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회사에 들어온 지도 1년이 다 되어간다. 진행했던 몇몇 프로젝트가 쇼케이스로 공개되고 제품화되는 걸 보면 나름대로 어느 정도 적응했다고 생각한다. 입사 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정신없이 지내온 탓에 그 과정을 따로 정리해둔 것은 없었는데 머릿속에서 잊기 전에 정리해보고자 한다. 인터넷 여기저기서 얻은 정보와 조언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기에 이 글도 누군가에게 도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준비 시기
개인적으로 구직 활동이라는 것은 거의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한국에서 S사에 입사했을 때는 그즈음에 유학 준비하며 어차피 영어와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있었으니까 별도의 준비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년에 구직 활동이라는 것을 처음 할 때 느낀 것은 생각보다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 실력도 실력이지만 전체적인 전략이 없으면 기회를 손에 쥘 확률이 떨어진다. ‘구직 활동’도 ‘취업 프로젝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먼저 전체 일정을 세웠다. 2016년 5월~7월 사이에는 입사해야 하고, 5월에는 석사 논문(Thesis) 발표가 예정되어 있었고, 리서치해보니 큰 회사들은 일반적으로 석사 예비 졸업생들을 채용시키는 프로그램(New Grads Program)이 1~2월에 있긴 했는데 내 경우 경력직 지원이라 그런 것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 5~7월 사이에 입사하고
- 4~5월에는 석사 논문 발표 준비에 매진하려면
- 2~3월 정도쯤에는 회사로부터 오퍼를 받아야 했다.
- 그러기 위해서는 1~2월에는 인터뷰를 진행해야 하니
- 그 전년도인 2014년 11~12월부터 회사 지원을 시작했다.
요약하자면 입사 지원부터 입사해서 일을 시작하는 데까지 대략 5~6개월 걸린다는 이야기다.
회사 지원하기
회사에 입사하는 가장 순조로운 방법은 전년도 여름방학 동안에 인턴을 했던 회사로 가는 것이다. 여기는 여름방학이 약 3달 정도 되기에 웬만한 큰 회사들은 인턴십 프로그램이 잘 되어있다. 「인턴 준비 경험기」라는 글에도 적어두었지만 인턴십으로 함께 일했던 인력은 큰 이변이 없는 한 졸업 후 입사 계약을 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는 많은 구직자가 소수의 회사에 입사하려고 경쟁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많은 회사가 좋은 인력을 서로 뽑기 위해서 경쟁을 하는 시스템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미리 인력을 채용하는 것은 든든한 보험을 들어두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구직자 입장에서도 미리 입사할 곳을 정해두고 다른 더 좋은 곳을 찾아볼 수도 있으니 서로 윈윈인 셈이다.
처음에 ‘유니콘’으로 불리는 두 군데 정도의 유망한 스타트업에 지원했다가 “저희는 H1B(취업비자)를 지원해주지 않습니다”라는 이메일을 받은 다음부터는 H1B를 지원해주는 규모 있는 회사를 찾았다. 외국인 유학생은 가장 먼저 신분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다. 중국인, 인도인 등 많은 유학생 졸업생이 실리콘밸리의 큰 회사에 많이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1) 웹사이트 지원
지원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한국의 ‘대기업 공채’ 같은 시스템이 없고 필요한 인력들을 상시로 채용하는 시스템이다 보니 가고 싶은 회사가 있으면 수시로 회사 웹페이지에 접속해서 사람을 뽑는지 알아봐야 한다. 구인 공지가 있으면 웹사이트에 본인의 이력서와 간단한 개인정보를 입력하면 된다.
지금 다니는 회사도 웹사이트를 통해서 지원했다. 이력서를 보내면 바로 연락이 오는 곳도 있지만 1-2달이 걸릴 수도 있다. 프로세스가 느리게 진행되기에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분명한 건 입력된 정보를 모두 HR(Human Resource)에서 검토한다는 점이다. 때에 따라서는 조금 느긋하게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2) 내부 추천 방식
가고 싶은 회사에 이미 다니는 사람을 통해서 지원하는 내부 추천(Employee Referral) 방식도 있다. 가장 추천하고 싶은 방법이기도 하고 실제 가장 많이 이용하는 방법이다. G사에 다니고 있는 친구를 통해서 내부 추천을 받았던 적이 있는데 리쿠르터로부터 1~2주 안에 연락이 왔다.
