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다. 모듈러폰을 두고 하는 이야기이다. 이 시점에 모듈러폰이라는 존재는 굉장히 갑작스럽고 확실히 뜬금포다. 페이스북도 ‘모듈러 디바이스’를 생산하는 부분에 의욕이 있다는 것은 매우 오래된 사실이다.
몇 가지 글에서 말했다시피 이미 그들은 HTC와 함께 HTC가 매우 승승장구하던 시절부터 차차 같은 콘셉트의 휴대폰을 만들곤 했으며 이후에도 완제품 휴대폰을 생산하려고 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기능의 범주는 매우 국소적이고 부분적이지만 페북의 큰 서비스 안에서 동작하는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단의 소프트웨어는 최근 들어 페북 메신저와 같이 아예 독립적인 수준으로 동작하며 널리 사용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처럼 소프트웨어적으로 지배력을 가지는 플레이어가 다음 수순으로 하드웨어 부분을 노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순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하드웨어 정복의 단계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순순히 손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소프트웨어 회사의 하드웨어 정복 도전 사례를 살펴보면 페이스북이 왜 어려움을 겪는지 알 수 있다.
아직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서피스 생산과 구글의 넥서스폰, 픽셀 제품 등을 통해서 소프트웨어 회사의 하드웨어 정복은 매우 단계적으로 이루어져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드는 키보드나 마우스 등의 제품은 제외하자). 하드웨어 생산이란 하드웨어만의 독자적인 설계나 생산 공정상의 품질, 특히 제품의 마감 품질을 비롯해 수익으로 직접 연결될 생산 수율을 동반하는 부분이다.
당연히 이미 만들어진 하드웨어 장비 속에서 새로운 가상의 제품을 만들어내온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강점을 가지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소프트웨어로 시작한 많은 회사는 야욕을 뒤로하고 OEM이나 ODM 같은 위탁의 형태로 자신의 몸을 가린 채 간접적으로 하드웨어 산업에 진출해왔다. 일단 발을 디딘 채 조금씩 더 전진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부분은 하드웨어 회사가 소프트웨어 기술 산업에 진출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제 10년이 되어가는 이야기이지만 지도회사였던 나브텍을 인수했던 노키아나 콘텐츠 유통 앱이나 디바이스 전용 소프트웨어를 만들며 소프트웨어 틈새시장을 찾아왔던 다양한 단말 제조사가 그러했다.
한편 이런 시도는 삼성전자의 삼성페이와 같이 나름대로 결실을 보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치열한 시도로만 그친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이제는 겨우 픽셀 등을 통해 하드웨어 영역에서도 가능성을 엿보는 구글조차 실패한 것이 바로 모듈러폰이다.
모듈러폰이란?
이 부분에서 모듈러라는 부분을 정의할 필요가 있다. 과연 우리가 모듈러라는 것을 탈착이 가능한 부품이라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로부터 말이다. 만약 모듈러가 그런 의미라면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PC는 모두 모듈러의 형태로 보아야겠지만 아무도 PC를 모듈러 기기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건 단지 부품이기 때문이다.
조립·탈착 부분을 정확히 정의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탈착은 케이스의 탈부착 없이, 모듈을 끼운 이후에 별도의 인스톨레이션(Installation) 작업 없이, 전원 공급 등 기타 디바이스의 상태가 모듈의 탈부착과 무관하게 유지되면서 사용 가능해야 모듈이 아닐까 싶다.
자, 그렇다면 모듈러의 장점은 무엇일까? 간단히 정리해보자면
- 모듈러 제품은 다양한 기능을 확장할 수 있다. 예컨대 소프트웨어나 펌웨어 어플리케이션이 자동으로 설치되고 적용된다면 더 좋은 카메라를 끼우거나 새로운 센서 모듈을 추가할 수도 있다.
- 1번 덕분에 사람들은 자기만의 스마트폰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단지 설치된 앱이 다른 것이 아니라 외형과 하드웨어 기능이 아예 다른.
그 장점이 여전히 유효한지 생각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 현재 스마트폰은 센서를 추가하거나 카메라를 교체할 수는 없으나 기능적으로 대부분 최고의 수준에 이르렀다. 지금의 아이폰 6 등을 봐도 공감하겠지만 오히려 2년을 사용해도 성능의 저하만으로 휴대폰을 바꾸지 않아도 되는 수준이다.
