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보람 있는 직업
상담가나 임상가 등 심리학 전문가들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실제로 심리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 취업할 수 있는 길은 한정적인 데다 다른 전문직업군에 비해 소득이 뛰어난 편은 아니니까. 아마 이는 심리학이라는 학문의 유용성에 관한 대중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했으며, 심리학과 관련된 각종 제도적 인프라가 아직까지는 미비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심리학은 가치 있는 학문이다. 심리학적 통찰들은 개인을 바꿀 수 있고,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품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심리학적 통찰들을 자본주의 시대에 걸맞은 방식으로 포장하여 대량 생산하고, 유통시키기에는 아직 국내 심리학 관련 인프라가 현저히 부족하다. 시장가치를 일단 증명해야 하는 입장에 있기에, 심리학 전문가에 대한 대우는 아직까지는 낮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한다는 것에는 상당한 리스크가 동반되기 마련이다. 레드 오션이지만 시장성이 검증된 길을 택할 것이냐, 블루 오션이지만 나 스스로 그 길에 대한 시장성을 검증해야만 하는,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자칫 굶어 죽을지도 모를 그런 길을 택할 것이냐. 심리학 대학원 진학을 고민한다는 것은 바로 그러한 선택지들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니 심리학 전문가가 되기를 희망하면서도, 대학원을 마치고 향후 직업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 소득이 부족할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것 하겠다고 굶주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갓 스무 살이 되었을 때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선택하기에는 온갖 현실적인 제약들이 마음을 무겁게 옥죄고 있는 것을. 결혼, 출산, 육아 등 막대한 돈이 필요한 ‘의례’들은 눈앞에 성큼 다가와 있고, 그래서 나는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는데 당장 심리학을 공부한답시고 직장을 내려놓아도 좋은 것인가?
대학원은 대학이 아니다. 웬만한 사람들이 그러하듯, 으레 선택하게 되는 당연한 선택지가 아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뒤바꿀 수 있는 중대한 선택이다. 대학 진학 – 취업 준비 – 직장 생활이라는 평범한 길을 내치고 스스로의 길을 가겠노라 마음먹는 일이다. 그래서 단지 심리학에 대한 열정만을 가지고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아니다.
맞다. 여러분은 ‘돈’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심리학 대학원을 선택함으로써 막대한 등록금을 떠안아야 한다. 일반대학원에서 전일제 대학원생으로 살겠다면, 공부하느라 돈을 벌지 못하게 될 그 기회비용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학원 졸업 이후는 또 어떤가? 대한민국은 아직까지 ‘학력 인플레’ 사회다. 석사 이상의 고학력을 자랑함에도 비정규직을 전전하거나 실업자 신세로 주저앉고 마는 이들이 태반이다.
대학원 졸업 이후, 과연 나는 얼마나 경쟁력 있는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인가? 대학원을 가지 않고 직장을 다녔다면 얻게 되었을 소득에 대한 미련을 당장 나는 얼마나 뿌리칠 수 있겠는가?
심리학 대학원 입시 전략 설명회를 열기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났다. 그동안 심리학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며, 내게 상담을 희망하는 많은 분들이 메일을 보내오셨다. 그 가운데에는 종종 이러한 질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심리학 대학원을 졸업하면 취업 잘 될까요?”
“심리학 대학원을 나와서 취업하면 소득은 얼마나 될까요?”
“상담가 월급이 적다던데, 앞으로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까요?”
그리고 나는 이 질문들 속에 다음과 같은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본다.
심리학 대학원의 길이 그리 돈을 많이 잡아먹는 일이라면, 더군다나 졸업은 한다 해도 취업 후 상당 기간 박봉 신세를 면치 못할 가능성이 높다면 심리학 대학원에 왜 가야 하죠? 그 많은 기회비용을 날리고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과연 뭐죠?
나는 대학원 이후의 취업과 소득을 걱정하시는 분들께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다. 심리학 전문가의 길을 걷고자 하신다면 소득 창출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어느 정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조금 더 과감히 말하자면 이렇다.
취업 걱정이나 월급 걱정을 해도 된다. 그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단지 거기에만 머물 작정이라면 대학원 진학의 길을 선택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이것은 당신이 당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음을 의미한다
여러분은 석박사 학위 취득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홀로서기의 증명’을 뜻하는 것이다. 스스로 연구 주제를 잡고, 가설을 구축하고, 실험을 설계/주도하고, 결과를 분석/가공하여 논문을 쓰는 과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다. 간단히 말해 ‘내 컨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독립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심리학 대학원에 가고, 심리학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심리학 전문가가 된 당신은 스스로의 아이디어를 논문의 형태로 구현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심리학과 관련된 다양한 국내외 논문들을 소화하고, 그 안에 숨은 의미들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 또한 갖고 있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만의 일을 꾸밀 수 있다.
그것은 심리학 대학원을 거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값진 능력들이다. 직장에 가기를 포기하고, 당장 몇 년간의 수입을 포기함으로써 얻어낸 소중한 여러분만의 경쟁력이다. 그런데 그것을 놔둔 채, 취업 활동에만 골몰하고 조직 내 하부 구성원이 되어 시키는 것만 하며 살겠다면 냉정히 말해 그것은 심리학 전문가로서의 직무 유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단지 ‘석(박)사 학위’라고 하는 ‘간판’만을 써먹은 것일 뿐, 석(박)사 학위를 얻는 과정으로부터 배우고 길러온 여러분만의 전문적인 능력을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심리학 전문가로서, 독자적인 수입 루트의 창출이 가능해진다는 점. 그것이 곧 여러분이 심리학 대학원에 간다면 얻게 될 이점이다. 심리학 대학원을 나왔다면 취업 & 직장 활동에만 골몰할 필요는 없다. 여러분은 전문가다. 그렇다면 전문적 역량을 살려 다양한 형태의 수입 루트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심리학 논문들을 읽고 소화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여러분들은 대중이 소비할 수 있는 형태의 다양한 심리학 컨텐츠들을 생산해낼 수 있다. 영상을 제작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칼럼을 기고하거나, 책을 쓰는 등의 활동이 가능해진다는 의미다. 혹은 집단 상담 & 워크샵 등을 독자적으로 개최하여 그것을 여러분의 부업 활동으로 삼을 수도 있다. 경력이 충분하고, 그에 걸맞은 자질을 갖추고 있다면 다른 분야 전문가들과의 전략적 제휴 역시 가능하다.
심리학과 관련된 비즈니스 사업 모델을 구상하는 것도, 기존 비즈니스 사업 모델에 자문 역으로 참여해보는 것 역시 심리학 전문가가 할 수 있는 흥미로운 도전 과제다.
대학원 졸업 이후, 직장 생활과 출간, 투자, 자문, 컨텐츠 제작, 전략적 제휴, 사회적·정치적 노력 등 전문가로서의 개인 활동을 병행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안정성과 미래 가능성, 두 가지를 모두 담보할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설사 직장 생활이 위태로워진다 해도 여러분에게는 든든한 ‘보험’이 마련되어 있다. 그러다 여러분의 능력과 자질을 인정받아 개인 활동 영역에서의 ‘대박’이 생긴다면? 그것은 그것 역시 좋은 일이다. 전문가로서, 오로지 ‘나’라고 하는 한 사람으로서 세상에 우뚝 설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와 미래를 부단히 저울질해본 뒤, 부디 여러분 모두가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원문: 허용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