효율적인 방법이긴 하나 아무래도 학생이고 외국인이다 보니 내부 추천을 이용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협소할 수밖에 없다. 사용 가능한 인적 네트워크를 최대한 동원해서 내부 추천을 받을 루트를 만들어두면 굉장히 효과적이다.
3) 정보 세션 이용
졸업 전이라면 학교에 회사들이 찾아오는 정보 세션(Information Session)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실리콘밸리의 큰 회사들은 전국적으로 디자인&테크(Design & Tech)가 강한 학교들에 리쿠르터들을 차례로 방문시킴으로써 좋은 인재들을 졸업 전에 미리 채용하려고 한다.
우리 학교에도 학기 중간에 A사, G사, M사, Z사에서 리쿠르터들이 방문했다. 재미있는 건 외국인 유학생들은 많은 관심을 보이는 반면 정작 미국인 친구들은 ‘재미없게 그런데 가서 뭐해’라며 관심 없는 경우가 많다. 뉴욕에는 흥미로운 작업을 하는 다채로운 회사들이 많아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4) 회사로부터 발견되기
링크드인(Linkedin)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실리콘밸리 지역의 회사에 지원할 때 놀랐던 것 중 하나가 링크드인을 애용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회사에서는 이력서에 적힌 내용의 참/거짓을 판단하기 위한 개인정보의 참고 자료로만 쓰고, 어떤 회사에서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력서 제출을 링크드인 프로파일 링크로 대체하기도 한다.
왜 실리콘밸리의 많은 회사가 링크드인 프로파일을 점점 더 신뢰하는 것일까? 한국에 있을 때도 링크드인이라는 사이트를 알았고 해외 취업을 알아보기 위해서 내 나름대로의 정보를 링크드인 프로파일에 올렸다. 다만 당시 한국에서는 본인의 최신 회사 경력을 웹상에 올려두는 것은 이직하고 싶다는 ‘불순한 의지’의 표현이었기에 금기시되는 것이었다.
나 역시도 굉장히 조심스러워서 무척 한정된 정보만 올려두었다. 정작 올라오는 정보들도 헤드헌터들이 나와는 관계없는 구인 정보만 잔뜩 올렸기에 별로 쓸모도 없었다. 그랬기에 링크드인은 직장인들이 개인정보와 이력을 올리고 서로 쪽지 주고받고 하는 ‘직장인의 싸이월드’ 정도로만 생각해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에서 링크드인이 왜 중요한지는 링크드인 콘텐츠의 속성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일단 미국은 ‘신뢰’가 생명이다. 은행 거래, 집 계약, 차량 구입 등 모든 질문은 ‘이 사람은 과연 믿을만한가?’로 시작된다. 은행거래의 경우 금융사가 점수를 매기는 신뢰 점수(Credit score)를 사용하지만 사람을 채용하는 회사의 입장에서는? 바로 링크드인을 사용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개인의 학력, 경력 등을 게시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소셜 미디어의 특성상 나의 정보가 최대한 공개적이어야 나를 전혀 모르는 회사의 리쿠르터들에게도 정보가 노출된다. 따라서 구직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공개적으로 정보를 올려두는데, 디자인 쪽은 업계 바닥이 워낙 좁아서 두세 사람만 건너면 모두 알 수도 있는 ‘잠재적 일촌’ 관계이기에 본인의 학력, 경력에 거짓말할 수 없다.
잘 정리된 링크드인 프로파일은 ‘이 사람은 믿을만함’을 보증하게 된다. 예전에는 거짓으로 작성된 이력서를 판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면 이제는 링크드인으로 인해서 그런 우려는 없어진 셈이다. 입사가 결정되면 회사에서 별도의 배경 체크 프로세스(Background Check Process)를 진행하는 곳도 있지만 요즘은 링크드인의 영향 때문인지 안 하는 회사들도 많다.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링크드인 프로파일을 잘 정리해두면 리쿠르터에게 역으로 연락 오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구직 활동하는 사람이 많은 만큼 실리콘밸리의 회사 또한 항상 좋은 인력을 찾아 헤맨다. 링크드인에는 일반인이 볼 수 없는 리쿠르터 전용 기능이 있다는데 회원 가입도 구직자와 구인자로 나누어 받는 걸 보니 제공하는 기능도 사뭇 다를 것 같다.
