도시로써 100년이 넘는 기간을 꾸준하게 성장하고 유지되어 온 도시이기에 항구, 물류 그리고 창고는 샌프란시스코와 항상 함께 숨을 쉰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백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많은 산업들이 번성하고 시들어갔으며 창고 역시도 그에 따른 영향을 상당히 크게 받았을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바다 인근을 가득 채우고 있는 창고들은 언제나 수명이 다한 이후의 삶을 고민해야만 했다. ‘철거’가 정답일까? 샌프란시스코가 찾은 정답은 ‘창고’라는 공간의 용도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는 것에서 출발했다.
첫번째 사진에서 우리는 근사한 집을 볼 수 있다. 그 다음 사진은 샌프란시스코의 ‘옥토버페스트’다. 공통점은, 이미 짐작했을지 모르겠지만 ‘창고’를 새로운 용도로 활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버려진 창고들은 공간에 대한 외형적인 리모델링 또는 내부에 채워지는 콘텐츠의 차별화를 통해서 전혀 색다른 느낌을 주는 공간으로 그 생명력을 되찾고 있다.
하나의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또는 감각적인 클럽으로 변신한 다양한 창고들의 모습은 정말 놀라웠다. 과거 창고의 흔적을 그대로 살린 레스토랑과 기본적인 건물의 골격만을 제외하고 실내를 완전히 새롭게 뜯어고친 샌프란시스코 Supperclub의 모습은 그냥 지나치기 쉬운 창고 건물 형태의 ‘큰’ 장점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창고는 일반적으로 물건의 크기와 양에 구애받지 않기 위해서 공간에 ‘여백’을 배치한다. 즉, 어떤 물건이라도 실내에 둘 수 있도록 기본적인 건물의 골격을 제외하고는 최소한의 공간적인 구분을 유지한다. 또한 2층~3층 정도의 높이임에도 층을 구분하지 않았기에 답답하다는 느낌보다는 ‘탁 트인’ 느낌을 전한다.
이는 버려진 창고들이 새롭게 태어날 때 보다 다양한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물건을 보관한다’는 기능에 충실하도록 심플하게 지어진 창고들이기 때문에 새로운 용도를 위해서 고쳐지는 경우에도 기존의 건물 형태를 자연스럽게 활용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또한 문화콘텐츠 행사를 진행하는 경우 많은 인원들을 수용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행사 진행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시야가 트인’ 공간이 자연스럽게 제공되는 효과를 노려볼 수도 있다.
끝으로 이렇게 창고가 새롭게 활용되는 것은 도시 문제의 해결이라는 측면에서도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잊혀진 창고들은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흉물스럽게 방치되거나 도시 범죄의 공간적 배경이 되기도 한다. 또한 철거를 위해서 투자되는 비용 역시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위와 같이 새로운 용도로 창고들이 자연스럽게 활용되면서 사회적인 비용이 절감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성수동 ‘대림창고’는 서울 도심의 공간재생과 관련하여 모범적인 사례이기에 너무도 반가웠다. 성수동은 본래 인쇄업 관련 공장, 섬유회사 물류 창고 등이 즐비하여 도심 속 산업지대로써 기능했다. 하지만 제조 관련 회사들이 서울 밖으로 이전을 하면서 본래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마을의 운영이 점점 미약해지게 되었고, 샌프란시스코와 비슷하게 사용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만 활용되는 창고들이 다량 발생하게 되었다.
성수동 대림창고 역시도 이러한 창고 중 하나였는데 한 공연기획사에서 건물 외관을 그대로 유지한채 패션 관련 이벤트와 다채로운 공연 및 문화이벤트 장소로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수제화 거리로 새롭게 떠오르던 성수동에 ‘문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중심지로 자리를 잡았다.
20세기는 무언가를 ‘새롭게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도시 계획이 이뤄졌다면, 21세기의 화두는 ‘있는 요소를 새롭게 활용’하는 것이 중심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이런 관점에서 문화라는 옷을 입고 새롭게 변신하고 있는 창고들은 자연스레 눈길이 간다. 물건 적재의 목적을 위해서 여유 공간이 많도록 지어진 창고와 도시문화콘텐츠의 찹쌀떡 궁합을 주목해보자.
원문: URBANPOLY / 필자: 강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