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일 만에 1,000만 원이 판매된 콘텐츠가 있습니다. 바로 지적 콘텐츠를 생산, 유통하고 있는 유료 플랫폼 PUBLY(이하 퍼블리)가 발행한 <팔리는 기획을 배우다> 콘텐츠입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기획 잡지 BRUTUS와 POPEYE의 기획력을 통해 ‘팔리는 기획’에 대해 살펴보는 콘텐츠였는데요. 사용자의 지갑을 여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던 ‘디지털 콘텐츠’ 분야에서 만든 성과이자 대세라 불리는 이미지, 동영상 포맷도 아닌 텍스트 포맷의 콘텐츠가 이렇게 많이 팔린 것은 정말 의외입니다. 저도 음악 콘텐츠와 전자책 이래로 디지털 콘텐츠 분야에서 지갑을 거의 열어본 적 없는 보수적(!) 소비자이지만 퍼블리에서는 무려 2개 콘텐츠나 유료로 구매했습니다. (무려 3만 원 ㄷㄷ)
퍼블리는 독자에게 꼭 필요한 콘텐츠를 특별한 경험으로 제공한다는 목표 아래, 2015년 4월 창업한 ‘콘텐츠 퍼블리싱’ 스타트업입니다. 퍼블리에서 콘텐츠가 퍼블리싱 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자를 희망하는 지원자는 자신의 이력, 그리고 발행하고 싶은 콘텐츠 기획서를 퍼블리에 제출합니다. 또는 퍼블리가 먼저 콘텐츠를 기획한 후 적합한 저자를 찾기도 합니다. 퍼블리는 이후 저자의 전문성과 콘텐츠의 기획력을 검토합니다.
지금까지 없었던 콘텐츠지만, 독자들에게 꼭 필요한 콘텐츠라는 판단이 들면 기획 내용을 ‘프로젝트’로 공개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크라우드 펀딩 개념으로 사전 구매자를 받습니다. 이후, 목표 금액이 달성되면 일정 기간 동안 저자는 집필을 통해 콘텐츠를 메이킹합니다. 반대로 목표금액을 미달성하면 프로젝트는 무산되죠.
퍼블리는 저자가 집필하는 동안 디자인, 교정 작업 등을 보조하며 ‘팔리는 콘텐츠’가 될 수 있도록 합니다. 이 과정을 거쳐 콘텐츠가 발행되면 사전 구매했던 이용자들에게 리포트가 발행되고 퍼블리싱 이후 구매한 고객들은 바로 콘텐츠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퍼블리는 모든 콘텐츠를 ‘유료’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디지털 콘텐츠를 판매하는 회사의 경우 무료 콘텐츠로 사용자를 끌어들이고, 익숙해진 경험을 토대로 유료 콘텐츠를 제안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입니다. 퍼블리에는 무료 콘텐츠가 단 1건도 없습니다. 100% 유료입니다.
그런데도 사용자들은 이 서비스로 몰리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포인트는, 사용자들이 ‘지갑’을 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 도쿄의 비즈니스 모델 27곳을 소개하는 <퇴사 준비생의 도쿄> 프로젝트는 작년 말 기준으로 목표 금액 600만 원을 529% 초과 달성한 3,174만 원이 모였고 현재까지 1,246명이 콘텐츠를 유료 구매했습니다. 일본에서 ‘기획 잡지’로 유명한 브르투스와 뽀빠이 잡지의 성공 요인과 전략을 살펴보는 <팔리는 기획을 배우다> 프로젝트는 모금 40일 만에 1,000만 원이 판매되는 기염을 토했죠. 최근에는, 72초TV 우승우 저자와 제일기획 출신 장원정 저자가 직접 칸 광고제에 방문해서 취재한 <2017 칸 광고제 리포트>는 3주 만에 1,000만 원 넘게 팔리는 기록을 세우며, 유료 판매 기록을 거듭 갱신하고 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재구매율’입니다. 퍼블리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서비스 가입자 6,000여 명 중 60%가 유료 고객이며 콘텐츠 재구매율은 무려 60%에 달한다고 합니다. 한번 구매해본 사용자의 콘텐츠 만족도가 그만큼 높았다는 것을 의미하죠. 작년 말에는 이런 성과들을 인정받아 한국온라인뉴스편집기자협회가 선정하는 한국온라인저널리즘어워드에서 ‘주목해야 할 미디어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퍼블리는 ‘팔리는 콘텐츠’로 유료 고객층을 만들어냈을까요?
1. 기존 미디어가 담지 못한 기획력을 갖춘 지적 콘텐츠를 생산하다
최근, 온·오프라인 서점가에서는 독립출판물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온라인서점 ‘알라딘’은 이런 인기를 반영하여 독립출판물을 전자책으로 판매하는 이벤트도 현재 진행하고 있습니다.