리쿠르터가 보내는 쪽지의 내용은 대략 ‘너 프로필 봤는데, 우리랑 잘 맞는 것 같아! 시간 되면 짧게 대화할 수 있니? 연락 줘’라는 식으로 가볍게 시작된다. 작은 스타트업부터 학교, 큰 대기업까지 아직 꽤 많은 기회가 디자이너들을 기다린다. 링크드인 프로필만 잘 정리해 두어도 이런 기회를 자주 접할 수 있으니 꼭 한 번은 깔끔하게 정리해봐야 하지 않을까?
첫 번째 전화 인터뷰
대개 첫 번째 진행하는 리쿠르터와의 인터뷰 때는 기본적인 정보만 오고 간다. 리쿠르터는 주로 ‘후보자가 사전에 제출한 정보가 정확한가’를 파악하고‘앞으로 채용과정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를 설명해준다. 그 과정에서 후보자의 영어 실력도 간접적으로 판단한다. 대부분 이 과정은 그냥 정보 세션의 성향이 강해서 큰 문제 없으면 통과한다.
하지만 리쿠르터가 느끼기에 후보자가 지원할 때 냈던 이력서와 전화상으로 말하는 정보가 상이하다거나 전화 통화하는 동안에도 의사소통이 불편해서 업무 하기에 부적합하다고 판단하면 가차 없이 탈락시키기도 한다. 전화 인터뷰 경험이 많이 없는 유학생의 경우 종종 리쿠르터에게 열심히 본인 어필을 하고 포트폴리오 작업 설명을 장황하게 하는데 비전문적이거나 너무 필사적으로 보여서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한다.
대부분의 리쿠르터는 디자인 작업물에 상세한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후보자의 전반적인 역량을 궁금해하기 때문이다. 디자인 작업물 관련한 질문이 나오더라도 상세하게 하기보다는 큰 그림 내에서 디자이너가 아닌 비전문가가 이해할 수 있도록 프로세스 위주로 설명하는 편이 좋다.
보통은 30분 내외로 진행되고, 인터뷰가 성공적으로 끝났을 경우 말미에 다음 단계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전화 인터뷰를 처음 했을 때는 긴장도 많이 하고 통화 품질도 안 좋아서 망치기도 했는데 반복하다 보니 자신감도 생기고 어렵지 않게 첫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경험과 자신감을 갖기 위해서라도 본인이 원하는 회사 말고 연습 삼아 여러 다른 회사의 인터뷰를 다양하게 경험해보는 것이 좋다.
두 번째 화상 인터뷰
첫 번째 인터뷰를 무사히 마치면 디자이너와의 인터뷰가 기다리고 있다. 회사마다 다르긴 하지만 여기서는 좀 더 일반화해서 이야기하기로 한다. 이 단계의 목적은 본인의 역량을 인터뷰어에게 어필하는 것이다. 나중에 회사에 입사하게 된다면 함께 일하게 될 사람이므로 그들에게 ‘당신과 같이 일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심어주는 것이 성패의 관건이다.
회사마다 인터뷰 포맷이 다르지만 그간의 작업 내용 리뷰는 무조건 빠지지 않는다. 보통 후보자의 포트폴리오 웹페이지를 각자 화면에 띄워두고 인터뷰를 진행하고 때로는 행아웃(Hangout)이나 스카이프(Skype)를 이용해서 컨퍼런스콜을 한 뒤 화면 공유 기능을 사용해서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한다. 여기서 흔히 빠지기 쉬운 함정이 종종 의욕이 앞서서 내가 얼마나 좋은 작업을 했으며 얼마나 훌륭한 능력을 가졌는지 보여주려 한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지만 인터뷰어들은 후보자가 ‘얼마나 잘난 사람인가’를 알아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랑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알아보려 한다. 인터뷰어와 그 회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역량을 분명하게 보이고 ‘내가 당신이 찾는 그 인재입니다’라고 설득하려면 입사하고자 하는 포지션에서 원하는 능력, 프로세스, 경험에 대한 설명을 그들의 언어로 설명해야 한다.