- 부족하나마 케이스 등으로 외형적 차별성을 두고, 각 제조사는 로즈골드나 제트블랙 등의 색상을 통해 개인적 성향에 대한 차별화를 수렴시키려 한다.
그 부분을 더 자세히 살펴보자. 모듈러폰의 대체 시장은 무엇이 있고 어떻게 전개되고 있을까?
- 배터리: 배터리 모듈은 배터리 교환 시 전원이 꺼지는 게 문제고 이는 G5의 문제 중 하나였다. 사실상 이 부분은 분리형 배터리가 기존 사용자 경험에 강점이 있기에 분리형이나 일체형이냐가 문제이지 모듈 형태로 탈착되는가는 지금까지 강점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샤오미가 크게 확산시킨 보조배터리 시장이 굳건하다.
- 카메라: 카메라 모듈의 경우 스마트폰의 기본 카메라 성능이 너무 좋아졌다. 일단 기본적으로 퀄컴이 탑재한 상위 AP와 함께 들어가는 소니의 이미지 센서의 성능이 좋은 것으로 알려졌고 거기에 더해 화웨이가 P9에서 칼자이쯔 렌즈를 넣는 등 모듈로 갈 필요가 없을 정도로 카메라 성능이 훌륭하다.
- 기타 악세사리: 360캠 같은 경우 아직 일반적인 니즈가 적은 영역이다. 액션캠의 영역은 독자 제품이 승승장구하는 영역이다. 소비자가 격한 활동에서 본체 디바이스인 스마트폰과 결합된 액션캠을 원할지 혹은 군더더기 없이 가볍게 움직일 액션캠을 원할지는 생각할 필요가 있다.
위 요소를 제외하더라도 모듈러폰은 완성된 형태의 완제품 스마트폰에 비해 가격적으로 비슷하거나 아주 조금 비싸면서 동시에 사용성 부분은 더 좋아야 한다. 그런데 스마트폰 산업 구조상 아주 대량의 부품을 최대한 낮게 책정할 수준으로 구매해 제품을 생산한다는 부분을 생각해 보면 물론 제품의 가격에 재료비 이외에도 마케팅 비용 등의 다른 비용이 추가된다.
완성품 형태의 스마트폰보다 가격이 합리적이면서 사용성도 좋은 제품을 뽑아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분명하다. 스마트폰 제조사 간의 경쟁이 심화되어 스마트폰의 출고가가 갈수록 낮아진다거나 혹은 국가 정책상의 지원금 범위가 높아질수록 모듈러폰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페북은 왜 하필 모듈러를 탐내는가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좀 다른 부분을 이야기해보자. ‘왜 하필 페이스북이 구글도 포기한 모듈러의 분야를 탐내는가’가 아마 그 시작일 것이다.
페이스북이 과연 하드웨어 제품 특히 휴대폰 제품을 내어놓는 데 일종의 도전자로서 자격이 있는가 이야기하자면 그건 절대 아니라고 본다. 비록 페이스북이 F8과 같은 개발자 컨퍼런스를 진행하기도 하고 VR 분야와 가상현실, 챗봇 등의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지만 휴대폰이라는 사업 영역과 잘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관점을 조금 바꾸어서 페이스북이 휴대폰으로 한정하지 않는 분야에서 모듈러가 필요할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답변은 좀 달라 보인다. 페이스북이 모듈러의 역량을 VR 기기와 연동한다면 아주 다른 타입의 디바이스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VR과 결합한 모듈은 현실감을 주기 위한 바이브레이터나 스피커, 다양한 게임 연동형 센서들의 접합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이와 같은 형태의 모듈러 VR 기기는 기존의 게임·엔터테인먼트 기기들과의 경쟁에서 유니크함을 가져갈 장점이 된다.
그런 성공을 거둘 수 있다면 페이스북은 전형적인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엑스박스를 만들어내며 휴대폰이 아닌 다른 하드웨어 영역에서 성공을 거두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뒤를 이어 하드웨어 산업에 좋은 교두보를 올려놓는 성공적인 소프트웨어 회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페이스북이 정말로 모듈러 디바이스를 만들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정보들을 통해서 합리적인 의심을 해 보는 것은 나쁘지 않은 듯하다. 페이스북이 모듈러를 통해서 흥미 있는 작당 모의를 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