독립출판물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독특한 콘셉트로 출판물의 내용과 형식을 ‘남다르게’ 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 남다름은 기존의 출판물에서 볼 수 없는 내용과 형식이라는 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봤던 출판물은 대중적인 관심사를 다룬 출판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이너한 취향과 관심사는 배재되었습니다. 결코 출판사의 잘못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중’을 잡지 못하면 판매 수익을 거둘 수 없는 태생적인 출판계의 시스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독립출판물의 인기는 이런 마이너 취향이 ‘메인’이 될 수 있다는 것과 누군가에는 꼭 필요한 정보였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기존 출판물이 다루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를 가진 콘텐츠가 되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누구나 꿈꿨을 만한 아지트 만드는 방법을 소개한 ‘비밀기지 만들기’, 연필을 제대로 깎는 방법을 알려주는 ‘연필 깎기의 정석’ 등의 독립출판물은 예전이라면, 기존이라면, 나올 수 없던 출판물입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누군가가 필요로 하고, 의미가 있는 콘텐츠라면 발행되고 판매되는 것이 요즘입니다.
퍼블리가 다루는 콘텐츠도 비슷합니다. 기존 미디어가 담지 못했던 뚜렷한 타겟과 콘셉트가 있습니다. 기존의 미디어는 요약과 팩트 전달에 집중했습니다. 미디어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것이 시대의 저널리즘에 우리가 요구하는 미디어의 역할입니다. 객관적인 사실 전달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미디어의 올바른 역할이죠. 하지만 퍼블리는 저자의 ‘주관적인 관여’를 적극 환영합니다. 팩트 이면에 숨겨져 있는 다양한 인사이트와 생생한 스토리들을 퍼블리는 겨냥했습니다. ‘팩트’만이 사회에 필요한 콘텐츠가 아니라, ‘기획력을 바탕으로 한 주관적 판단’ 역시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지적 콘텐츠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워렌 버핏이라는 인물에 대해 기존 미디어는 잘 알려줬지만 워렌 버핏의 투자 철학과 전망을 나누는 축제 같은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를 현직 투자가의 관점으로 취재해 퍼블리싱한 콘텐츠는 없었습니다. 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 Top10은 기사에서 봤지만 세계에서 ‘브랜딩’을 잘하는 도시 사례는 보지 못했습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에 대한 기사는 끊임없이 쏟아졌지만 그 20년 동안 새롭게 만들어진 비즈니스 모델을 27개나 다룬 아티클은 없었습니다. 퍼블리는 이처럼 기존 미디어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지적 콘텐츠’를 겨냥했고 지금까지 원했었지만, 또는 원하는지도 모르고 있었지만 꼭 필요했던 콘텐츠에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게 된 것입니다.
이런 콘텐츠들은 자연스럽게 ‘희소성’을 갖게 됩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콘텐츠가 아닌,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콘텐츠가 되기 때문입니다. 희소성을 가지게 되면, 사용자는 당연히 구매를 하게 됩니다. 놓치고 싶지 않고, 그래서 지갑을 열게 되는 거죠.
어떻게 보면, 퍼블리는 독립출판물의 디지털 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독립서점에서 1권의 독립출판물을 구매하는 것처럼 이곳에서 콘텐츠를 구매하는 것은 그다지 큰 허들이 아닙니다. 서점에서 책 1권 구매해서 나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는 경험이죠. 우리가 동네의 독립서점을 갔을 때, 이곳에서밖에 만나질 못할 책을 발견할 경우, 또 온라인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 경우 우리는 ‘구매’를 하게 됩니다. 저의 경우엔 퍼블리에서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2. ‘저자의 경험’에 가치를 두다
퍼블리는 콘텐츠 퍼블리싱 업체일 뿐 콘텐츠를 직접 만들지 않습니다. 모두 ‘저자’에게 맡깁니다. 저자가 기획안을 들고 프로젝트를 제안하면 프로젝트가 잘 ‘팔릴’ 수 있도록 퍼블리는 지원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각 저자들의 전문 영역을 활용해 일반적인 콘텐츠 기업이 다룰 수 없는 주제들을 다루게 되었습니다. 한 명 한 명의 저자가 갖춘 경험이 콘텐츠가 되고 이는 결국 퍼블리의 자산이 됐습니다. 모든 것을 직접 다 하기보다 콘텐츠 기획 및 집필은 전문가인 저자에게 맡기고 퍼블리는 잘 팔아주는 역할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유도가 콘텐츠별 성격을 더 뚜렷하게 만들고, 비슷비슷한 콘텐츠가 나오지 않는 다양성을 갖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퍼블리는 저자 지원을 누구에게나 열어놓고 있습니다. 홈페이지, SNS 등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저자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좋은 저자를 모셔야 좋은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자연스럽게 퍼블리도 수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콘텐츠 생산자 모델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최근 SNS에서 많이 목격되는(!) 글이 바로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을 지향하는 브런치의 글들입니다. 브런치 서비스에서는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단, 서비스 측의 심사를 통과해야지만 작가 호칭을 받을 수 있고 콘텐츠 퍼블리싱이 가능합니다.
