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망 :
이번 생은 망했으니 다음 생에는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다.
똥통 :
주로 스무 살부터 취업을 시작하거나 비수도권에 살고 있는 ‘청년 밖의 청년’이 자신을 자조적으로 가리키며 하는 말.
사축 :
저녁도 없고, 미래도 그려볼 수 없는 하루. 청년들은 회사에 길들여져 가는 서로를 ‘사축社畜’이라 불렀다.
찍퇴 :
희망퇴직을 거부하는 직원들을 작업장에서 빼 대기 발령을 내린 뒤 ‘찍어서 퇴직’시키는 것.
청년 팔이 :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은 여야 가리지 않고 청년을 팔았지만 정작 청년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쌍봉형 가난 :
비정규직 부모가 비정규직 자녀를, 저임금 노동자가 저임금 노동자를 낳고 있다. 정규직 임금의 평균 53.5퍼센트를 받는 비정규직의 비중은 ‘25세 미만’과 ‘60세 이상’에서 가장 높다. 쌍봉낙타처럼, 두 개의 봉우리가 솟은 형태다.
지·옥·비 :
지하방·옥탑방·비주택(비닐하우스 등)을 전전하는 청년들이 꽉막힌 현실을 자조하는 말.
월 3백 :
“청년들은 일반적인 기준으로 먹고살고, 저축하고, 명절 때 부모님 용돈 드리고, 학자금도 갚아 가며, 연애하고 결혼하려면 필요한 돈으로 ‘월 3백만 원’을 말했다. 그러나 그 돈은 주말 잔업을 다 해도 못 받는 ‘인생의 벽’이기도 하다.
ㅇㅈ :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상대방에게 동의를 구할 때 붙이는 관용구. 청년들에게 ‘인정’이란 ‘있는 그대로의 청년’에 대한 수긍을 의미한다.
다시, 청년 :
“청년들의 사연은 그들의 얼굴만큼이나 다양했다. 청년은 취업이 안 돼서, 집값이 비싸서, 임금이 낮아서, 직장 생활이 어려워서, 가난을 대물림해서 고통을 받았다. 유일한 공통점은 인터뷰를 마친 뒤의 표정이다. 청년들은 한결 후련해진 얼굴로 작별 인사를 나눴다.”
『부들부들 청년』(경향신문 특별취재팀, 후마니타스)에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이게 이 책 1부의 차례다. 1부 마지막의 글을 읽으면 책 제목을 정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청년은 한 사회의 미래다.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그 미래가 지금 부들부들 떨고 있다. 청년들이 화나고 답답할 때 쓰는 ‘부들부들’은 수동적인 반응만을 담은 표현이 아니다. 자신을 옥죄는 구조를 마주했을 때의 분노가 담겨 있다. 해법은 분노하고 고통받는 자의 입에서 나올 것이다. 사회의 모서리에 서 있는 청년들의 이야기는 ‘실패담’이 아니라 병든 한국을 치유할 ‘문진問診’이다.”
‘월 3백’이 되지 않는 청년들이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이 연재를 읽으면서 나부터라도 잘하자고 결심했었다. “평균 11개월간 준비해 취직한 한국의 청년 열 명 가운데 여섯 명이 15개월 만에 첫 일자리를 그만두고 있”는 현실에서 자신을 하라면 무조건 따르는 ‘애완동물’, 의미 없이 돌기만 하는 ‘팽이’ 등에 비유하는 젊은이들만 넘치는 나라에 희망이 있을까?
한국노동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15년 8월 기준 임금 근로자로 신규 채용(근속 기간 3개월 미만)된 15~29세 청년의 64%가 비정규직인데, 이는 2009년보다 10% 증가한 수치라고 한다.
어제 이 책을 읽으며 우울했다. 손님이 계속 찾아오는 와중에도 다 읽었다. 하지만 우울한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제 찾아온 이와 책 한 권을 같이 해보기로 했다. 바로 담당 직원을 불러 연결해줬다.
“부부가 공무원이면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이라는 말에 기가 찼다. 모두가 공무원이 될 수도 없는 일이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져서는 곤란하다. 저자들은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한다.
“1년 전 취재팀이 처음 머리를 맞댔을 때만 해도 ‘부들부들’은 아직 발화점에 이르지 못한 분노였다. ‘부들부들’이 분노로, 분노가 변화를 향한 실천으로 진화할 때 한국 사회가 질적 전환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취재팀의 생각이 짧았다. 청년들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매서워졌다. 이들은 저소득층 청년 가구가 한 달에 고작 81만 원을 벌고, 자기 자신이 계약 기간 1년 이하의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할 확률이 20%에 달하는 원인을 캐묻기 시작했다.
정치는 이제 어떻게 답할 것인가? 이제 막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고용의 질과 삶의 질 개선을 위한 개혁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세상은 한 번에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천천히 가더라도 제대로 구조를 바꿔 내야 한다는 것을.
청년을 사회 모서리로 내모는 구조가 완전히 부서지는 그날이 올 때까지 더 많은 청년들이 자신의 고통과 욕구에 대해 발언하고 행동할 수 있기를. 정치는 이들의 요구에 제대로 응답하기를. 그리하여 청년이 돈이나 사회적 지위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당당하게 행복을 누리는 날이 오기를.”
그런 날이 그냥 올까? 나부터가 열심히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조금의 힘이라도 보태야 오는 것이 아닐까?
원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