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까지만 해도 소위 맛집을 찾는 키워드가 ‘오빠랑’ ‘무슨 미식회’ 정도였다면 요즘은 얇아진 주머니 사정을 반영이라도 하듯 ‘가성비’ ‘착한 가격’이 장악했다. 싸면서 푸짐한 음식을 내는 식당이 많아지면 결국 손님도 좋고 주인도 장사가 잘되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아닌가도 싶지만, 업계에 발가락을 살짝 담그고 있는 위치에서 보고 있노라니 ‘착한 가격’과 ‘가성비’라는 단어가 심히 불편하게 다가오지 않을 수 없다.
‘착한 가격’이라는 말을 살펴보자. 우선 가격이 착하다는 말부터 어불성설이다. 가격은 높고 낮음이 있지 ‘착하고 나쁜’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 잣대로 구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관용적 표현으로 ‘착하다’는 말을 쓰고 가격 대비 성능, 즉 가성비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니 ‘음식의 질이나 구성에 비해 가격이 비싸지 않다’ 정도로 정의하겠다.
어떤 음식을 놓고 저렴하다고 감탄하기에 앞서 잠시 생각해보자. 음식의 가격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여러 요인이 있지만 단순화시켜본다면 음식의 가격엔 재료비+인건비+임대료+유지관리비 등이 반영돼 있다. 여기서 임대료와 유지관리비는 변하지 않은 고정비용이다. 음식의 가격 즉, 원가를 낮추기 위해서는 결국 두 가지를 건드릴 수밖에 없다. 바로 재료비와 인건비다.
재료비를 낮추기 위해선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품질이 좋지 않은 재료를 쓰거나 원래 쓰던 양보다 재료를 덜 쓰면 된다. 시간과 비용을 아끼기 위해 시판 제품을 쓰는 방법도 있다. 물론 시판 제품 중에도 직접 만든 것처럼 품질 좋은 제품이 있지만 좋은 건 역시 비싸다. 재료비를 아껴야 하니 무턱대고 좋은 것만 찾을 순 없는 노릇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음식의 맛과 품질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재료를 아껴 쓰고 질 낮은 재료를 쓰면 자연스레 맛에 빈틈이 생긴다. 대개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화학조미료 내지는 설탕과 같은 감미료의 힘을 빌린다. 어딜 가든 음식이 비슷한 맛을 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화학조미료나 설탕이 몸에 좋지 않으니 나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이들에게 죄가 있다면 맛의 다양성을 심각하게 훼손시킨다는 데 있다. 모든 국물 요리에서 라면 수프 맛이 난다고 상상해보자.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맛에 대해서는 타협하고 싶지 않다면 다른 방법이 있다. 바로 인건비를 낮추는 것이다. 직원을 두고 있는 업장이라면 직원들에게 최저시급, 최저의 복지만 제공하면 해결된다. 직원이 없는 1인 업장이라면 주인이 일을 더 하고 이익을 덜 가져가면 된다. 참 쉽다.
이것은 매우 간단한 방법이지만 최악의 방법이다. 노동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는 것을 두고 쓰는 단어가 있다. 바로 ‘착취’다. 착취는 타인을 향하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향하기도 한다. 음식의 맛과 재료의 질이 훌륭한데 가격이 저렴하면 괜히 불편해지고 걱정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음식 가격이 착하다는 것은 곧 사장이, 직원들이 제대로 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인건비를 절감하는 과정에서 노동의 소외, 착취가 이루어진다. 사실 이 문제는 식당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정당한 대가를 받고 정당하게 이루어진 노동이야말로 시장경제의 기본이지만 많은 비극은 이것이 지켜지지 않아 생긴다.
그래도 ‘박리다매‘라는 말이 있지 않느냐, 싸서 많이 팔리면 좋은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박리다매는 대량생산이 가능한 공산품에나 어울리지 온전히 사람의 노동력을 쏟아부어 이뤄지는 요식업에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박리다매형 식당은 기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음식을 싸고 푸짐하게 제공해 최소한의 마진을 극대화시키거나 주류 판매를 통해 이윤을 얻는다.
문제는 이런 구조의 박리다매형 식당들이 주변 요식업 생태계를 교란시킨다는 점이다. 소비자들은 싸고 많이 주는 곳이 있으면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마련이다. 박리다매형 식당은 손님을 흡입하면서 동시에 주변 동종업의 음식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정상적으로 영업하는 식당들이 가격경쟁력에서 밀리게 되면서 일대에 합리적이지 못한 가격이 형성된다.
음식 가격이 낮아지면 소비자가 이익을 볼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운영이 힘들어지면 서비스 내지는 음식의 질이 현저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궁극적으로 피해를 보는 건 소비자다. 어딜 가나 질 낮은 원두를 쓰는 저가 카페에 둘러싸여 있는 작금의 현실을 비추어보면 자명한 일이다.
합리적인 가격대라는 말도 마케팅 용어로 자주 쓰인다. 이는 소비자와 생산자의 이해가 서로 일치했을 때를 뜻하는 것이다. 합리적인 가격이라 함은 음식에 정당한 가치가 반영돼 있고 소비자들이 그것을 이용하는데 응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방적으로 소비자들이 느끼기에 저렴하다고 해서 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착한 가격의 이면에는 전혀 착하지 않은 사정이 있다. 가성비 좋은 착한 가격의 음식은 결국 재료의 질과 맛에 대한 희생 그리고 누군가의 노동력 착취 위에 쌓아 올려진 것이다. 식당들이 왜 그럴 수밖에 없는가를 한번 더 생각해보자면 그 이유는 소비자에게 있다. 소비자들이 보다 싼 음식을 원하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재화로 최대한의 만족을 얻는 것이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소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 만족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 기반 두는 것일지라도 그것을 누리고 싶은지 묻고 싶다. 오늘도 ‘가성비 좋은’ ‘착한 가격’의 식당을 검색하는 당신에게 말이다.
원문: 장준우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