퍼블리도 똑같은 구조입니다. 누구나 저자 지원은 가능하지만 누구나 할 수는 없습니다. 폐쇄적인 플랫폼이지만 이 점이 오히려 소비자에게는 신뢰를 주고, 생산자에게는 명성을 주게 됩니다. 다만 차이는 브런치가 유료 콘텐츠 판매에 미적거릴 때, 퍼블리는 ‘도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 디지털 콘텐츠 산업에서 보기 드물게 ‘텍스트 콘텐츠’로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선구적인 스타트업이 되었습니다.
저자들에게도 퍼블리는 굉장히 매력적인 공간입니다. 통상 책 출판 인세는 판매 금액의 10% 내외입니다. 하지만 퍼블리는 최소 30% 이상을 수익으로 돌려주고 있습니다. 그 결과, 블로그에서 자체적인 기획 콘텐츠를 만들던 전문가나 업력이 높아 특정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전문가들이 반드시 수익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퍼블리에 들어오는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브런치에서 ‘기획 콘텐츠’를 발행할 바에는, 퍼블리에서는 콘텐츠도 발행하고 수익도 거둘 수 있는 ‘일석이조’의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콘텐츠 매력도’를 3단계로 검증한다
퍼블리에서는 총 3번의 ‘검증 과정’을 거쳐 실제 콘텐츠 퍼블리싱이 이루어집니다. 첫 번째는, 퍼블리 서비스 운영팀의 1차 심사입니다. 저자 지원을 통해 받은 콘텐츠 목자와 기획서를 토대로 실제 판매가 일어날 수 있을지 퍼블리가 가늠합니다. 이 심사를 통과하면 홈페이지 메인에 있는 ‘검토 중인 콘텐츠’ 에 리스트업 되고 알림신청을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알림신청이 많이 된 콘텐츠일 수록 콘텐츠 매력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검증의 과정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알림신청이 많이 된 기획 콘텐츠는 프로젝트로 레벨업(!)되고, 정해진 기간 내에 목표 금액을 채워야 하는 미션이 생깁니다. 최종적으로 이용자들의 사전 구매를 통해 목표 금액이 달성되면 이때부터 제대로 된 콘텐츠 생산에 들어가게 됩니다. 목표 금액을 채우지 못하면 구매 금액은 자동으로 환불처리됩니다.
이처럼 3번의 검증 과정을 통해 얼마나 콘텐츠가 구매력을 가지고 있는지 검증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 과정은 퍼블리싱 업체와 저자, 그리고 이용자 모두에게 이득입니다. 퍼블리싱 업체는 목표 금액을 채운 콘텐츠를 퍼블리싱 하기 때문에 최소한 BEP(손익분기점)를 넘기는 콘텐츠를 발행할 수 있습니다.
저자 입장에서도 콘텐츠 제작에 모든 리소스를 쏟아붓기 전에 콘텐츠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집필을 들어갈 수 있죠. 이용자 입장에서는 ‘별 볼 일 없는’ 콘텐츠를 구매하는 리스크를 줄여줄 수 있습니다. 디지털 콘텐츠 특성 상 환불과 교환이 힘든 점이 이용자들에게는 큰 허들이기에 디지털 콘텐츠 구매에는 대다수 사용자들이 굉장히 신중한 편입니다. 이 리스크를 퍼블리는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낮출 수 있게 했습니다. 맘에 들 경우 ‘우선’ 사전 구매를 해놓고 다른 이용자들의 판단에 내 구매의 확신을 맡겨보는 거죠. 다른 사람들도 ‘구매할 만한’ 콘텐츠였다면 내가 구매한 콘텐츠도 ‘값어치’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마무리하며
저는 개인적으로 퍼블리의 실험적 시도에 큰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 싶습니다. 유료 디지털 콘텐츠 시장에서 오디오(음원사이트, 스포티파이 등), 비디오(넷플릭스, 유튜브 레드 등)포맷이 아닌, 어쩌면 고리타분할 수 있는 텍스트 콘텐츠로 승부수를 띄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10년 뒤에 무엇이 새롭게 생길지보다, 10년간 사라지지 않을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라.
제 생각에는 텍스트 콘텐츠가 그렇습니다. 오랫동안 인류는 무언가를 기록해왔습니다. 과거에는 인쇄물이었고 현재는 블로그, SNS 등입니다. 수단은 바뀌었지만 목적과 의도는 같습니다. 나의 생각을 공유하고, 기록하고, 흔적을 남기는 것.
퍼블리는 글쓰기의 목적을 비즈니스 모델에 접목해 사업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는,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취미 활동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업’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야 더 많은 콘텐츠가 세상에 등장할 수 있고 세상의 생각들은 더 풍부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퍼블리를 통해 잡지 전문가로부터 ‘일본 잡지’의 성공 전략을 공유받았습니다. 이 지적 자본의 효과가 바로 드러나지는 않겠지만, 이 경험의 공유는 어느 순간 분명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저도 깨닫지 못하는 순간에 말이죠.
원문: 생각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