규모가 큰 회사의 경우 보통 동일 레벨의 디자이너와 인터뷰를 먼저 하고 나중에 매니저급이랑 진행한다. 앞선 인터뷰에서는 디자인 능력 및 팀워크 능력처럼 코워커(co-worker)의 자질을 주로 판단하고 매니저와의 인터뷰 때는 부하직원으로서의 역량, 협업 태도, 리더십, 성장 가능성을 판단한다. 보통은 1명당 45분씩 2회를 연이어 하고(중간에 휴식 15분) 인터뷰 결과는 2-3일 후 처음에 연락했던 리쿠르터로부터 이메일로 받게 된다.
디자인 실기 과제
디자이너와의 인터뷰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면 이제 반은 건너온 셈이다. 회사에 따라 다르지만 디자인 실기 과제(Design Exercise)가 주어지는 곳도 있다. 실기 과제는 본인이 인터뷰 시에 설명했던 능력, 보여줬던 포트폴리오의 작업물이 본인이 했다는 것을 정해진 시간 내에 증명하는 단계다. 최소한 포트폴리오 작업물의 퀄리티만큼은 나와야 하는 것이 핵심이다.
보통 ‘알람시계 재디자인(Re-design alarm clock)’ ‘TV 리모컨 재해석(Re-think TV remote contoller)’처럼 일상 제품을 재해석하는 과제를 준다. 실제 필드의 모든 프로젝트는 기한이 있기에 실기 과제 역시 주어진 시간 내에 빨리 끝내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다면 일정을 연기하는 것도 가능하다.
‘xx시간(또는 x일) 동안에 작업하시오’라고 가이드라인을 주긴 하는데 실제로는 정해진 시간을 넘겨 공들여 작업해서 제출한다. 재택 과제라 본인이 사용한 시간을 아무도 모르니 가능한 한 시간을 많이 써서 작업물의 퀄리티를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디자이너를 뽑을 때는 매체에서 가끔 접하는 ‘구글 채용 면접에서 답하기 어려운 질문 11가지‘와 같은 난해한 질문은 안 물어보는 편이다.
온사이트 인터뷰
한국 대기업에서 디자이너를 채용할 때는 일반적으로 서류전형 – (삼성의 SSAT 같은) 인적성검사 – 실기시험 및 프레젠테이션 – 임원면접이 대표적인 프로세스다.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임원면접은 약간 형식적인 면이 짙다. 3-4명의 임원 앞에 후보자가 앉아서 몇 가지 질문에 대답하는데 크게 결격 사유만 없다면 거의 합격이라고 봐도 무방한 단계다.
미국에서의 임원 면접은 온사이트(on-site) 인터뷰라고 부르며 굉장히 치열하다. 하루에 약 3~4차례의 인터뷰를 각각 한 시간씩 돌아가면서 한다. 처음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디자이너 4-5명을 모아놓고 40분 정도 포트폴리오 발표를 진행한다. 이후 디렉터급 디자이너, 함께 일하게 될 개발자, 마케터, 매니저 등등 순차적으로 함께 1:1 인터뷰를 진행한다. 그들의 평가를 종합해서 일정 점수 이상을 넘어야 리쿠르터를 통해 오퍼 받는다.
이때는 ‘뭔가를 더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보다 ‘편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그대로를 즐기다 온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이 단계까지 왔다면 일단 디자인 실력은 검증이 끝난 것이고 ‘함께 일할 만한 사람’인지 판단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회사마다 다르니 이 단계에서 간단한 실기 과제를 해야 하는 곳도 있지만 주어진 시간이 짧아 결과물에 대한 부담은 상대적으로 적다. 워낙 여러 사람과 긴 시간을 만나야 하고 대화해야 하므로 체력 소모도 상당하기 때문에 미리미리 체력적으로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
원문: 히로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