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고 힘든 일이 뭔 줄 아세요? 정치경제학을 읽는 일이에요. 특히 당신이 쓴 정치경제학.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요. 저들(경찰)은 당신이 쓴 정치경제학을 읽지 않을 거예요.”
위로의 말치곤 참 얄궂다. 막 탈고한 『자본론』을 경찰에 빼앗긴 뒤 아내 예니가 남편 마르크스에게 해준 말이다.
그런데 아내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마르크스가 한마디 한다.
“그런데 말이오. 정치경제학을 읽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 뭔 줄 아시오? 그건 바로 정치경제학을 쓰는 일이라오.”
하워드 진 선생이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에서 시도했던 것처럼 마르크스 부부의 대화를 내 맘대로 각색해 봤다. 아무려나 마르크스도 그의 아내 예니도 『자본론』을 읽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들의 예측은 빗나갔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자들도 『자본론』을 읽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처음에는 소수의 추종자들만 그의 예지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의 글을 읽었지만 그 사회주의 선동가들이 지지세력을 갖게 되고 힘을 얻자 자본주의자들은 초긴장했다. 그래서 그들도 『자본론』을 정독했고, 마르크스주의적 분석 도구와 통찰을 여럿 차용했다.
19세기 중엽 카를 마르크스는 탁월한 경제적 통찰에 이르렀다. 그 통찰에 기반해 그는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자본가 계급 사이의 폭력적 갈등이 점점 증가할 것이고, 결국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승리해 자본주의 체제가 붕괴할 거라고 예측했다. 그는 혁명이 산업혁명의 선봉에 선 영국, 프랑스, 미국 같은 나라에서 시작할 것이고, 그런 다음 다른 나라들로 확산될 거라고 확신했다.
사람들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진단을 받아들이면서 이에 따라 행동도 바꾸었다. 영국과 프랑스 같은 나라의 자본가들은 노동자의 처지를 개선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국민을 정치체제 안으로 통합하려고 시도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이 선거에 나가 투표하기 시작하고 노동당이 여러 나라에서 잇달아 권력을 잡았지만, 자본주의자들은 여전히 안심하고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마르크스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공산주의 혁명은 영국, 프랑스, 미국 같은 산업강국을 집어삼키지 못했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역사의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바로 그 부분 역사학자 하워든 진의 진단은 통렬하다.
“자본주의의 패망을 예측한 마르크스가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 자본주의는 그 자체 모순으로 망할 수도 있지만, 스스로 자기모순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사실 말이다.”
이것이 역사 지식의 역설이다.
역사는 이른바 2단계 카오스다. 카오스계에는 두 종류가 있다. 1단계 카오스는 자신에 대한 예언에 반응을 하지 않는 카오스다. 가령, 날씨는 1단계 카오스다. 2단계 카오스는 스스로에 대한 예측에 반응하는 카오스다. 그러므로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다. 시장이 그런 예다. (『사피엔스』)
날씨 같은 복잡한 시스템은 우리의 예측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반면 인간의 발전 과정은 우리의 예측에 반응한다. 예측이 훌륭할수록 더 많은 반응을 유발한다. 지식이 축적될수록 예측은 어려워진다. “예상 가능한 혁명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면 왜 역사를 연구하는가? 물리학이나 경제학과 달리 역사는 예측하는 수단이 아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342p
“역사 공부의 목표는 과거라는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역사 공부는 우리에게 어떤 선택을 하라고 알려주지 않지만, 적어도 더 많은 선택의 여지를 제공한다.”
–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92p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늘 뒤를 돌아본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말이다. 여기서 뒤란 과거이자 역사다. 거기 미래의 모습이 담겨 있어서 보는 것이 아니다.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과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지평을 넓혀 이전보다 풍부한 선택지를 상상하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예측은 빗나갔지만, 그는 우리에게 다양한 상상력의 날개를 달아줬다. 덕분에 지금 우리는 보다 넓고 높은 세상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게 됐다.
원문: 최준영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