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옛 친구 중, 아주 아주 아주 부잣집의 딸이 있었더란다. 엄마의 어린 시절에는 휠체어가 매우 귀했는데, 이름도 못 들어보고 발음도 어려운 외국 모 회사의 휠체어를, 날씨나 기분에 따라서 두세 개를 돌려썼단다.
그뿐만 아니라 늘 차를 타고 와서는 계단은 기사가 안고 다녔고, 언제나 곁에 붙어서 시중을 드는 시동인지도 있어서 햇빛이 강한 날에는 양산을 들어서 햇빛도 가려주고, 책보도 대신 들고 다니곤 했단다.
그 친구의 생일이 다가오면 가까운 동무들이 모두 기대에 부풀어서 친구의 생일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 친구 생일이면 예쁘고 좋은 경양식집을 빌려서 동무들을 초대하고, 집에 돌아가는 동무들의 손마다 과자며 작은 선물들이 든 봉투까지 일일이 안겨 보냈다고 한다. 게다가 얼굴까지 새초롬히 예뻐서 동무들은 늘 “피부도 창백하고 뽀야니 어쩜 저리 인형 같누” 하고 소곤대기 일쑤였다고.
그 친구가 졸업할 즈음이 되자 여기저기에서(엄마 표현으로는 조선 팔도에서) 혼인제의가 들어왔다고 한다. 걸음을 잘 못 걷기는 해도, 음전하고 맑고 예쁜 데다 무엇보다 집안이 소문이 파다하게 부유하니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는 전언은 물론 아예 부모님 대동하에 서로 선을 보자는 말들이 하루가 멀다고 날아들었다고. 그런데 그 댁 어르신이 어찌나 딸을 아꼈던지 안 그래도 가여운 우리딸을, 웬 놈팡이들에게 쉽게 줄 순 없다며 얼굴조차 못 보게 하고 내쫓은 게 수십이었단다.
실제로 그 친구는 몇 번인가 연애 비슷한 걸 했는데, 사교 모임에서든 친구의 소개로든 남자랑 몇 번 만날라치면 귀신같이 그쪽 정보를 알아내온 아버지가 그 치를 좀 보자며 불러들여서는 “우리 딸과 결혼할 생각이냐.”며 윽박질렀다고 한다. 대화가 좀 길어진다 싶어서 안심을 할래도, 결국에는 호통과 함께 쫓겨나는 남자들을 보며 “아버지는 아마 나를 처녀 귀신으로 만들 셈인가보다” 하며 속상해했다고.
그러던 그 친구가 시 읽는 모임에선가 만난 한 청년이랑 진짜 연애를 하게 됐단다. 그런데 그 청년이란 사람이 지금까지의 상대들과는 달리 정말 앞뒤 주머니, 셔츠 주머니까지 다 털어도 자랑할 만한 게 없는 집안에다가 그 역시 겨우겨우 입에 풀칠하며 사는 사람이라는 것.
그 와중에도 들끓는 지식욕과 시에 대한 애정으로 이주에 한 번 있는 시 읽는 모임에 어렵사리 참여하는 그 청년을, 그 친구분은 참 많이도 좋아하게 되어서 친구들에게 그에 대해 말할 때면, ‘그 청년의 시 읽는 목소리가 얼마나 열정적인지. 또, 자신 옆에서 속삭일 때의 목소리는 얼마나 달콤하게 다른지’에 대해 볼을 붉히고 말하다가도, “곧 아버지가 알게 되면….” 하고 말을 흐리며 슬퍼하기 일쑤였다고.
그렇게 시 모임을 가장한 만남이 몇 번쯤, 드디어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 놈팡이를 데려오라는 말에 떠난 기사가 청년을 데리고 왔다.
도착한 청년은 시 모임에서보다 조금 추레한 모습이었다. ‘일을 하다 와서 미처 옷을 못 갈아입어 죄송하다’는 청년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아버지가 방으로 그 청년을 불러들였다. 청년이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일하는 사람이 차를 들여가기도 전에 예의 그 윽박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자네는 내 딸이랑 결혼 할 셈인가!!!”
무어라 무어라 웅얼웅얼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고 또 아버지의 대꾸가 무어라무어라….
귀를 기울여 들어보려 해도 도저히 들리지 않는 둘의 이야깃소리에 반쯤 포기한 마음으로 거실에 앉아 있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안방 문이 벌컥 열리더니 아버지와 그 청년이 걸어 나왔단다.
그리고는 잠시 딸을 쳐다보고는 하는 말씀이, “너만 괜찮으면 이 청년이랑 결혼 날짜를 잡거라” 였다. 시중드는 아이가 너무 놀라 자기도 모르게 에그머니 소리를 내뱉으며 따님 옆에 푹 주저앉았다.
