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의 시대다. 여전히 경기는 어렵고 청년 실업률은 IMF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한 번뿐인 인생, 후회 없이 살자”는 달콤한 외침은 대한민국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욜로의 대표적인 콘텐츠는 여행이다. 미디어를 통해 만나는 세상에서는 모두 어딘가를 여행 중이거나 여행을 떠나라고 부추긴다. 여행은 말할 것도 없이 근사한 일이다. 새롭고 넓은 세상을 경험하게 하고, 이를 계기로 자신과 세계를 돌아보게 만든다. 누구든 떠나보면 여행 예찬론자가 된다.
그러나 여행은 이벤트다. 여행이 끝나도 삶은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여행지에서 돌아와 카드값을 치러야 하고 월세를 내야 한다. 여행이 욜로를 실현하는 하나의 방법일 수는 있어도, 전부일 수 없는 이유다. 여행을 업으로 삼거나 수시로 떠날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소수다.
대부분은 기껏해야 몇 달에 한 번, 몇 년에 한 번 여행을 떠난다. 그조차도 어려운 사람이 수두룩하다. 가끔 생각한다. 모든 것을 쏟아 여행을 다녀온 이들은, 정반대로 여행을 갈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여행에서 돌아오면 다음 여행을 준비하며 일상을 버틴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공감한다. 그렇지만 때때로 ‘그 버티는 시간’을 생각하면 서글퍼진다. 1년에 며칠, 길면 몇 주뿐인 시간을 위해 수많은 나날을 마지못해 견딘다는 것은 비극이다. 이런 삶이 정말 후회 없는, 행복한 삶일까?
최근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는 욜로에는 문제가 있다. 소비를 대전제이자 필수조건인 것처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욜로를 실천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용기다. 미래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기만 하던 기성세대와 달리 오늘의 나를 위해 살겠다는 결단력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기에 실현 과정에서 돈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소비가 핵심은 아니다. 이제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돈이 적게 드는, 여행지가 아니라 일상에서 실현 가능한 욜로에 관해 고민해야 한다.
먼저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사람들을 무한 경쟁 체제로 내몰고 지칠 때는 무조건 떠나라고 부추길 것이 아니라, 떠나지 않아도 살만한 일상을 만들어야 한다. 대표적인 예로 노동환경 개선을 꼽을 수 있다. 일과 삶의 균형이 깨진 상태에서 욜로를 찾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비록 더딜지라도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사회가 바뀔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 개인은 일상 속에서 최소한의 소비로 행복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누군가는 여러 사람과 함께 달릴 때, 누군가는 책에서 마음에 와닿는 한 줄 글귀를 만날 때 삶이 주는 기쁨의 정수를 느낀다. 이런 즐거움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도전해야 한다.
탐색이 끝난 뒤에는 연마의 시간도 필요하다. 달리면 달릴수록, 읽으면 읽을수록 달리기와 독서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의 폭과 깊이는 달라진다. 지속적인 만족감으로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일 대부분이 그렇다.
욜로를 외치며 고민 없이 여행을 떠나고 SNS에 인증샷을 올리는 이들을 보며 오히려 스트레스와 박탈감이 커졌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자신을 위해서라도 이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욜로는 돈을 쓰고 남에게 과시하는 것이 아니다. 욜로는 내면의 끝까지 들어가 보는 것,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야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인지 깨닫는 것이다. 자신의 바람과 현실적인 상황 두 가지를 모두 고려해 실행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사람마다 실천 방법도 형태도 다를 수밖에 없다.
겉으로만 그럴싸해 보이는 욜로 라이프를 위해 이 순간에도 흘러가고 있는 일상을 등한시하지 말자. 남과 비교하며 속상해하지 말자. 그것들은 적어도 욜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원문: 가끔 쓰는 이다솜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