그리고 실제로 몇 달 후엔가 그 둘은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청첩하는 자리에서도 동무들이 모두 놀라, “도대체 그 비결이 무엇이길래 그 호랑이 같은 너희 아버님이, 그 댁 어르신 기준 흠 많은 그 청년을 단번에 너의 남편감으로 승낙했다니?” 하고 묻자 그 친구가 말하길,
그 날 아버지가 그 청년에게 내 딸이랑 결혼할 셈이냐 묻자마자 그 청년이 가능하다면 그러고 싶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태도가 지금까지의 구혼자들처럼 ‘지나치게 열정적이지도’, ‘굽신대지도’ 않는 데다, 어느 정도는 포기한 듯 보이기까지 하는 조용하고 담백한 모습이라 덩달아 어르신까지 차분해져서는 내 딸과 결혼하고 싶은 이유가 뭐냐는 말도 건너뛰고 “그래, 자네는 그럼 내 딸과 결혼을 한다 치고. 뭘 해줄 수 있나? 뭘 하고 싶은 겐가?” 했단다. 그러자 그 청년이 말하길,
“해줄 수 있는 건 없습니다. 하지만 하고 싶은 건 있습니다. 저는 아버님이 주시는 재산으로 그녀와 먹고살려고 합니다.”
어르신이 “뭐라?” 하며 당황과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는데 또 말하기를 이랬단다.
“물려주실 재산을 가지고 살고 싶다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투기도 안 하고 도박도 안 하고 술도 싫어하니 주신 돈을 안 까먹고 은행에다 두고 그 이자를 받아먹으며 평생 따님과 도란도란 살렵니다. 일을 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제가 평생 아내 얼굴 안 보고 밖에서 일해 돈을 벌어봤자 어르신이 모으신 재산의 10분의 1도 벌지 못할 텐데, 그것이 다 무슨 비효율입니까.
다행히 이미 어르신이 저희 둘이 먹고살고도 남을만한 재산을 이미 모아주셨으니, 저는 그저 따님 곁에서, 더우면 부채질해주고, 졸리다고 하면 책을 읽어주다 이불을 덮어주고, 집안이 답답하다 하면 휠체어를 끌며 산책을 하고, 그것도 답답하다 하면 함께 여기저기 놀러도 가 보고. 그러면서 살고 싶습니다.
감사하게도 그 큰돈으로 다른 여자 끼고 거하게 웃으며 남과 푸지게 놀고먹고 싶은 마음도 없이, 그저 조용하게 둘이 이야기하며 떠드는 것이 제일 행복하다 느끼니, 저는 그냥 그렇게 둘이 산다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그랬단다.
그래서 그 둘은 결혼했고, 엄마가 건너건너 소식을 들을 수 있었던 예전 언젠가의 그 날까지, 영영 둘이서 맛난 거 먹으며 도란도란 행복하게 잘 살았단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그 청년이라는 사람이 굉장히 신선하고, 멋지게 느껴졌었다. 다른 구혼자들은 내 딸에게 무엇을 해줄 것이냐는 말에, 온갖 금은보화는 물론 달도 따다 바치겠다는 말들을 했단다.
엄마는 그 이야기를 하며, “그 영감님한테 이미 넘치게 가지고 있는 돈을 갖다 바치겠다고 했으니, 그게 성에 찼겠니” 했지만, 나는 그것도 그렇겠다 싶으면서도 더 큰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돈을 보고 온 자들이니 돈으로 갚을 것만을 생각하며 호기롭게 재화를 결혼과 따님을 내주시는 데에 대한 ‘보상’으로 댔을 것이고, 그걸 평생 돈과 사람을 대해 온 그 댁 어르신이 꿰뚫어 본 것이 아닐까 하고.
그러다가 어느 날, 진짜 자신의 딸과 ‘시간’을 보내고 ‘함께’ 행복하려고 드는 청년이 나타났던 것이고. 그러니 그 청년이야말로 자신의 딸이 남들에 비해 조금 부족했던 단 한 부분, 이곳저곳 다닐 발을 대신하며 떨어지지 않고 딸을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이 아니고서야 다른 누구였겠나.
비록 지금은 그 두 분이 어떻게 지내시는지 엄마도 나도 모르지만, 두 분이 평생 서로에게 시를 읽어주며 속삭이며 그렇게 살고 계셨으면… 하는 생각을 아주 가끔,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랑 시를 발견할 때마다. 보기 좋은 저택에서 함께 노을 지는 것을 바라보며 서로에게 떠오른 시상을 읊어주는 두 분의 모습을 떠올리며.
둘 중 한 분의 시가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깊게 읽어보곤 한다.
안녕
아름다운 동화에서
한 페이지 찢어냈는데도
이야기가 연결되는 느낌으로,
그렇게 살아갈게
-이장욱,
<우리 모두의 정귀보中>
원문: 표범님의 페이스북